그동안 내가 먹었던 수많은 스프 있는 라면들은 뭐지?
모조리 다 거짓이었던 걸까? 다음에 또 뭐가 없어지면 그땐 어쩌지?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 정말 다 그렇게 사라져도 괜찮은 걸까? - 지식채널e, ‘스프가 없네’ 中

‘생각’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라면 스프가 갑자기 사라진다면, 그렇게 하나둘씩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EBS의 프로그램 ‘지식채널e’는 5분 내외의 짤막한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보고 나서 생각하는 데는 5일도 모자란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왜냐’고 묻는 것이 ‘지식채널e’를 연출한 김진혁 PD의 메시지였다. 김진혁 PD는 지난 2008년 ‘지식채널e’의 연출을 끝냈지만, 여전히 그는 ‘왜’라고 물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My Dream My Way] “좋은 PD 되려면 세상에 대한 관심·도덕적 사명감 가져라”
PD·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김진혁


1974년 생
●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 2002년 EBS 입사
● 2005년~2008년 지식채널e 연출
● 현 뉴스타파 ‘김진혁의 미니다큐 Five minutes’ 제작
●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수상
●제20회 한국PD대상 TV교양정보부문 작품상(2008)
● 무비위크 창조적인 엔터테이너 50인(2008)
●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정보공익부문(2007)
●방송위원회대상 우수상(2007)
●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실험정신상(2006)


김진혁 PD와의 만남은 방송국이 아닌 서울 성북구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이뤄졌다. 김진혁 PD가 지난해 7월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로 새 출발을 한 까닭이다. 그의 연구실에 들어가 자리를 잡자마자 조심스레 물었다.

“PD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교수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함께 한 대학생 기자단에게 홍차를 주기 위해 물을 끓이던 그가 답했다. “편한 대로 불러주세요, 굳이 정해야 한다면 PD가 더 편하니 PD라고 부르는 게 좋겠네요.”

EBS 프로그램 ‘지식채널e’를 탄생시키며 이름을 알린 김진혁 PD는 지난해 11년간 몸담았던 EBS를 떠났다. 그럼에도 그를 여전히 PD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영상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상에 대한 애정은 그의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PD’라는 직업을 몰랐던 때, 막연히 ‘내 손으로 영상을 만들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신문방송을 전공으로 선택한 것도 영상을 만들어볼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간 만큼, 대학 시절 모습도 남다르지 않았을까.



“특별한 것 하나 없었어요.” 대학생 김진혁에 대해 묻는 질문에 돌아온 첫 대답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그의 대학생활은 영상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연애, 운동, 수업까지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던 것 같아요.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영상 실습을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카메라를 잡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거든요. 답답한 마음에 2학년 때는 영상 관련 학회를 만들기도 했는데 장비가 제대로 마련된 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죠.”

그가 자신의 대학 생활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것은 자유로운 사고와 경험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철학,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수업을 찾아 들으며 많은 것을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던 것. 사실 그는 대학에 입학하면서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직업을 정해야 할 나이가 돼서는 꿈을 접고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영화를 하고 싶었다면 연극영화과에 가서 공부를 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네트워크도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로 뛰어들기에는 너무 막연했다. 20대 후반이라는 나이도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영상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후회할 것이 뻔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들어가서 일을 한 적이 있어요. 10개월 정도 사무직을 맡았었는데, 자꾸 영상에 미련이 남았죠. 그때 ‘PD’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준비를 시작했어요.”

온갖 방송국 시험에서 떨어지기를 수차례, 백수로 지내기를 2년. 2002년 스물아홉이 되던 해 EBS에 입사해 PD가 됐다. 지금은 취업 적령기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좀 늦은 나이였다. 그는 “가족들에게 민폐를 끼쳤다”면서도 “하고 싶은 일이니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열정으로 빚은 다큐멘터리
EBS에서 처음 맡은 프로그램은 ‘직업 탐구’였다. 이후 ‘효도우미 0700’, ‘미래의 조건’을 연출했다. 2005년 9월부터는 우리 주변에서 1초 동안 이루어지는 일을 담은 ‘1초’라는 영상으로 ‘지식채널e’의 연출을 시작했다. EBS를 퇴사하기 전인 2008년까지 3년간 도맡은 프로그램이었기에 그는 ‘자식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지식채널e의 모든 편에 애착이 가요. 다 사랑스러워요. 그중에 기억이 남는 것을 고르라면 축구선수 박지성을 다룬 작품을 꼽아요. ‘지식채널e’를 많은 시청자가 봐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것이었거든요. EBS가 수능 전문 채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죠. 완성도가 가장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제 역할을 해줬어요.”
[My Dream My Way] “좋은 PD 되려면 세상에 대한 관심·도덕적 사명감 가져라”
김진혁 PD의 추천 도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우리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생각해보기 전에 ‘생각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라는 거예요. 운동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을 권하고 싶어요. 자신이 생각한 과정, 생각한 이유 등에 대해 깨달을 수 있을 거예요.”


‘지식채널e’를 통해 그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람들이 무심코 받아들이는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것.
[My Dream My Way] “좋은 PD 되려면 세상에 대한 관심·도덕적 사명감 가져라”
5분의 짧은 다큐멘터리는 새로웠다. 그리고 그 다큐멘터리가 전한 메시지는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발휘했다. EBS를 넘어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지식채널e’는 제20회 한국PD대상 TV교양정보부문 작품상(2008), 제34회 한국방송대상 정보공익부문(2007) 등을 수상했고, 김진혁 PD도 무비위크 창조적인 엔터네이너 50인, 제18회 한국방송프로듀서상 실험정신상 등을 수상했다. 매번 감동하고, 매번 감탄하게 되는 신비한 힘을 지닌 짧은 영상의 힘은 1초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강한 흡입력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편을 만드는 데 평균 4주의 시간이 걸렸다. 영상에 단순 지식이 아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메시지를 압축해 넣어야 했기에 자료 수집과 구성을 하는 데 70%를 할애했다. 작가, 조연출 등 제작 스태프와 함께 매회 아이템과 관련된 역사, 예시, 전체 맥락까지 관련된 사실을 모두 찾는 자료 조사를 했고,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가닥이 잡히면 그 후에 구성과 편집에 들어갔다. 폭탄 같은 작업량에도 매번 새로운 수작을 탄생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좋아하고 즐길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밤새서 일하는 게 힘들지 않았어요. 남들보다 탁월한 건 아니지만, 집중력 하나는 정말 좋거든요. 집중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가 PD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아이템을 둘러싼 사측과의 갈등이었다. 지난해 11년간 몸담았던 EBS에서 퇴사한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유공자 후손을 다룬 다큐멘터리 ‘반민특위 편’이 제작 중단되면서 퇴사 결정을 내린 것.

“윤리적인 압박이나 억압은 겁이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완벽하게 회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회피하려고 다른 곳으로 가면 치러야 할 대가가 또 있기 마련이에요. 자신의 기준을 잘 정하고 쓰러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퇴사 후 그는 ‘뉴스타파’에서 ‘김진혁의 미니다큐-파이브 미닛(Five Minutes)’을 제작하며 여전히 영상 제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다른 장르의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그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는 ‘가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다른 장르보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이라는 범주의 가치들과 훨씬 깊게 연관되어 있죠. 진실을 포착해내고 세상을 좀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게 다큐멘터리입니다.”


PD에게 필요한 소양은 ‘세상에 대한 관심’
그는 PD로 활동하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로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교수도 맡게 됐어요. 인문·사회대 교수님들이 논문을 쓰는 것처럼 한예종 교수님들은 자신의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야 하거든요.”

PD와 교수, 각각 떼 놓고 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직업인데,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한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터.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못 하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많다.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 때문이 아니라, 항상 무엇인가를 놓친 것 같아서요.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날 정도죠. 수업하는 데 힘든 것은 없지만, 면담 횟수가 많아지다 보니 체력적으로 지칠 때가 있긴 해요. 그래도 학생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즐거워요.”

아닌 게 아니라, 사진 촬영을 하는 그의 주위에 편한 선배 대하듯 학생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는가 하면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근엄한 교수님’은 없었다.
SONY D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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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PD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라고 강조했다. 장르에 상관없이 모든 방송이 세상의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익명의 다수와 소통해야 하는 PD에게 세상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중요한 역량이에요. 특정 분야만 알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이 단순히 사교성이 좋다는 것과는 달라요. 사교성이 좋아도 자신의 주변에만 관심을 가질 뿐 세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또 하나, 시청률이나 아이템 스트레스, ‘언론인’이라는 도덕적 사명감까지 짐 지워지는 직업이 PD라는 것을 알고 도전했으면 해요.”

그는 요즘 20대들을 보며 ‘쫓기는 사람들’같아 안타깝다는 말도 덧붙였다.

“대학생들에게 여유 있는 모습을 찾기가 힘들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것,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놓아 버릴 필요는 없어요. 버티면 언젠가는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가야 해요. 스스로를 잘 대해 줬으면 해요. 자신에게 투자하고, 여유를 주세요.”


글 김은진 기자│ 사진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