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우동집

미술품이나 우표, 화폐, 책, 골동품 따위를 모으는 일을 우리는 ‘컬렉션(수집)’이라 부른다.
누구나 하나쯤 수집하는 품목이 있을 것이다. 영화 DVD, 음악 CD, 도서, 피규어일 수도 있고 폭넓게는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편애하는 것도 수집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많고 많은 수집의 카테고리 중에 내가 선택한 것은 ‘우동’이다. 음식에도 ‘수집’이 가능할 수 있는 것!
애지중지 아끼는 ‘우동 컬렉션’을 소개한다.



국물 없는 부카케 우동, 살아 있네~
카네마야 제면소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살아 있는 것이 먹고 싶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가 15년 동안 감금돼 있다가 스시집에서 산낙지를 먹기 전에 뱉은 말이다. 15년 동안의 감금.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누군가 나를 일주일이라도 어디 가두고 꺼내준다면 나는 고민 없이 산낙지 대신에 홍대로 ‘부카케 우동’을 먹으러 가겠다. 살아 있음을 느끼려고 살아 있는 것을 먹는다. 반복된 일상에 무료하다면 정신 차리자고 세수하듯 가끔은 음식으로 환기해주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감옥 안에 사는 것이 아니니까. 작은 우동 그릇에 직접 제면한 우동면이 쓰유(일본식 간장)와 함께 나온다. 국물 없이 비벼 먹는 부카케 우동. 면의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는 우동 요리다. 후루룩 하고 입술로 당기면 바다의 생선처럼 살아 있는 듯 춤을 추며 입안으로 들어온다. 그 생생한 탄력을 빨고 씹다 보면 ‘올드보이’ 오대수가 산낙지를 먹는 기분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0-10 1F _ tel) 02-322-0141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카레우동
더스푼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향기로움으로 닮은 두 가지가 있다. 꽃과 카레. 꽃향기만큼이나 카레 냄새 향기로운 맛집을 소개한다. 서대문역에서 미근동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꽃과 카레를 함께 파는 ‘더스푼’이라는 가게가 있다. 밖에서 봐도 아담해 보이는 카레집 내부엔 작고 아기자기한 테이블 4개뿐. 오픈형 키친은 좁은 가게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일본만화 원작의 드라마 ‘심야식당’의 주방을 생각나게 한다. 점심시간엔 인근 회사 직원들이 몰려 웨이팅이 있고 복잡하니 여유롭고 한산한 오후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다양한 카레 종류를 선택할 수 있고 500원을 추가하면 밥 대신 우동 사리를 넣은 카레우동을 맛볼 수 있다. 더스푼의 일본 가정식 카레는 특별함, 그러니까 맵고 짠 뚜렷한 자극은 없지만 ‘맛있다’. 맛있어서 자연스럽게 후루룩 입으로 들어간다. 맛집은 음식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져야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더스푼을 처음 찾았을 때 이 말이 생각났다. 사람의 온기가 카레우동 한 그릇. 배고픈 속과 함께 마음의 허기도 달랠 수 있는 곳이다.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61-1 1층 _ tel) 02-363-6466



라면 4인분 양의 우동 한 그릇
겐로쿠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어느 날 우동 좋아하는 내게 연락이 왔다. 라면 4인분 양의 초대형 우동을 파는 곳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돼.” 반신반의했지만 내심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들뜬 마음을 진정시키며 건대입구역으로 향했다.

홍대에 본점을 두고 있는 ‘겐로쿠’는 일본 규슈 지방의 지도리 우동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천연 재료’(말린 고등어, 전갱이, 정어리, 가다랑어, 꽁치 등)를 우려낸 육수로 장국을 만들고, 대표 메뉴인 ‘지도리 우동’은 미야자키지도리(토종닭)와 유사한 국내산 생닭을 사용해서 쫄깃한 식감과 동시에 영양소가 풍부해 균형 잡힌 식단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수타로 뽑은 면발을 양껏 먹을 수 있는데 기본 사이즈부터 대 사이즈, 라면 4인분 양의 특대 사이즈까지 ‘같은 가격’으로 만나볼 수 있다. 어른 두 손을 모은 크기보다 넓은 우동 그릇, 단순히 크기만 크고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본 규슈식 우동 한 그릇이다. 구운 대파와 함께 먹는 이곳만의 시원한 장국 맛이 일품이다.

서울 광진구 화양동 5-106 _ tel) 02-465-8545



화끈한 맛의 볶음우동 맛보고 싶다면
카모메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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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주먹밥 ‘오니기리’ 전문점 카모메. 영화 ‘카모메 식당’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가게는 하얀색과 하늘색 페인트칠 때문인지 음식점보다는 예쁜 카페처럼 보인다. 다찌에 앉아 주문을 하면 바로 앞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주는데, 금방 나와서 그런지 직접 중국집에 가서 먹는 자장면만큼이나 맛이 좋다. 입에 넣기 부담스러운 크기지만 햄버거 먹듯 크게 베어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볶음우동’은 오니기리만큼이나 유명한 이 집의 간판메뉴다. 신선한 해산물과 함께 고추장 소스에 우동면을 볶아주는데 처음 나왔을 때 고명으로 올린 가쓰오부시가 우동의 뜨거운 온도 때문에 춤추는 것처럼 보인다. 화끈하게 매운맛은 머리에서 땀까지 나게 하고 혀를 내두르게 만들지만 강한 중독성이 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손이 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한 손에 오니기리를 들고 매운맛을 중화시켜 가며 먹는 것이 볶음우동의 정석. 중간고사 기간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6-129 _ tel) 02-322-2311




우동이 뜨거워야 한다는 편견은 버려~
아소산
[마싣구론(論)] Udon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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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동을 떠올리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이 연상된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며 마시면 온몸이 따뜻해지는 우동 한 그릇. 그러나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이런 우동과는 다르게, 오히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한기를 느끼게 하는 여름의 물냉면 같은 우동이 강남역 근처에 있다.

규슈 지방의 활화산 이름을 딴 ‘아소산’이라는 우동 가게. 이 집은 이곳만의 우동 장국에 토마토, 계란말이, 무순, 오이 등을 고명으로 올려 차가운 우동, 이름 하여 ‘냉우동’을 선보이고 있는 곳이다. 얼음이 동동 띄워진 우동 국물은 새콤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며, 단순 소재의 신선함으로 어설픈 흉내를 내는 것이 아니라 맛에 모남 없이 우동이라는 음식에 기막힌 조화를 내고 있다. 가뜩이나 탄력 있는 면발이 차가운 우동 국물을 만나 생기를 더하는데 입에 대면 저절로 헤엄쳐 들어오는 듯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식사시간 줄 서는 것은 기본. 냉알밥과 냉돈가스도 별미다.

서울 강남구 역삼1동 619-4 장연빌딩 102호 1F _ tel) 02-566-6659






김삿갓(김필범)
맛있는 일상을 블로그로 전하는 남자. NATE(싸이월드) 선정 파워블로거,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KBBA) TOP100 블로거. 제철음식 농수산물 커뮤니티 삿갓유통(www.sgmarket.k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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