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은 PD, ‘반론없는 다큐 만들고 싶었다’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2012)가 방영한 지 12년이 흘렀다. 그 사이 정권, 물가 등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자본주의'는 부동의 인기를 받고 있다. ‘EBSDocumentary(EBS 다큐)’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자본주의' 5부작은 도합 1,179만 뷰를 기록했다. 여전히 대중에게 또렷이 기억되고 있는 '자본주의'. 최초의 경제학 다큐멘터리이자 자본주의 지침서, '자본주의'를 제작한 정지은 PD를 만났다.
EBS 정지은 PD. 사진=유정민 대학생 기자
EBS 정지은 PD. 사진=유정민 대학생 기자
'자본주의'를 기획한 계기가 궁금하다
"여느 PD들처럼 기획의 시작은 개인사였다. 결혼 후 내 집 마련을 계획하면서, 매일 읽는 경제 기사를 이해하려 끙끙대면서, 세계 경제가 내 지갑에도 영향을 준다는 걸 느꼈다. 무지했던 경제 지식을 채우기 시작했고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나의 경제생활에서 시작해 프로그램까지 하게 됐다. 사실 10년 동안 공부한 것을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주려니 아까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그게 내 직업 아닌가. 교육 PD로서의 사명감이 컸기 때문에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익히들 알고 있는 금융의 순기능보다는 조심해야 할 것들 위주로 다루고자 했다."

'자본주의' 5부작을 어떻게 구성했나
"수많은 개념 중 대중의 관심과 경제학 핵심이 맞물리는 지점을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1부(돈은 빚이다)에는 돈의 원리를 보여주며 자본주의의 진실을 파헤쳤고 소비 심리와 금융상품에 관한 이야기를 2부(소비는 감정이다), 3부(금융지능은 있는가?)에 각각 담았다. 4부(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에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과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재조명하며 자본주의의 좌표를 통찰하고자 했다. 마지막 5부(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는 미래 대한민국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복지 자본주의’를 제언했다. 논란 없는 다큐를 위해 1년 6개월간 직접 세계 석학들을 만나며 내용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려 애썼다."

'자본주의'를 제작하면서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었나
"학술 다큐멘터리지만 지루하지 않고 재밌길 바랐다. 어떻게 하면 시청자들이 몰입할까를 가장 고민했다.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유익한 다큐를 만들기 위해 실험, 애니메이션, 재연 등 생생한 장치들을 프로그램 곳곳에 놓았다. 클래식한 칠판이나 그래프 대신 ‘러시아 인형’, ‘의자 뺏기 게임’, ‘물고기’ 등 다채로운 오브제를 택해, 뻔하지 않은 연출을 하려 했다. 또, 석학들의 인터뷰와 이미지를 적절히 배치하여 각인 효과를 주고자 했다. 당시 도전적이었던 기획과 연출들이 감사하게도 대중의 입맛에 맞았던 것 같다."

연출력에 대한 호평이 자자하다. 영감은 주로 어디에서 얻나
"엉덩이다. 지긋하게 앉아서 정말 다양한 자료를 본다. EBS에서 나보다 많이 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웃음) 책, 뮤직비디오, 광고, 심지어 어린이 그림책도 본다. 레퍼런스를 많이 보는 이유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다. 다만, 표절은 창작자의 책무에서 어긋나기 때문에, 레퍼런스를 오마주하면서 더 잘 만들고 그 원천이 생각나지 않게 발전시킨다. 그리고 할 수 없이 오마주 장면이 많다면 출처 자막을 달아 앞선 이에 대한 존경을 표하려 한다."

제작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제작 내내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웠다. 최초의 경제학 다큐답게 세상에 없던 것을 꿈꿨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의 반대도 많았다. 다큐 생명이 오래 유지되길 바란 만큼 석학 섭외부터 구성, 연출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힘주어 준비해야 했다. 주변의 우려에도 나아가야만 했던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국민 다큐멘터리’라는 별칭으로 지금까지 사랑받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경제 다큐를 만들었던 PD로서 전하고 싶은 재테크 팁이 있나
"재테크를 하려면 내 방 정리부터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 부서에도 대청소하는 날이 있다. 청소하다 보면, 이 공간을 인식하게 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통제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내 방, 내 사무실에 뭐가 있는지 알면 불필요한 지출을 줄일 수 있기도 하다. 머무는 환경과 차림새를 단정히 해야 기회가 왔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
EBS 건물 앞 비석. 사진=유정민 대학생 기자
EBS 건물 앞 비석. 사진=유정민 대학생 기자
올해로 EBS 32년 차로 알고 있다. PD로서의 방송관이 궁금하다
"부모님께 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두루 물려받았다. 이 면모를 내세워 날카로운 통찰 속에 위트를 잃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개인적으로 PD는 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철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PD는 주변에 방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항상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직업이다. 프로그램의 가장인 PD가 무너지면 스태프들도 갈 곳을 잃기 마련이니 탄탄한 전략과 수로 책임을 다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직업 만족도는 어떤가
"나는 다시 태어나도 PD를 할 것 같다. 그만큼 직업 만족도가 높다. 스스로를 자본주의적인 인간형이라고 생각했는데 EBS에서 여러 교과 프로를 맡으며 직업 정신이 더 강해졌다. 프로그램을 통해 문제시했던 점들이 개선되거나 시청자들의 인정을 받을 때 PD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현재는 EBS 콘텐츠사업센터 디지털콘텐츠제작팀에 있다. 새로운 분야를 원했고 매체의 미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5년 전에 자진해 이곳에 왔다. 대중의 세분화가 이뤄진 시대에서 OTT로 뻗어나가는 EBS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꿈꾸고 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교육 정보를 균등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빠르면 연내에 EBS 유튜브를 통해 선보일 수 있을 듯하다."
시청자 평점 9.7, 정지은 PD의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가 12년째 사랑받는 이유는?
청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극복의 경험을 많이 하길 바란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방법을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다양한 것들에 도전하고 또 실패해 보면서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실패할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씩씩하게 돌파구를 찾아내길 응원한다."

이진호 기자/유정민 대학생 기자
jinho23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