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부른 전환 시 오히려 리스크 커질 것

[SPECIAL REPORT] 지주사가 ‘만능’은 아니다…지배 구조 더 고민해야
한국은 1960년대 초부터 30년 동안 세계에서 유례 없는 경제성장을 했다. 국민소득 400달러에서 2만 달러로 50배 늘어나는 데 40년이 걸리지 않았다. 선진국 수준으로 성장한 것은 서구식 자본주의가 아니고 정부 주도의 강력한 경제정책 운영과 소유 경영인(대기업)들의 과감하고 신속한 의사 결정 효과에 따른 것이었다.

압축 성장하기 위해서는 레버리지가 불가피했고 그것이 외환위기의 빌미가 됐다. 외환위기 이후 높은 레버리지에 대한 자각과 반성은 한국 기업들의 질적 성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기업의 지배 구조는 과도기에 와 있다. 한국은 아직 기업의 역사가 짧다. 이에 따라 창업자 및 창업자 일가인 최대 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아직은 소유와 경영이 일치돼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고속 성장에서 저속 성장으로 전환되고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양적 성장을 끝마친 대기업들이 높은 위험을 감내하며 레버리지를 통한 고속 성장을 계속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또 서구식 주주자본주의가 보급되면서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인들의 요구가 점증하고 있다. 특히 6·25전쟁 이후 성장한 대기업 대부분이 3세로의 상속까지 임박해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형태의 ‘한국식 지배 구조’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됐다.


지주 체제, 한 번 전환하면 돌이키기 힘들어
소유 경영과 전문 경영의 우월을 가리기는 힘들다. 소유 경영의 장점이 가장 잘 나타난 사례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기업에 쌓인 자원을 주주에게 환원하기보다 계속 사내에 유보해 가며 재투자했다. 이에 따라 투자의 절대량은 비슷한 규모의 회사에 비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함께 투자 역시 단기적 시각보다 장기적 시각에서 이뤄졌다. 스마트폰 등과 같은 종합예술의 영역에서는 핵심 아이디어를 만들고 나머지는 외주를 주는 시스템보다 삼성전자와 같은 시스템이 분명 유리하다. 품질의 안정성 확보와 장기적 시각에서 계열사 간의 기술, 자본 인력의 배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이 같은 방식으로 삼성전자를 이끌어 온 이건희 회장이 병석에 누워 있다. 특히 상속 과정에서 지주회사 전환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 이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기업이 많아졌다. 이유는 지배 구조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지주회사 체제가 오너 및 기업 입장에서 여러 장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SK·한진중공업·한진해운·코오롱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통해 상속 이후의 경영 지배권 강화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또 웅진·금호·하이트는 인수·합병(M&A)을 가속화했고 CJ와 아모레퍼시픽은 사업 구조 재편으로 신성장 동력을 찾았다. 또 STX는 사업 다각화와 계열사 지원을 지주회사 체제에서 했다.

하지만 지주회사 전환은 한 번 전환하면 되돌리기 쉽지 않다는 ‘비가역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즉 ▷그룹의 지배 구조가 장기 성장 전략에 부합하는가 ▷규제에 대한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가 ▷세금 이슈와 같은 재무적 부담은 없는가 ▷전환 후 기업 가치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떨까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투자 여력 확보, 분할 및 구조조정이 가능한 방식인가 등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실제로 비슷한 시기에 지주회사로 전환한 웅진은 결국 큰 시련을 맞았다. 웅진의 윤석금 회장은 지주회사 전환과 함께 M&A를 추진함으로써 큰 피해를 본 사례다. 지주회사 전환 직전인 2007년 5월 말 윤 회장이 보유한 코웨이와 씽크빅의 지분 가치만 8252억 원에 달했다. 하지만 웅진그룹이 해체 위기를 맞음으로써 지분 가치가 폭락한 상황이다. 윤 회장은 올해 초 웅진홀딩스의 지분을 두 아들에게 매각했는데 당시의 매각 금액은 343억 원에 불과했다.

기업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지주회사 전환은 ‘위험 요소’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2000년대 초반 지주회사로 전환한 LG그룹과 삼성그룹을 비교해 보는 것이다.

LG그룹은 대기업 계열에서 보기 힘들 만큼 정정당당하게 3세대와 4세대로 상속이 이뤄진 그룹이다. 물론 이유는 있다. 이유 중 하나는 상속인의 수가 많아 기업을 분리해 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고는 상속 과정에서 대주주들의 지분율 약화(지분 분산)가 불가피했다. 또 오너의 지분이 분산된다면 그룹의 창업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상속 이후에도 경영권을 유지하고 창업 정신을 유지하기에 지주회사만큼 좋은 대안이 없었다.

하지만 지주회사 (주)LG는 그룹 전체의 성장성을 떨어뜨린 감이 없지 않다. 지주회사는 향후의 투자를 위해 자회사의 배당금을 통해 충분한 여유 자금을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주)LG는 LG그룹 상장 계열사 중 가장 높은 수준의 배당률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룹의 신규 투자 여력이 제한돼 그룹의 장기적 성장과 지속 가능성에 해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지주회사 전환’이라는 유행이 시들하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구조적 후순위성’이다. 지주회사의 대표적 단점은 현금 흐름의 ‘후순위 청구권’이다. 지주회사의 현금 흐름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에 의존한다. 하지만 지주회사의 배당은 자회사의 채권자에게 원리금을 상환한 이후에나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의 현금 흐름은 자회사의 현금 흐름보다 부침이 심할 수밖에 없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순수지주회사라면 그 자회사보다 한 등급이나 두 등급 낮은 신용 등급을 준다. 이런 후순위성으로 주식 가치 역시 저평가될 때가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주주의 자산 가치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즉 지배 구조는 투명해지고 비교적 적은 주식으로도 레버리지 효과를 통해 지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자산 가치 자체’는 줄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지주회사로 전환한 9개 그룹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SK그룹과 CJ그룹을 제외하고 나머지 그룹사 모두가 대주주의 지분 가치가 하락했다. 이 중 SK그룹의 대주주 지분 가치 증가는 지분율 확대(SK C&C의 지분율 11.2%→28%)에 따른 것으로 실질적 가치 상승은 아니었다.


장기적으로 SK그룹 형태의 ‘옥상옥’ 구조 가질 가능성 커
지주회사 전환의 장점 중 하나였던 규제 완화도 답보 상태다. 지주회사로 전환하면 부채비율 요건, 자회사 최소 지분율 요건, 자회사와 손자회사 사업 관련성 요건 등 다양한 규제 완화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융지주회사 정도를 제외하면 지주회사의 규제 완화는 더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기존의 순환 출자를 벗어나야 할 의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여러 가지 사안들을 고려할 때 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순수지주회사보다 ‘사업지주회사’로 가는 게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은 논의되는 여러 시나리오처럼 빠르게 추진되기는 확실히 어려워 보인다. 삼성생명 지분 처리 문제도 쉽지 않고 설사 전환되더라도 삼성전자의 지분을 더 확보하기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본다면 SKC&C→(주)SK와 같은 ‘옥상옥 구조’의 지주회사 형태로 갈 수도 있다. SK는 최태원 회장 및 일가가 지분 48.5%를 가지고 있는 SK C&C가 지주회사 (주)SK를 지배하고 있다(지분율 31.8%). 지주회사 SK는 주력사인 SK이노베이션과 SK텔레콤을 지배하고 SK텔레콤이 SK하이닉스를 지배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장기적으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물산이 합병하고 긴 시간 동안 삼성전자 분할을 통한 지주사 전환 가능성은 분명 열려 있다.

여기서 투자자들이 유의할 점은 삼성전자 주식이 삼성에버랜드에 아직 모이지 않은 상황에서 막연히 삼성전자 주가가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제 삼성의 성장은 삼성전자 외의 전자 및 전자재료 회사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의 수장이 아니라 그룹의 수장으로서 능력을 보여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강성부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