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수·씀씀이 모두 1위, 백화점 명품 브랜드 단골손님도

# 지인의 추천으로 한국을 찾은 20대 여성 링링(가명) 씨. 가까운 다른 나라도 있지만 한국이 끌렸던 이유는 ‘쇼핑’때문이었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호텔에 짐을 풀고 곧장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은 중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쇼핑 스폿 1번지다. 그녀는 먼저 ‘한류’ 스타들이 모델로 있는 한국 화장품 브랜드숍부터 샅샅이 뒤졌다. 싸고 품질 좋기로 유명한 한국 화장품은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그녀의 쇼핑 열정은 백화점과 면세점에서도 불타올랐다. 세련되고 질은 좋으면서 저렴한 한국의 다양한 패션 브랜드를 섭렵하며 마음껏 쇼핑을 즐겼다. 그녀가 한국에 머무른 5일 동안 쓴 경비는 총 2272달러(235만 원), 그중 1431달러(148만 원)를 쇼핑하는 데 썼다. 애초부터 쇼핑에 큰 목적을 둔 그녀에게 이번 한국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관광에서 쇼핑으로 여행 패턴 변화
링링 씨는 2013년 방한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 낸 가상 인물이다. 현재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눈에 띄는 특징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중·장년층에서 청년층으로 변화한 관광객들이 과거 자연 풍광을 즐기던 관광에서 쇼핑과 한류 문화를 지향하는 여행 패턴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 5일 한국관광공사가 발간한 ‘2013 방한 관광 시장 분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래 관광객은 전년 대비 9.3% 증가한 1217만5550명이다. 이 중 중국인 관광객은 전년보다 52.5% 증가한 432만6869명으로 전체 관광객의 35.5%를 점유했다. 점유율 22.6%에 그친 일본(274만7750명 전년 대비 21.9% 감소)을 제치고 한국 관광 통계 집계 사상 최초로 방한 관광의 넘버원으로 등극했다.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한국 관광 매출을 이끄는 ‘큰손’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이는 관광객은 물론 1인 지출 금액으로도 입증됐다. 방한 외국인 중 가장 많이 지출한 것은 요우커로, 1인당 평균 2272달러를 썼다. 이는 전년 대비 120달러 정도 상승한 것으로, 외국인 관광객의 전체 평균 지출액인 1648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특히 3000달러 이상을 쓰는 중국인 관광객이 전체의 22.2%로 가장 많은 집단에 속했다. 지출 경비 중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도 흥미롭다. 요우커의 평균 쇼핑 비용은 1431달러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706달러)을 두 배 이상 앞지른다. 실제로 중국인 관광객들의 방한 목적을 조사한 결과 쇼핑이 62.2%로 가장 높았고 실제로 방한한 후 활동한 것도 쇼핑이 82.8%로 가장 많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우커가 한국에서 가장 만족한 것 역시 쇼핑(37.5%)이었다. 인기 쇼핑 품목은 향수·화장품(73.1%)과 의류(40.8%), 식료품(32.7%), 인삼·한약재(18.9%)순으로 나타났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의 성별과 연령대도 달라졌다. 1995년 31 대 69였던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2005년 41 대 59, 2013년에는 59 대 41로 역전됐다.

중국인 관광객의 연령은 21~30세가 가장 많고(24.0%), 다음으로 31~40세(22.7%), 41~50세(20.7%)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성장률은 전 연령층이 높아졌지만 특히 20세 이하(66.8%)와 61세 이상(57.9%)이 높았다.

이렇게 찾아든 요우커들은 최근 국내 유통 업계를 휩쓸고 있다. 쇼핑할 목록을 갖고 정기적으로 한국을 찾는 ‘목적 쇼핑’ 요우커뿐만 아니라 아예 국내 백화점의 단골손님이 된 요우커들도 적지 않다. 요우커가 단순히 관광객이 아니라 국내 유통 업계를 뒷받침하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이끄는 백화점 매출의 성장세가 남다르다. 오용석 롯데백화점 홍보팀장은 “3년 전만 해도 롯데백화점(본점 기준) 중국인 매출 비중이 5%에 불과하던 것이 지난해 10%, 올 상반기엔 16.5%로 해가 갈수록 급격한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요우커 노믹스 왕서방을 잡아라] 여성 쇼핑객 주축…1인당 235만 원 ‘펑펑’
실제로 중국인이 즐겨 찾는 상위 브랜드의 중국인 매출 비중을 보면 MCM (59.86%)·지고트(53.53%)·라인프렌즈스토어(53.52%)·모조에스핀(52.26%) 등은 중국인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밖에 뉴발란스·투쿨포스쿨·스타일난다 등의 브랜드 역시 중국인 매출 비중이 40%에 육박한다.


“복합 리조트 등 질적 업그레이드 필요”
면세점 매출도 고공 행진이다. 명동에 있는 롯데면세점은 중국인 매출이 45%로 내국인 35%를 넘어섰고 외국인 비중 가운데서도 중국인이 70%를 차지하며 2012년부터 일본인을 앞질렀다. 신라면세점 역시 외국인 매출은 70%, 이 가운데 80% 정도가 중국인에 의해 발생한다.

요우커의 파워는 모바일 쇼핑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롯데면세점 모바일 사이트를 찾은 중국인 비율이 45%대로 내국인(40%)을 추월했다. 지난 1~4월엔 중국인 관광객 모바일 쇼핑 누적 매출 신장률이 무려 2180%(전년 동기 대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소 쇼핑에 치우쳐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여행 패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전문가들은 “쇼핑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새로운 고부가가치 관광 상품을 개발해 중국인을 관광객을 늘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관광 상품과 관광 공간의 업그레이드를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세계 관광산업은 융합 관광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모습을 갖춰 가고 있다”며 “대표적인 게 복합 리조트”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보다 높은 서비스를 원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선호하는 모든 선택을 담을 수 있는 공간으로 쇼핑, 한류 문화 체험 등의 엔터테인먼트와 테마파크·컨벤션·식도락·의료 등이 한자리에서 가능한 최고의 경험을 선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우커의 확대로 중국 전담 여행사가 증가하면서 나타난 부작용도 조속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인, 중국 조선족, 한족 등이 앞다퉈 뛰어들면서 중국 전담 여행사는 지난 16년 동안 5배 이상 증가했다. 늘어난 수만큼 경쟁이 치열해지자 일부 여행사는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받고 있다. 중국 전담 여행사인 춘추국제여행사 관계자는 “시장이 커지고 중국 전담 여행사가 늘어나면서 여행사들이 상품의 질보다 가격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가 정책을 쓰는 여행사들이 늘어나면서 시장 질서가 흐려진 것이다.

이성태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타깃으로 한 저질 관광 상품을 하루빨리 개선하고 복합 리조트 건립 등 고부가가치 관광자원 개발, 중국인 관광객의 지방 관광 활성화를 위한 지방 공항을 개발하는 등 요우커 유치 확대를 위한 대안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부연구위원은 ‘감성 마케팅’도 강조했다. 단순히 한국 관광 상품을 홍보하는 단계를 뛰어넘어 중국인이 선호하는 숫자 ‘8’이나 ‘붉은색’을 적극 활용하는 등 중국인 특유의 소비 행태와 잠재 선호를 자극하는 감성 마케팅이 필수라는 지적이다. 이 부연구위원은 “중국인은 다른 사람의 소비를 따라 소비하는 ‘밴드왜건 효과’와 다른 사람에게 돋보이고 싶어 소비하는 ‘베블렌 효과’의 소비성향이 강한 편”이라며 “중국인이 선호하는 한국 팔도관광과 한국 8경 등의 상품을 개발하고 중국인 관광객 이용 버스와 숙박 시설 등에 붉은색으로 도색하면 중국인 관광객을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교통 여건 개선, 국내 교통 연계 관광 상품 개발, 비자 기준 완화와 발급 절차 간소화 등이 중국인 관광객을 늘릴 수 있는 방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