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자금 이탈·달러화 강세도 하락 요인, 원유 수요도 감소 전망

[‘디플레 역풍’의 진실] 미국발 ‘셰일 붐’ 지속…추가 하락 가능성
최근 국제 유가가 60달러 선으로 주저앉았다. 이러한 국제 유가 하락세는 무엇보다 원유 수급의 불균형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즉,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다. 수급 측면과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 달러화 향방들을 고려해 볼 때 국제 유가는 향후 하향 안정화될 가능성이 높다.

수요 측면에서 볼 때 국제 유가는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미약한 가운데 중국 등 그동안 세계 원유 수요 증가를 주도해 온 신흥국의 경기 회복 지연으로 원유 수요 압력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0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 전망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지난 7월 전망에 비해 0.2% 포인트 낮은 수준의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이런 상황은 개도국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원유 소비 증가율은 2015년 하반기부터 마이너스 수준으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계 원유 소비를 주도하는 미국과 중국의 원유 소비 증가율이 3% 이내로 떨어지면서 국제 유가의 하향 안정화를 유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비OPEC 산유국 생산량 큰 폭 증가
공급 측면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비OPEC 국가들의 오일 생산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국제 유가의 하방 압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2011년 대비 2015년 세계 석유 생산량은 OPEC 국가에서 0.3% 감소한 반면 비OPEC 국가는 8.3% 증가해 총 4.8% 증가할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전통 오일뿐만 아니라 타이트 오일 등 비전통 오일 개발 붐으로 같은 기간 동안의 생산량이 약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국제 상품 시장의 투기 자금이 대거 이탈, 달러화 강세 국면도 국제 유가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상품거래소의 미국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순매수 포지션은 지난 6월 말에 비해 11월 말 약 44.8% 감소했고 영국 ICE(Intercontinental Exchange, Inc)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순매수 포지션도 같은 기간 약 74.2% 감소했다. 더욱이 최근 달러화 강세도 국제 유가 하락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달러화는 2015년 말까지 강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이처럼 현재의 수급 여건과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 등의 여건을 고려해 볼 때 국제 유가 하락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최근 주요 기관들의 국제 유가 전망치가 WTI는 배럴당 약 77달러, 브렌트유는 83.4~88달러, 두바이유는 86.2달러로 형성돼 있다. 이에 따라 2015년에도 현재와 같은 수급 여건과 국제 금융시장의 자금 흐름 현상이 이어진다면 추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다.
[‘디플레 역풍’의 진실] 미국발 ‘셰일 붐’ 지속…추가 하락 가능성
유가 하락이 대세로 굳어지면서 향후 국제 오일 시장에도 큰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OPEC가 수십 년간 누리던 패권이 서서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OPEC의 감산 합의 실패로 국제 유가의 추가 하락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감산의 불필요성을 강조해 왔는데, 이는 에너지 패권을 놓고 미국의 셰일 오일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유가 하락으로 생산비가 높은 셰일오일 생산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술 개발 등으로 최근 생산비가 낮아지고 있어 셰일 오일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생산량이 늘어날 전망이다.
[‘디플레 역풍’의 진실] 미국발 ‘셰일 붐’ 지속…추가 하락 가능성
미국은 ‘에너지 독립’을 선언하는 등 전략적인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셰일 붐(Shale Boom)’이 일어났고 이를 통해 가스 및 오일 개발 산업의 경제성장 기여도가 2008년 0.03% 포인트에서 2013년 0.22% 포인트로 증가했다. 에너지 부문의 무역 적자 개선이 미국 경제 회복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원유 수출을 금지해 왔지만 셰일오일 생산이 늘면서 가격이 안정되자 내부적으로 원유 수출 금지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원유 수출을 시작하면 국제 유가는 더욱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전략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펼치는 가운데 감산을 반대하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회원국들의 전략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셰일 붐’으로 OPEC의 영향력이 점차 쇠퇴하는 가운데 저유가에 대한 대응책을 둘러싸고 재정적 여유가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들 간에 분열이 심화될 전망이다. 더욱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증산도 장기간 계속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추가적인 유가 하락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수지에 부담을 가중시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디플레 역풍’의 진실] 미국발 ‘셰일 붐’ 지속…추가 하락 가능성
오일 패권 ‘다분화’ 시대 돌입
그동안 OPEC는 여유 생산능력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수요에 적절히 대처하며 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시장 안전판 기능을 상실한다면 시장 변동성이 일시에 증폭될 가능성도 높다. 더욱이 미국에서 ‘셰일 붐’이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러시아·중국·아르헨티나 등으로 확산된다면 세계 오일 패권은 더욱 다분화될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국가들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지속적인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큰 변화는 ‘탈석유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다. 최근 미국에서 셰일가스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공급과잉 현상을 초래해 전 세계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했다. 이 때문에 가스 대비 원유 가격이 높아지자 고가의 원유에서 저가의 가스로 수요가 이동해 원유 수요가 점진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결국 세계는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탈석유 시대’로 바뀌는 전환점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국내경제가 처한 상황을 볼 때 국제 유가 하락은 전반적으로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물가 현상이 지속되면서 저물가 현상의 고착화를 유발할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우선 국제 유가 하락기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유가가 상대적으로 싼 기간 동안 유류 비축량 증대, 오일 생산국에 대한 장기 수급 계약 조정 등을 통한 오일 수입 비용 축소, 오일 자원 개발 투자의 효율성 제고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기업의 연구·개발(R&D), 인적자원 개발 등으로 전환돼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또 적극적인 금융·통화·재정 정책을 통한 경제 전반의 유효수요 창출 노력을 가속해야 한다. 국제 유가 하락으로 저물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적극적인 금융·통화·재정정책을 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들도 유가 하락에 따르는 비용 절감 효과가 전반적인 생산성 증대 효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