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파장은]
{‘선물 기준 5만원’ 중국산이나 가능}
{2009년 폐지된 ‘접대비 실명제’ 전철 밟을 수도}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가 지난 5월 13일부터 6월 22일까지 진행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김영란법) 시행령(안)’에 대한 입법 예고 기간이 끝났다.

권익위는 그동안 합리적인 시행령 안을 마련하기 위해 2015년 5월 공개 토론회, 7월 순회 설명회, 2016년 5월 공청회 등을 실시하며 다각도로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했다. 권익위는 앞으로 법제처 심사 등 정부 입법 절차를 거쳐 김영란법이 시행되는 오는 9월 28일 전에 시행령 제정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황민아 권익위 청탁금지법 시행준비단 사무관은 “입법 예고 기간 중에 많은 의견들이 들어왔다”며 “수렴된 의견을 검토해 정부 입법 절차, 규제·법제 심사 등을 거쳐 시행령을 계획대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영란법 후폭풍] “연간 매출 손실 11조원” 음식업 소상공인 등 직격탄
(사진) 2015년 9월 4일 농축산물 및 화훼류 소속 농민들이 정부 세종청사 앞에 모여 '김영란법' 반대 집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김영란법은 공직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뿌리 뽑겠다는 취지에서 비롯됐지만 법 시행에 따른 내수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또 450여만 명에 달하는 광범위한 대상자, 현실과 동떨어진 낮은 선물 금액 등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이 지난 6월 19일 발간한 ‘김영란법의 경제적 손실과 시사점’에 따르면 김영란법으로 인해 연간 11조6000억원 정도의 경제적 손실을 볼 것으로 나타났다. 한경연이 추산한 산업별 연간 매출 손실액은 음식업 8조5000억원, 골프장 1조1000억원, 선물 관련 산업 약 2조원 등이다.

◆ 한우 선물 세트, 10만원 이상이 매출 93%

이병기 한경연 선임연구위원은 “오는 9월 법이 시행되면 음식업·골프업·소비재·유통업 등에 직접적인 타격이 예상된다”며 “관련 업계에 수조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만큼 법 시행 전에 관련 산업 피해 경감 대책을 포함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주요 경제 6단체, 중소·소상공인단체와 농림축수산단체는 지난 6월 21일 김영란법 시행으로 국내 경제 전반에 악영향이 예상된다며 권익위에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법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저성장 장기화, 내수 침체 등 국내 경제가 처한 현실을 감안해 현행대로 법과 시행령이 시행된다면 애초에 계획한 목적을 달성하기보다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특히 시행령 제정안의 항목·금액 등이 현실과 괴리돼 소상공인·농림축수산인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우려된다”며 “선물을 업종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규제함으로써 선물 매출이 중심인 농축수산물 유통과 화훼·음식점 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 자명하다”고 밝혔다.

또한 “현실 물가를 고려하지 않은 선물 최대 5만원 기준으로는 외국산 제품만 가능할 뿐 국내 농축수산물과 중소공인의 수제품은 해당 사항이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농협중앙회 축산경제 리서치센터는 “설과 추석 명절에 주로 판매되는 농축산물 선물 중 과일은 5만원 이상의 매출이 50%이며 특히 한우 선물 세트는 93% 이상이 10만원 이상”이라며 “선물 수수 허용 대상 선물 가액이 5만원 수준에서 정해진다고 가정하면 농축산물의 선물 수요는 큰 폭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도 김영란법이 올 하반기 내수 시장에 불러올 파장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6월 22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경제 동향 간담회를 주재한 자리에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민간 소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헌법재판소 판결 등 변수가 남아 있지만 김영란법이 시행된다면 민간 소비에 분명히 어느 정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비난 우려해 모두가 침묵”

일부 학계 관계자들은 김영란법이 지닌 법의 형평성과 위헌 소지 여부에 대해 지적하며 반대 의견을 냈다.

김정주 건국대 명예교수는 “법과 제도를 집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라며 “정치인과 정당인, 시민 단체 종사자들이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예외 조항에 대해선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김영란법을 1919년 미국에서 시행된 금주법과 1960년대 초반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에 빗대며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김 교수는 “미국은 술이 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막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1919년 금주법을 만들었지만 법이 발효되자 밀주가 성행하고 밀주가 큰돈을 버는 장사가 됐다”면서 “금주법으로 생사람을 잡고 이익을 외국에 넘겨줬다. 금주법은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 났고 1933년 폐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영란법은 실패로 끝난 미국 케네디 정부의 쿠바 침공을 떠올리게 하는 법”이라며 “미국의 쿠바 사태와 김영란법을 비교해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당시 쿠바의 카스트로 정부는 미국인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었다. 결국 카스트로 정부를 제거하기 위해 쿠바를 침공했지만 작전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면서 “누군가 작전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제기하려고 하면 간첩 취급을 당했다. 그러니 참모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며 실패한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소셜 네크워크 서비스(SNS)에서 김영란법에 토를 달았다가는 “그럼 부정부패를 그냥 놔두자는 것이냐”는 식의 항의가 빗발치며 뭇매를 맞는다고 그는 전했다.

김영란법이 2015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재적 의원 247명 중 228명이 찬성해 92.3%의 높은 찬성률을 보였다. 찬성표를 던졌던 한 여당 의원은 “사실 정부에서 요청해 여당이 하나가 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찬성표를 던진 것”이라며 “당시에도 향후 법이 불러올 파장에 대해 걱정했었다”고 고백했다.

김영란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학자들도 있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김영란법은 통과되기 이전보다 통과된 후 더 큰 논란에 휩싸인 특이한 경우”라며 “이 법은 형사특별법이며 반부패특별법인데 법이 시행된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부정부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한국은 부정부패를 차단하기 위해 형사법에 뇌물죄에 관해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면서 “부패 방지 및 권익위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공직자윤리법 등을 시행하고 있고 대통령 산하에 감사원을 둬 공무원에 대한 직무 감찰권을 부여해 감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도 김 교수와 뜻을 같이했다. 전 교수는 “김영란법 이외에도 다양한 형사법을 통해 통제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김영란법을 제정해 시행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과잉 금지의 원칙에 위배되는 위헌적 여지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김영란법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에 상관없이 본인이나 배우자가 100만원이 넘는 금품 또는 향응을 받으면 무조건 형사처분을 받도록 했다는 점에서 문제”라며 “신분범으로서 그 적용 범위가 과도하며 고의가 없어도 처벌한다는 점에서 형법 제13조에서 정한 고의범 처벌 원칙에 반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항목별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김영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했다.

최 교수는 “‘공직자 등’의 ‘등’이라는 한 자에 민간 영역까지 포함함으로써 이 법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해졌다”며 “이 법은 특별형법으로, 형법은 죄형법정주의에 투철해야 하지만 모호한 규정들로 채워져 있어 죄형법정주의와 법치주의에 반하며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영방송인 KBS와 EBS는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지만 민간 언론은 대상이 아니다”며 “자립형 사립학교와 사립대학도 준공무원이 아니므로 자율성이 보장돼야 할 민간 영역에 과도한 침해로 비쳐져 헌법상 과잉 금지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민간 영역 중에서도 국고 보조금을 받는 시민 단체는 포함하지 않았고 공공적 성격이 강한 금융·의료·법률 등의 민간 영역 역시 제외돼 헌법상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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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 “법 준수 외 다른 대안 없다”

기업의 대외 홍보 업무를 맡고 있는 관계자들은 기존의 관계 중심적 접근에서 탈피해 실질 업무 중심으로 접근 방식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영란법 도입으로 대외 업무 성격이 비공식적 접근에서 공식적 접근으로 변화가 불가피하므로 공직자 및 언론인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 중심의 세미나나 간담회 위주로 대외 업무가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법 시행 후 시범 케이스로 걸려들 것을 우려해 바짝 몸을 낮춘 채 진행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업계의 맏형 격인 삼성그룹은 법이 시행되면 철저히 준수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기업 이미지와도 직결된 문제인 만큼 법이 시행되면 법을 준수하는 것 외에 다른 대응 방안이 없다”며 “일부 한두 사람 때문에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김영란법은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와 같은 것”이라며 “운전자들이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를 법제화하기 이전에는 잘 매지 않았지만 법으로 단속하면서부터 잘 지키기 시작했다. 김영란법 또한 이처럼 법으로 규정하면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법 취지에 대해선 충분히 공감하지만 기업으로선 자칫 잘못했다간 본보기 사례로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몸을 낮추고 진행 상황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기업에 김영란법은 예전 ‘접대비 실명제’를 떠올리게끔 만든다. 실명제는 정부의 기대와 달리 실제 기업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인 반면 꼼수가 난무하는 부작용을 키웠다.

2004년 초 정부는 기업의 소비성 지출을 막기 위해 건당 5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기업이 지출할 때 접대 목적과 접대 상대방의 상호 및 사업자 등록번호 등을 기재하도록 한 ‘접대비 실명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실명제를 도입 후 기업은 카드 소액 분할, 기업 간 카드 교환 사용, 차명 기재 등의 방법을 동원해 변칙적으로 운용했고 현금 결제가 늘어나면서 지하경제가 양산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결국 실명제는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라는 비판 끝에 2009년 2월 폐지된 바 있다.

기업 홍보실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불합리한 접대 등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돼 환영하는 입장”이라면서 “다만 식사 인원수를 허위로 늘리거나 법인 카드 대신 기프트 카드를 사용하는 등 다양한 편법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henr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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