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김영란법 신풍속도 : 몸 사리는 대학 병원들]
김영란법 교육에 분주한 대학 병원들, 영업 제한에 제약업계 ‘울상’
입원·수술 ‘순서 조정’ 아예 기피…“위급 환자 어쩌나”
[한경비즈니스=김병화 기자] 9월 28일,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 태풍이 몰아친다. 의료계도 태풍의 영향권이다.

국공립 대학 병원은 물론 사립대학 병원까지 법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 그동안 관행적으로 환자의 입원이나 진료 수속을 부탁하는 것들이 모두 김영란법 위반이다. 의료계가 잔뜩 움츠린 가운데 제약업계도 비상이다. 매출에도 직격탄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부정청탁은 안 되지만…”

대학 병원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진료와 입원 등 대부분이 환자와 관련된 사안들인 만큼 그동안 청탁 형식으로 이어져 온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다.

한 대학 병원 관계자는 “부정청탁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진료·수술·입원 등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면서 “조금 더 빨리 수술을 해야 할 상황이 자주 발생하는데 그에 따른 순서 조정 자체가 꺼려질 수밖에 없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급한 환자는 당연히 수술을 서둘러야 한다. 수술을 서두르기 위해서는 수술 순서를 바꾸는 것은 물론 진료 순서와 입원 순서까지 모두 바꿔야만 한다. 모두 김영란법에서 금지하는 항목들이다.

또 다른 대학 병원 관계자는 “의학적으로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면 김영란법에서도 허용해 주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를 위급하고 순서 조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판단할지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 병원들은 진료·입원·수술 등을 포함한 일체의 청탁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추후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지를 전면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이 시행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법을 이해하지 못한 관계자들이 많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대부분의 의료 업계 관계자들은 어디까지, 어떻게 법이 적용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모양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 병원들은 설명회 등 내부 교육을 통해 막판 과외 수업에 나서기도 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9월 21일 김영란법 설명회를 열었다. 국립의료원 관계자는 “법 시행을 앞두고 틈틈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지난 9월 21일에도 오후 4시부터 1시간 반 정도 병원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법 시행 초기에는 일단 원칙을 준수하면서 앞으로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브란스병원도 같은 날 오후 12시 반부터 2시까지 교육을 진행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한 첫째 김영란법 설명회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김영란법의 전반적인 내용을 두루 살피며 윤곽을 잡는 차원의 교육이었다”면서 “다음 설명회에서 세부적인 내용까지 살피면 직원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이 어딘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서울대병원은 9월 2일, 전남대병원은 9월 5일, 조선대병원은 9월 8일, 경희의료원은 9월 19일 김영란법 관련 특별 교육을 실시했다.

◆ 가액 기준, 약사법 적용 받아

제약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김영란법 시행 후 영업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실 제약업계는 부정청탁 등의 규제에 대한 내성을 갖고 있다. 2010년 11월부터 시행한 ‘리베이트 쌍벌제’ 덕분이다. 리베이트 쌍벌제는 제약회사가 의사에게 금전·물품·편익·향응 등 각종 리베이트를 제공할 경우 양쪽 모두를 처벌하는 제도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리베이트 쌍벌제보다 한층 강화된 규제로 제약사들의 영업 활동을 감시할 전망이다. 리베이트 쌍벌제에서는 10만원 이하 식음료, 5만원 이하 기념품 등을 허용하지만 김영란법에서는 식비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제한한다.

처벌 수위도 리베이트 쌍벌제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인 반면 김영란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고 규제 대상에는 배우자까지 포함된다.

일각에서는 ‘현행 약사법 시행규칙에서 허용하는 식사비(10만원)·판촉물(1만원)·기념품(5만원) 등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에도 그대로 허용된다’는 유권해석도 나왔다.

김영란법이 그 밖에 다른 법령, 기준 또는 사회 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나온 판단이다. 이에 따르면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 설명회, 대금 결제 조건에 따른 비용 할인 등 약사법에서 허용하는 행위 역시 적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다. 제약사의 마케팅 대상인 병원 관계자들이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A제약사 관계자는 “약사법이라는 우산을 썼다고 하더라도 마케팅 대상이 꺼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며 “실제로 최근에는 아예 만나 주지 않는 대학 병원 교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에서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소비자 광고는 금지되고 있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처방권을 갖고 의약품을 선택하는 의사들을 상대로 마케팅 활동을 해야 하는 실정이다.

제약사들은 김영란법 시행으로 마케팅 활동에 제약이 생기는 만큼 매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B제약사 관계자는 “영업 사원의 숫자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렵게 자리를 마련해도 제품을 잘 봐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못한 채 홍보물만 전달하고 나와야 할 상황인데 영업 사원이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충격은 의사들이 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판매하는 해외 제약사보다 제네릭(복제약) 및 개량 신약 비율이 높은 국내 제약사들이 더욱 클 전망이다.

kb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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