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19 재계 키워드②-사업 재편]
안 되는 사업 접고 부동산 팔고…미래 사업엔 조 단위 투자
(사진) 리츠에 매각한 롯데백화점 강남점/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대기업들은 2019년 그 어느 해보다 빠르게 사업 재편을 추진했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되거나 다른 사업과 시너지가 나지 않는 사업은 팔아 치우고 앞으로 될 만한 사업이나 기존 사업을 보완할 수 있는 곳엔 대규모 투자를 하는 방식이다.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은 자사 토지와 건물을 팔아 현금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움직임은 유통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롯데그룹은 백화점과 마트 등 보유 부동산을 매물로 내놓았다. 이는 부동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 한편 체계적 자산 관리를 통한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구리점, 롯데백화점 광주점, 롯데백화점 창원점, 롯데아울렛·롯데마트 대구율하점, 롯데아울렛·롯데마트 청주점, 롯데마트 의왕점, 롯데마트 장유점 등 9곳을 롯데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롯데리츠)에 매각했다. 처분 규모는 1조629억원 수준이다.

앞서 롯데쇼핑은 2019년 5월에도 알짜인 롯데백화점 강남점을 리츠에 넘기고 약 42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한 바 있다.

이마트는 세일 앤드 리스백(점포 매각 후 재임대) 방식의 자산 유동화를 통해 재무 건전성 강화에 나서기로 했다. 마트 142개, 트레이더스 16개 등 158개 점포를 갖고 있는 이마트는 이 가운데 자가 점포가 85.4%인 135개다. 이는 자가 점포 비율이 50~60% 정도인 경쟁사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마트는 KB증권과의 협의를 통해 자산 유동화 점포를 선정한 후 투자자 모집 등 연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예정인데 예상 규모는 1조원 수준이다.

롯데·신세계는 부동산을 매각해 확보한 자금을 온라인 유통과 물류 등 신산업과 함께 부진을 겪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 활성화에 투자할 계획이다.

유통업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의 대기업들도 현금 확보 차원에서 땅과 빌딩을 매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준공 20년 된 부산시 사하구 하단오거리에 자리한 사옥을 2019년 10월 부산지역 중견기업에 30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사옥은 지하 5층 지상 12층, 1만8361㎡(약 5554평)의 상업용 빌딩으로, 현재는 삼성전자판매·삼성화재·삼성생명 등 삼성 계열사를 비롯해 국민건강보험공단·국민연금·고용노동부·미래에셋대우 등이 입주해 있다.

◆부동산 자산 팔아 치우는 유통 기업들
안 되는 사업 접고 부동산 팔고…미래 사업엔 조 단위 투자
(사진) 현대중공업과의 합병을 추진중인 대우조선해양 의 옥포조선소/한국경제신문

삼성은 2016년부터 차례로 사옥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삼성생명 태평로 본관은 약 5700억원에, 삼성화재 을지로 사옥은 4400억원에 매각됐다. 2018년엔 삼성물산 서초사옥을 7500억원에 팔았다. 2019년엔 삼성생명 소유의 여의도 빌딩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CJ그룹은 마곡지구와 인접한 강서구 가양동에 10만5762㎡ 규모의 부지 매각을 추진 중이다. 서울시 도시개발 개정안 부결로 사실상 계획대로 개발이 무산된 데다 연이은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차입금 규모가 11조원을 넘어서자 재무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매각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예상 가격은 약 8500억원 수준이다.

그룹 주력사인 CJ제일제당은 2019년 2월 미국 냉동식품 가공 업체 쉬완스컴퍼니 지분 70%를 1조9000억원에 인수하는 한편 네덜란드 사료 업체 뉴트레코에 사료사업부를 매각하려던 계획이 무산되면서 자금 유동성이 악화됐다.

CJ는 자산 유동화도 추진한다. 대상은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소재 공장 토지와 건물이다. CJ제일제당은 구로 공장을 신탁 수익 회사인 와이디피피 유한회사에 세일 앤드 리스백 방식으로 매각하기로 했다. 거래 금액은 2300억원 규모다.

CJ그룹은 2019년 CJ헬로비전과 투썸플레이스를 잇달아 매각해 1조1800억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2019년 11월 기자간담회에서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버리겠다”고 강력히 말하며 사업 정리를 강조했다. 한진그룹은 2019년 초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연내 매각하고 제주 서귀포시 파라다이스호텔 부지도 매각할 뜻이 있다고 밝혔다. 송현동 부지는 한진이 호텔 건립을 추진하던 땅이다. 실제로 행동주의 펀드인 KCGI는 한진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송현동 부지를 포함한 부동산 매각을 요구했다.

정리까지는 아니지만 투자 유치를 통해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유동화하는 기업도 생겼다.

현대차그룹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들어서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을 위해 해외 연기금과 국부펀드, 글로벌 투자 펀드,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에게 투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최근 현대차가 2019년부터 총 61조원의 투자 계획을 공개한 가운데 비핵심 자산 유동화를 통해 미래 투자 재원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과거 인기 있던 알짜 사업이라도 성과가 좋지 못하면 과감히 처분하기도 한다. 면세점 사업이 대표적이다. 한화그룹은 ‘황금알’로 불리던 시내 면세점 사업에서 3년여 만에 전격 철수했다. 2015년 말 이후 3년여간 1000억원 이상 적자를 내면서 더 이상 면세점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5년 면세점 허가를 받은 서울 시내 면세점 중 영업을 접는 것은 한화가 처음이다. 두산그룹 역시 그룹 사옥인 두산타워에 있는 면세점 사업을 접기로 했다. 원래 2020년 4월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앞당겨 1월 25일 문을 닫기로 했다.

◆사업 조정에 가장 적극적인 LG

안 되는 사업 접고 부동산 팔고…미래 사업엔 조 단위 투자
(사진)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마무리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반면 대기업들은 비핵심 자산 매각과 동시에 신사업 중심의 사업 재편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LG그룹이다. LG전자는 2019년 2월 연료전지 사업에서 철수했다. 영국 롤스로이스와 합작 형태로 운영했던 LG퓨얼셀시스템즈를 청산하기로 합의하고 자산 처분에 들어갔다. LG그룹은 2000억원 넘게 투자했지만 결실을 보지 못하자 사업을 접었다.

다른 계열사도 비슷하다. 성과가 나지 않는 사업은 정리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일반 조명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에서 철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이노텍 역시 기판소재사업부 내 고밀도다층기판(HDI) 사업 철수를 검토 중이다. LG화학은 액정표시장치(LCD) 소재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스마트폰처럼 적자에 허덕이는 핵심 사업이 매각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전망도 나온다.

LG는 그 대신 신규 사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자동차 전장과 5G·로봇·첨단 소재 등이 대표적이다. LG전자는 오스트리아 전장 조명 회사 ZKW를 그룹 사상 최고 M&A 금액인 1조444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LG화학 역시 첨단 소재 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LG화학은 2019년 취임한 신학철 부회장 주도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첨단소재사업본부를 신설하면서 첨단 소재 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현대차그룹은 미래 성장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투자를 진행한다. 현대차는 최근 1~2년 사이 미국과 유럽에 있는 미래차·차량공유·인공지능(AI) 등 업체들에 꾸준히 지분을 투자해 왔다. 2019년 하반기에는 미국 자율주행 기술 개발 업체 앱티브(Aptiv)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며 미래차 시장에 대한 투자 의지를 다시 한 번 나타냈다. 앱티브와의 JV 설립 규모는 20억 달러(약 2조4000억원)로 현대차그룹의 역대 M&A 가운데 가장 컸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세계 조선 사업의 지형도를 바꿀 M&A를 진행 중이다. 바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다. 약 2조원대에 달하는 이 딜이 마무리되면 압도적 세계 1위 조선사가 탄생하게 된다. 2018년 말 기준 수주 잔량 1위는 현대중공업, 2위는 대우조선해양이다. 두 회사의 수주 잔량을 합치면 3위 이마바리에 견줘 3배 수준이 된다.

문제는 각 국가의 기업 결합 승인이다. 현대중공업은 한국과 중국·일본·유럽연합(EU)·싱가포르·카자흐스탄 등 6개국에 기업 결합 심사 신청을 냈다. 신청을 낸 모든 국가에서 승인을 받아야 인수가 완료되는데 현재까지는 카자흐스탄에서만 승인이 난 상태다.

◆베트남 1위 2위 그룹에 투자하는 SK


대규모 투자를 통해 사업 성장을 꾀하는 곳도 있다. 삼성전자는 2019년 133조원의 투자 계획을 전격 발표하면서 재계를 놀라게 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해 세계 시스템 시장 1위에 오르겠다는 로드맵을 밝혔다. 삼성전자가 미래 10년을 내다보는 투자 계획을 밝힌 것은 2010년 이후 10년여 만에 처음이다.

물론 삼성전자가 대규모 투자 계획만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2019년 11월 모바일 중앙처리장치(CPU) 코어를 자체 개발하기 위한 ‘몽구스’ 프로젝트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모바일 CPU는 스마트폰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핵심 장치로, 이 가운데 코어는 데이터 연산을 담당한다. 삼성전자는 ‘엑시노스’라는 브랜드로 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으로 구성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를 만들어 왔다. 삼성전자는 CPU 코어를 독자 개발하기 위해 2010년부터 별도 팀을 운영해 왔다. 삼성전자의 몽구스 프로젝트 중단으로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개발 인력 300여 명과 캘리포니아 주 샌호세 지역 개발 인력이 해고될 것으로 보인다.

SK그룹도 투자 중심으로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이다. SK하이닉스는 차세대 반도체 클러스터로 지정된 경기도 용인에 2022년 이후 총 120조원을 투자한다. 팹(실리콘웨이퍼 제조 공장) 4개를 건설해 용인을 새로운 반도체 도시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SK그룹은 특히 해외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9년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를 투자해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 빈그룹의 지분을 매입하기로 했다. 빈그룹은 베트남에서 아파트·리조트·자동차 등 다양한 사업을 해왔다. 앞서 SK그룹은 2018년 베트남 2위 기업인 마산그룹 지주사 지분을 4억7000만 달러(약 5461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중국 시장에서는 중국 최대 석유화학 기업 시노펙과 SK종합화학 합작사 중한석화를 통해 현지 정유 기업인 우한분공사를 M&A하기로 했다. 중한석화는 2013년 가동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누적 영업이익이 2조원을 넘어설 정도로 대표적인 글로벌 투자 성공 사례로 꼽힌다.

롯데는 유통업을 효율화하는 한편 그룹의 한 축인 화학 사업에 베팅하고 있다. 2019년 5월 9일 미국 루이지애나에서 열린 롯데케미칼 에탄 크래커 공장 준공식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직접 참석할 정도로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루이지애나 공장은 북미 지역의 셰일가스를 원료로 에틸렌과 에틸렌글리콜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축구장 152개 크기의 초대형 플랜트로 투자 규모만 31억 달러(약 3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 공장이 예정대로 가동되면 롯데의 에틸렌 생산량은 연간 292만 톤에서 450만 톤으로 대폭 늘어난다. 이 덕분에 현재 글로벌 11위 석유화학사인 롯데케미칼은 단숨에 7위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 산업은 지형도가 크게 바뀔 것으로 보인다. HDC현대산업개발은 금호아시아나그룹 소속이었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눈앞에 두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이사회를 열고 아시아나항공 지분 61.5%를 2조101억원에 취득하기로 했다고 2019년 12월 27일 공시했다. 1조원이 넘는 현금을 가지고 있는 HDC는 아시아나항공 인수 이후 ‘모빌리티’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은 국내 2위 항공사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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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7호(2019.12.30 ~ 2020.01.0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