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성장 기반 마련 못해, 추가 금융 완화책에 의존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014년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 결산
6년 전 금융 위기가 발생한 이후 세계경제는 위기 극복 과정에서 제로 금리, 양적 완화 등으로 대변되는 비정상적 대책이 실행되면서 종전의 인식과 이론이 통하지 않는 ‘뉴 앱노멀’ 시대로 변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이전은 ‘노멀’, 이후의 새로운 경제 질서를 뜻하는 ‘뉴 노멀’에 이어 등장한 용어가 ‘뉴 앱노멀’이다.

뉴 앱노멀은 대표적 경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처음 언급한 용어다. 양적 완화 종료 이후 경제 상황을 분석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준다. 루비니 교수가 보는 뉴 앱노멀은 ▷저성장 ▷긴축에 따른 피로감 ▷지나친 소유권 등이 경제활동을 방해하는 현상이다. 뉴 노멀 시대에는 쉽지 않지만 경제 발전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뉴 앱노멀 시대에는 예측하기가 힘들어 대응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기존의 인식과 이론도 통하지 않고 미래 예측도 어렵다면 경제 상황은 불확실성과 불안전성으로 대표되는 뉴 앱노멀로 전개된다는 의미다. 지나친 변동성이 우려되는 현 상황에서 지난 6년간 금융 위기를 극복하면서 나타난 정치·경제·재정 문제 등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올해 세계경제도 새로운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추가 금융 완화책에 의해 지탱해 나가는 국면이 지속됐다. 세계경제가 금융 위기와 같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구조조정과 설비투자가 이뤄져야 하지만 이 부문에 대한 노력은 부족했다.


세계 경제성장률 하향 조정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이후 등 대부분의 예측 기관들이 예측 시마다 거품이 우려되는 자산 가격과 관계없이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하향 수정해 왔다. 세계 경기 회복이 완전하지 못한 상황에서 양적 완화가 종료됨에 따라 금융 위기 이후 어렵게 마련된 회복 기반이 다시 약화되고 신흥국들이 자금 이탈에 시달리면서 ‘저성장’ 혹은 ‘복합 불황’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계속해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0월 발표한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과 2015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이전(7월 전망)보다 각각 0.1% 포인트, 0.2% 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이는 금융 위기로부터 파생된 과잉 채무와 고실업률 문제가 잔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잠재성장률 저하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내년에도 세계경제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위기 이후 ‘제로(0) 금리와 함께 미국 중앙은행(Fed) 통화정책의 양대 축으로 추진해 왔던 ‘양적 완화 정책(QE)’이 올해 10월에 열렸던 Fed 회의에서 종료됐다. 올해 초부터 매 Fed 회의 때마다 100억 달러씩 축소해 온 테이퍼링이 마지막 남은 150억 달러를 한꺼번에 축소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양적 완화 정책은 규모가 크지만 시한을 정했던 1차와 2차 일몰 조항(sunset clause) 정책과 규모는 작지만 시한을 두지 않았던 무기한 정책인 3차로 나눠 추진됐다. 테이퍼링은 양적 완화 규모가 축소됐다는 의미에서 달리 보는 시각이 있지만 정책 자금이 공급되는 면에서는 성격이 같아 3차 양적 완화 정책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순수하게 양적 완화 정책의 효과로 볼 수는 없지만 본래의 목적인 위기 극복과 경기 회복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정국의 금융 위기를 ‘유동성 위기→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순으로 극복하는 경로로 볼 때 현재 약 8부 능선에 달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 위기 극복이 8부 능선에 달할 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산 가격이 거품을 우려할 정도로 높지만 실물 경기 회복세가 미약해 자산시장과 실물 경기가 따로 노는 현상이다.

자산 가격과 실물 경기가 따로 놀 때 어디에 우선순위를 놓고 ‘적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이후 경기 상황이 크게 달라진다.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 종료를 의미하는 양적 완화 종료 이후 출구전략 추진 시 자산시장에 낀 거품 제거에만 우선순위를 둔다면 실물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는 ‘역자산 효과(anti wealth effect)’까지 가세돼 ‘복합 불황’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실물 경기 회복에만 우선순위를 둔다면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더 심화돼 나중에 더 큰 후유증(after crisis or after shock)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세계경제의 탕아 아베 정부 ‘2차 아베노믹스’ 추진
이론적으로 양적 완화, 제로 금리 등 비상 대책보다 출구전략을 추진하기가 더 어렵고 실제로 정책 시기와 수단을 잘못 판단해 경기가 재둔화되고 위기가 재발된 사례가 많다. 앞으로 추진될 출구전략의 벤치마크국인 일본도 2006년 이후 출구전략 추진 시 정책 수단을 잘못 선택해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장기화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1930년대에도 성급한 출구전략 추진으로 대공황을 야기한 당시 Fed 의장의 이름을 딴 ‘에클스의 실수(Eccles’s failure)’를 저지른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양적 완화 종료 이후 출구전략이 본격화될 때 ‘저성장→출구전략 추진→자산가격 하락→역자산 효과→추가 경기 침체’로 자산시장과 실물 경기 간의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복합 불황에 빠지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급부상하고 있다. 내년 세계경제를 불안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아베 정부는 출범 이전부터 일본 경제를 재탄생시키기 위해 ‘아베노믹스’와 ‘소비세 인상’이라는 두 가지 커다란 정책을 구상했다. 출범 직후 아베노믹스를 추진한데 이어 올해 4월 1일부터 종전 5%를 소비세를 8%로 인상했다. 계획대로라면 2015년 10월에 10%로 또 한 차례 올려 2020년에 재정수지를 흑자로 전환한다는 목표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2014년 세계경제와 국제 금융시장 결산
소비세는 간접세로, 조세 기반이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일본과 같이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는 고령화 국가에서는 다른 세목에 비해 경제에 미치는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가 문제가 될 때마다 실제 단행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세 인상 방안이 지속적으로 검토돼 왔다.

하지만 일본의 1997년 소비세율 인상이 장기간에 걸친 디플레이션을 초래한 종전의 경험이 소비세율 인상의 당위성을 대체하면서 무려 17년 동안 연기돼 왔다. 총수요 항목별 국민소득 기여도가 70%에 가까운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여건에서 소비세 인상을 단행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를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우려돼 왔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