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A to Z②] 약속과 다툼의 역사 써온 비트코인, 그래서 더 강하다
‘8월 1일’ 비트코인의 미래가 바뀌는 날
[오태민 크립토 비트코인 연구소장, '비트코인은 강했다' 저자] ‘사인을 보내~ 시그널을 보내~.’ 연인으로 만들기 위해 ‘시그널을 보내’려고 한다는 아이돌 걸그룹의 노래 가사처럼 바로 지금 비트코인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은 서로 갈라지지 않으려고 ‘시그널’을 보내는 유행이 한창이다. 비트코인 관계자들은 ‘NYA’라는 세 글자를 인터넷에 계속 노출하고 있다. 올해 5월 주요 비트코인 관계자들끼리 약속한 ‘뉴욕합의(New York Agreement)’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8월 1일은 비트코인의 미래에 중요한 날이다. 뉴욕합의를 통해 비트코인은 이날 처리 용량을 늘려 입출금의 속도 개선을 예정하고 있다. ‘세그윗(SegWit2X)’이라고 불리는 이 변화가 필요한 이유는 증가한 거래량을 따라가지 못하는 소프트웨어의 한계 때문이다. 비트코인 거래를 기록하여 10분 마다 묶는 블록의 처리용량은 1MB인데 1초에 7개의 거래밖에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비트코인 자체가 저렴해서 거래수수료가 미미했던 초창기에는 수많은 허위거래를 보내 시스템의 반응속도를 떨어뜨리는 디도스 공격에 취약했다. 시스템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원래 36MB나 되었던 거래용량을 2010년도에 1MB로 줄였다. 그러나 이후 거래량도 증가했고 비트코인 가격과 함께 거래 수수료도 비싸져서 더 이상 이런 방식의 공격이 현실적이지 않게 되었는데도 거래용량은 터무니 없이 낮게 설정된 상태 그대로인 상황이다.

그래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로 합의한 게 뉴욕합의다. 그런데 합의가 된다고 다가 아니다. 비트코인은 피투피(PtoP) 방식으로 운영된다. 중앙 서버나 지휘소가 없이 개별 컴퓨터들 간의 소통으로 유지되는 시스템이 피투피다. 중앙 서버가 없기 때문에 피투피 시스템에서의 프로그램 업그레이드는 만장일치를 통해 이뤄지거나 아니면 아예 분열된다.

회사 소유의 소프트웨어는 회사가 관리하는 중앙 서버를 통해 프로그램을 변경한다. 회사는 서버에 업그레이드 버전을 올린다. 그리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용자는 서버에 접근해 업그레이드 버전을 다운 받는다.

그런데 피투피에서는 이 과정이 복잡하다. 누군가가 업그레이드 버전을 만들어 네트워크에 올린다. 일종의 제안이다. 원하는 사용자들이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려 받는다. 만약 참가자 모두가 동의한다면 시스템 전체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하지만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다수 존재하기 마련이다. 일사불란한 시스템 전체의 업그레이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상당 기간 동안 구형과 신형 버전들이 혼재한다.

만약 구형 프로그램과 신형 프로그램들 간에 호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스템은 둘로 갈라지는 셈이다. 비트코인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참여자 절대 다수의 일사불란한 합의와 행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다른 시스템들로 나눠질 위험이 있다. 이를 포킹(forking)이라고 한다.

비트코인도 초창기에는 창안자의 지도력에 따라 일사불란한 업그레이드를 몇 차례 수행했다. 하지만 시스템의 규모가 커지자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있고 참여자들 간 이념의 간극도 벌어졌다. 사소한 규칙의 변경조차 쉽지 않다.

실제로 비트코인이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지탱하는 채굴자들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합의하지 못한 상태다. 시스템을 급격히 업그레이드한다면 채굴자들이 운영하는 채굴 시스템이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최대 장점

사용자가 늘어 거래 용량을 늘리는 이런 현실적이고 사소한 문제에서도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쉽사리 합의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의 무력함을 꼬집으면서 비트코인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변화에 대한 저항은 사실 비트코인의 핵심적인 속성이다. 비트코인을 믿어도 좋은 이유의 상당 부분을 이 속성이 제공한다. 비트코인을 화폐라고 할 수 있다면 비트코인은 규칙에 기초한 화폐다. 그것도 인류 최초로 변경 불가능한 규칙에 근거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증가 속도와 증가 한도가 고정돼 있다. 현실적인 필요를 이유로 이 규칙을 변경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왜 고칠 수 없을까. 비트코인의 규칙을 변경하려면 참가자 절대 다수가 합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절대 다수는 자신의 이익이 파괴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증가 속도와 증가 한도는 참여자들의 이익과 직결돼 있는 규칙이므로 참여자 절대 다수를 그들의 이익에 반해 설득하거나 선동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뉴욕합의처럼 거래 용량을 늘리는 수선마저도 3년 동안 합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본질적인 규칙에 대한 수정이 불가능하다는 명제를 뒷받침해 준다.

중대한 사건을 눈앞에 둘 때마다 회의론자들은 비트코인의 마지막인 것처럼 경고했다. 지난해 7월 비트코인 생산은 10분당 25BTC에서 12.5BTC로 반감됐다. 4년마다 있는 일이지만 회의론자들은 가격이 두 배로 뛰지 않는다면 채굴자들이 전기코 드를 뽑으면서 ‘가격 폭락과 채굴 경쟁 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지는 쪽에 걸었다. 하지만 반감기가 지나도 채굴자는 계속 늘었다. 그리고 가격은 몇 달 후 두 배를 훌쩍 뛰어넘었다.

또 올해 3월 미국 증권감독위원회(SEC)가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의 승인을 거절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비트코인 가격은 폭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SEC가 몰고 다니던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사실을 반겼다. 결국 자신들의 단호한 결정을 재검토하겠다며 비트코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쪽은 SEC였다.

이번 뉴욕합의를 통해 얻을 수확도 용량의 증가보다 불확실성의 해소 쪽이 장기적으로 더 의미심장하다. 적대적인 환경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낸 비트코인의 비결은 집단학습이다. 격변을 거치고 나면 언제나 대중은 비트코인 속성을 하나 더 학습한다. 비슷한 뉴스에 두 번 놀라지 않는 것을 볼 때 집단학습은 비록 더디더라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


‘포킹’은 무엇인가 - ‘소프트 포킹’ 이어 11월 1일 ‘하드 포킹’ 된다
‘8월 1일’ 비트코인의 미래가 바뀌는 날
(사진) 뉴욕합의를 이끌어 낸 인물 중 한 사람인 배리 실버트 디지털커런시그룹 CEO

8월 1일과 함께 또 중요한 날은 11월 1일이다. 쉽게 말해 8월 1일에 이뤄지는 것은 ‘약간의 업그레이드’다. 주로 채굴자에게 영향이 있을 뿐 실제로 비트코인을 쓰고 있는 사람들에겐 큰 영향이 없다. 이 때문에 ‘소프트 포킹’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11월 1일은 다르다. 이날 이뤄지는 것은 블록 사이즈를 1MB에서 2MB로 증대하는 업그레이드가 이뤄진다. 이날은 아예 새 시스템으로 바뀌는 수준이다. 채굴자·개발자·사용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하드 포킹’이라고 불린다. 11월 1일의 하드 포킹은 아직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문가들은 소프트 포킹이나 하드 포킹이 진행되는 동안 비트코인을 다른 지갑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거래 기록이 사라지는(wipe out)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포킹이 이뤄지기 전에 비트코인을 소유한 이들은 포킹 이후에도 동일한 액수의 소유권을 모든 시스템으로부터 인정받으므로 피해가 없다. 포킹이 확실해지고 나면 비트코인 소지자들이 약한 코인을 버리고 강한 쪽으로 옮겨 타려고 한다. 이때 약한 코인은 가격이 폭락하면서 도태돼 버리기 때문에 포킹에 따른 혼란은 길어야 몇 주 동안 이어질 확률이 높다.

이런 사실을 생각한다면 또 비트코인의 미래가 유지될 것이라고 본다면 8월 1일과 11월 1일 직전에 비트코인을 구매하는 게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