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4일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낮의 과천 시내 중심가는 더없이 한산했다. 여름휴가철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칠 만큼 오가는 사람이 적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불경기로 위축될 만큼 위축된 분위기가 앞으로 얼마나 더 나빠질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천정부청사로 대표되는 이 도시는 청사 이전 문제가 당장 현실로 닥치면서 도시 전체가 우려와 불안으로 들끓고 있다. 수도권 인구 분산 계획에 따라 정부 제2청사 건립 계획이 수립된 후 1982년부터 본격 시작된 ‘과천시대’는 30여 년 만에 위기를 맞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정부청사의 ‘이전’이 아닌 상주 부서의 ‘교체’가 맞다. 현재 과천정부청사에 입주해 있는 7개 부처 중 법무부를 제외한 6개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간 후 방송통신위원회·국가과학기술위원회·방위사업청을 비롯한 장차관급 4개 기관과 경인통계청 등 8개 특별행정기관·정부통합콜센터 등 14개 기관이 신규 입주할 예정이다. 우선 올해 하반기에는 기획재정부·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환경부 등 4개 부처가 이전하고 내년에는 지식경제부와 고용노동부 등이 기관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정부청사 인력 규모는 5500여 명으로, 신규 입주할 기관들의 총인력 규모는 이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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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기관 입주까지 공백 길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천시 전체에 그늘이 드리운 까닭은 기존 부처의 이전 후 신규 기관이 입주하기까지 1년 이상의 리모델링 기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과천시는 행정도시로, 대부분의 상권이 청사에 의존하는 현실이라 장기적으로 공백이 생기면 지역 상권의 붕괴를 넘어 과천시 전체 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게 과천시와 지역 주민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가장 심각한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은 대부분 청사 공무원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음식점 업주들이다. 청사 상주인구와 청사를 찾아오는 유동인구까지 합하면 7000여 명에 이르는 규모로 리모델링 기간 동안 청사가 빈 공간으로 남게 되면 심각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는 게 한결같은 목소리다.

아직 본격적인 이전이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청사 앞 중앙동과 별양동 중심 상가는 물론 인근의 상권들은 가시화되고 있는 현실과 심리적 불안까지 겹쳐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취재진과 만난 업주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누군가는 목소리를 높여 대책 마련을 요구했고 누군가는 “이제는 걱정하다 지쳐 포기한 상태”라는 반응도 있었다. 일부는 오히려 취재진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이도 있었다. 청사 앞 한 일식집 종업원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그렇지 않아도 경기가 좋지 않아 오늘 점심 매출이 한창 때의 5분의 1 수준밖에 안 된다”며 “앞으로가 더 걱정인데 사장님은 문을 닫아야 하나 어째야 하나 고민하는 것 같더라”고 했다.

과천 청사 앞에서 부부가 각각 24년, 6년째 두 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업주는 “손님 대부분이 청사 공무원들인데 리모델링 기간이 길어지면 손해 규모를 짐작하기 힘들다”고 했다. 두 식당 모두 권리금을 주고 들어왔지만 지금은 권리금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이 업주는 “우리는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생각이지만 한 건물에 두 집꼴로 권리금을 포기하고 나가겠다는 업주들이 있다”며 “우리도 직원 수를 절반으로 줄였는데 이처럼 단순히 업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직원들, 직원들의 자녀들에게까지 파장이 미치는 게 문제”라며 심각성을 호소했다. 또한 이 업주는 “게다가 1, 2, 6단지 재건축 얘기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도시 자체가 유령도시처럼 될 것”이라며 “리모델링 기간을 줄여주고 그 기간 동안 부가세 혜택 등을 통해 소상공인들이 먹고살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0년째 고깃집을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업주는 “요즘은 열심히 일하고 싶은 의욕 자체가 없어졌다”며 “버틸 만큼 버티다가 안 되면 접자는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 업주는 “올 초 30%가 빠진 매출이 지금은 50%까지 떨어졌다”며 “직원을 3분의 1로 줄였는데, 한 식구처럼 일해 온 직원들을 줄이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라고 했다. 또 “권리금은 꿈도 안 꾸고 누군가 인수해 준다고만 하면 나가고 싶다”며 “가게를 뺄 때는 시설 등을 원래대로 해놓고 나가야 하는데 지금은 그 비용도 감당하기 힘들어 나갈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과천시 일대는 상가 임대 거래가 뚝 끊긴 상태다. 별양동 상권에서 부동산을 하고 있는 전승원 대표는 “청사 이전 이야기가 구체화된 후 특히 음식점을 하겠다고 가게를 구하러 오는 이들이 거의 없어졌다”며 “예전에는 권리금 때문에 나가지 않던 업주들이 지금은 아예 포기하고 임대 기간이 만료되면 나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 지역은 한창 호황이었을 때를 기준으로 1층 점포 33㎡(10평)당 권리금이 1억 원 정도 형성돼 있었다는 게 전 대표의 얘기. 그는 “대책은 그저 신규 기관들이 빨리 입주하는 것밖에 없다”며 “과천은 인구 7만 명의 소도시로 상권 색깔이 바뀌는 데 한계가 있어 청사 문제가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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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며 버티거나 문 닫거나

인근의 또 다른 부동산에서는 “청사 이전 문제가 단지 상권뿐만 아니라 주택 가격 하락 등에도 영향을 끼쳐 걱정”이라고 했다. 실질적으로 과천에 거주하는 청사 공무원 수는 전체의 10% 미만이지만 청사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타격이 적지 않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과천 주택 가격의 하락은 보금자리 주택 지정 여파 등의 악재가 겹친 탓”이라며 “지리적으로 강남과 가깝고 교통이 좋아 대체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천시와 지역 주민들은 ‘1년으로 예정된 리모델링 기간 단축’을 중점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과천시 공동대책위원회 김영태 대표는 “세종시에는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떠나는 도시는 황폐화되는 게 현실”이라며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그 기간을 최소화해 과천 지역 경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천시 기획감사실 오민영 청사이전대응팀장은 “물론 각 부처의 특성이 있기 때문에 리모델링 기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과천이 공동화되고 도시 기능이 없는 상태에서 신규 기관이 입주하면 업무 기능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며 “지역의 가치를 향상하면서 함께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과천시는 지역 상권을 살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시청 구내식당을 현행 월 1회 휴무에서 월 4회로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기로 하는 한편 과천 청사 구내식당도 내년부터 신규 기관의 입주가 완료될 때까지 전면 휴무를 실시하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그뿐만 아니라 과천 시내에 소재한 경찰서와 소방서·KT·코오롱·삼성SDS·대우전자센터 등에도 협조를 요청해 구내식당 정기적 휴무와 지역 상가와의 자매결연 등을 요청할 계획이다.

오민영 팀장은 “지역 상권 위축은 시 재정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시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지역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순차적인 대응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과천시 관내 상가들 역시 일반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자구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과천시 공동대책위원회 김영태 대표는 “그간 큰 업소들은 청사 공무원들을 상대로 하다 보니 위기의식이 없었던 게 사실”이라며 “산간벽지에 있는 음식점이더라도 맛이 좋다고 소문나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느냐”며 가격·서비스·맛 등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