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비율 낮출 수 있지만 수익성 악화 우려…자본 잠식 4개사도 매각·통폐합 가능성

황창규 KT 회장이 20일 KT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40520
황창규 KT 회장이 20일 KT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허문찬기자 sweat@ 20140520
KT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는 황창규 회장의 계열사 매각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업계와 증권가에서는 이석채 전 회장 시절 56개까지 늘어난 자회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황 회장의 매각 대상 선정과 그 방향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황 회장이 최근 제시한 신성장 동력 청사진에 대해서도 수익성 악화의 늪에 빠진 KT를 어떻게 구원할지 구체적인 방법이 빠져 있다는 분석이다.

황 회장은 지난 5월 취임 후 가진 첫 기자 간담회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계열사를 포함해 그룹 차원에서 계열사 조정 작업이 필요한 것이 맞다”고 계열사 매각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 첫 시도로 지난 6월 말 차량·장비 대여 자회사인 KT렌탈과 여신 전문 금융사 KT캐피탈의 매각을 결정했다.

하지만 KT렌탈과 KT캐피탈은 지난해 총 1조 원의 매출과 600억 원의 순이익을 낸 알짜배기 자회사로, KT 연결 기준 실적에서 두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차량 렌털과 일반 렌털 사업이 주력인 KT렌탈은 지난해 매출 8852억 원, 영업이익 970억 원, 당기순이익 323억 원을 기록했다. KT캐피탈은 리스·할부 금융, 기업금융, 개인금융, 신기술금융 등을 통해 2013년 매출 2202억 원, 영업이익 470억 원, 당기순이익 362억 원의 실적을 올렸다.

자본 잠식이 진행되고 있거나 부채비율이 높은 계열사 등 ‘경쟁력이 부족한’ 계열사가 많은 데도 잘나가고 있는 알짜 자회사의 우선 매각에 나선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두 자회사는 각 분야에서 우량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어 소위 ‘몸값이 비쌀 때 팔자’는 전략으로 보인다. 김회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조직 슬림화를 통해 통신 쪽에 집중하면서 현금 유동성을 개선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석채 전 회장도 임기 초 자산 매각
KT는 당장 지난 4월 단행한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의 구조조정으로 1조4000억 원에 달하는 명예퇴직금을 마련해야 한다. KT는 지난해 4분기에 이어 올 1분기까지 사상 처음으로 2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전체 55개 계열사가 낸 영업 손실 규모가 1300억 원대에 달하는 등 재정 상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KT가 미래 사업을 육성하려면 향후 3년간 4조5000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현재 KT는 보유 현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자산 매각을 통해 자본을 확보하고 신사업을 벌이는 황 회장의 전략은 과거 이석채 전 회장도 선택했던 방식이다. 매각을 통해 손에 쥐는 매각 자금도 비슷한 규모다. 업계는 매출 규모와 성장 가치 등을 고려했을 때 KT렌탈과 KT캐피탈 매각으로 거둬들이는 자금을 1조 원 안팎으로 보고 있다. KT의 자산 유동화 실적을 살펴보면 이 전 회장은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총 39곳의 부동산을 매각해 9824억여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또 1980~1990년대에 설치된 유휴 동축 케이블망을 매각하며 2012년 한 해에만 300억 원 가까이 벌어들였다. 이 전 회장은 당시 구 시가지를 중심으로 전화국 사옥을 매각해 마련한 자금을 비통신 분야에 투자해 지속 성장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그 후 이 전 회장이 사업 다각화를 본격 추진하면서 2010년 30개였던 KT의 계열사 수는 지난해 56개까지 늘었다. 주력 사업인 통신 분야의 수익성 악화를 만회하려는 시도였는데, 그 결과 KT의 전체 이익에서 자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60%를 넘었다.

황 회장이 이 전 회장과 다른 점은 이 전 회장은 비통신 분야 확대에 주력한 반면 황 회장은 이 전 회장의 전략을 전면 부정하고 다시 ‘통신 사업 집중’을 부르짖는다는 것이다. 이 전 회장이 최근 수년간 통신보다 비통신에 집중하는 사업 전략을 취하는 과정에서 통신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과거에 비해 하락했고 그룹 전반의 사업 역량이 후퇴하는 부작용이 초래됐다는 판단이다.


‘기가토피아’ 수익성 확보 미지수
KT는 자회사인 KT렌탈 및 KT캐피탈 매각 추진설에 대한 조회 공시 답변에서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사업자로서의 역량 집중을 위해 계열사 KT렌탈과 KT캐피탈의 매각을 추진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KT렌탈과 KT캐피탈 매각은 ICT 분야와 어느 정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이런 취지를 뒷받침할 수 있고 우량 계열사로서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어 효과적인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계산에서 매각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결정이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양승우 삼성증권 연구원은 “부채비율이 높은 두 자회사(KT렌탈 692%, KT캐피탈 726%)를 매각하면 KT의 부채비율은 현재 172%에서 최대 132%로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반면 연결 기준으로 연간 1500억 원 수준의 영업이익 감소 효과가 있어 이번 결정이 기업 가치에 긍정적 요인만은 아니라는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김미송 현대증권 연구원도 “두 기업이 모두 우량하므로 매각된다면 KT의 연결 기준 순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며 “두 기업이 KT 순이익에 기여하는 금액은 약 500억 원으로 내년 연결 기준 순이익 시장 전망치 8460억 원의 6% 정도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안정적인 수익을 내던 기업을 매각하는 만큼 KT가 그 공백을 채우려면 하루빨리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즈니스 포커스] KT 우량 계열사 매각, ‘양날의 칼’ 되나
KT는 현재 영업이익이 줄어들고 있고 특별한 성장 모멘텀이 아직 없다는 게 큰 고민이다. 황 회장은 취임 약 5개월 만인 지난 5월 KT의 청사진을 내놓았다. 황 회장이 직접 밝힌 KT의 향후 사업은 ‘기가토피아(GIGAtopia)’가 핵심이다. 유선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융합 기술 개발, 헬스 케어 등을 전략 사업으로 내세우는 한편 3년간 4조5000억 원을 투입해 ‘기가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황 회장의 ‘기가토피아’ 전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KT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황 회장의 기가토피아 전략에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기가토피아가 제시한 5대 미래 융합 서비스(스마트 에너지, 통합 보안, 차세대 미디어, 헬스 케어, 지능형 교통관제)를 육성하기 위해선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한데 KT가 투자 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아직 미지수다. 설령 ‘기가토피아’ 기술을 KT가 선도적으로 확보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해 실적 악화의 늪에 빠져 있는 KT의 상황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KT는 과거 전국 와이파이존 설치로 고객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했지만 가입자 증가 효과가 크지 않았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앞으로 KT의 계열사 매각은 단계적으로 계속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다른 계열사들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KT 안팎에 따르면 계열사 조정 작업의 유력한 다음 타깃은 이 전 회장 재임 당시 편입한 벤처 성격이 강한 계열사로 유스트림·이노에듀·넥스알 등이 매각 혹은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된다. KT그룹 48개 계열사 중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진 계열사가 총 4곳으로 비통신 계열사들이 1순위 매각 대상이다. 실적도 부진한 데다 완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회생이 어려운 회사들이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