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결정족수 확보 난감해진 기업들, 위임장 권유제도 적극 활용해야

[경영전략 트렌드] 섀도 보팅 25년 만에 폐지…주총 초비상
2013년 5월 28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상장 기업의 소유권 분산과 소액주주의 참석률 저조로 주주총회가 불성립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1년 도입된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섀도 보팅)를 폐지했다. 이에 따라 2015년 1월 1일부터 개최되는 주주총회를 성립시켜야 하는 기업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제 의결권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될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기업은 더 이상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섀도 보팅을 요청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경시 풍조 주범으로 지목
섀도 보팅은 정족수가 모자라면 주주총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참석 인원 미달로 주총이 무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제도로, 정족수가 미달될 때 기업이 한국예탁결제원에 요청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다. 이때 한국예탁결제원은 주주총회 의결 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중립적 방법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로 볼 수 없다.

그동안 상장 기업들은 섀도 보팅제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왔다. 2013년 12월 결산 정기 주총 때에도 한국예탁결제원을 통해 섀도 보팅을 요청한 672개사 상장 법인은 주주총회를 무사히 열 수 있었다. 상장 법인 유형별로 코스닥 상장 법인은 426개사(43.7%)가 섀도 보팅을 요청했고 유가증권 상장 법인은 264개사(34.1%)로, 코스닥 상장 법인의 섀도 보팅 요청 비율이 유가증권 상장 법인보다 더 많았다.

섀도 보팅 의안별로 보면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요청이 가장 많았는데 그 이유는 감사(감사위원) 선임 시 적용되는 3% 룰 때문이다. 3% 룰은 현행 상법상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대주주 등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다. 상장회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섀도 보팅제가 폐지되면 3% 룰을 적용받는 감사(또는 감사위원) 선임과 특별 결의 등 의결정족수가 확보돼야 통과할 수 있는 안건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기업의 주장이다.

3% 룰은 상정 안건이 감사 선임 및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에 관한 안건인 경우 관련 규정에 의거해 의결권이 있는 발행 주식 수 총수의 100분의 3을 초과하는 주식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의결권 제한 규제다.


전자투표 활용 대안 실효성 떨어져
대주주 등의 의결권이 제한되더라도 의결정족수가 충족되면 주주총회의 찬반에 영향 없이 주주총회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에 섀도 보팅제는 경영진이 소액주주를 경시하는 풍조를 형성하거나 대주주의 영향력을 과대하게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증거가 국회 정무위원회의 법률 검토 보고서에 담긴 한국예탁결제원의 2006년 1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섀도 보팅 이용 상위 30개사의 현황이다. 30개사 중 20개사가 상장폐지(18개사) 또는 거래정지(2개사)로 섀도 보팅제가 부실기업이 주주 참여를 제한하는 등 제도 도입 취지에서 벗어나 악용되는 사례가 증가했다.

정부는 섀도 보팅제로 손쉽게 주주총회 결의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에 상장 기업이 주주의 주주권 행사 독려를 소홀히 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주주총회가 형식화되는 등 섀도 보팅제가 주주권 활성화에 장애 요인이 된다고 보고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을 통해 이 제도를 폐지했다.

개정 취지에 따르면 집합 투자업자의 대부분이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찬성한 반면 의사 표명 비율이 미미해 의결권 행사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의결권 행사와 관련해 충실 의무를 명시적으로 집합 투자업자에게 부과해 집합 투자 재산에 속하는 주식의 의결권이 투자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행사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의결권 행사 시 집합 투자업자에게 충실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기업 경영자의 태만과 사적 이익 추구 방지로 기업 가치 향상과 이를 통한 집합 투자 기구 가치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영전략 트렌드] 섀도 보팅 25년 만에 폐지…주총 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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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섀도 보팅제 폐지에 따른 부담은 집합 투자업자가 아니라 기업이 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행법에서는 집합 투자업자들이 의결권 행사 시 충실 의무와 관련된 직접적인 조항이 없고 자본시장법 제79조에 따른 선관 의무 및 충실 의무에 따라 간접적으로 규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합 투자업자는 지분율 5% 또는 100억 원 이상을 소유한 기업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견 등에 대한 기존의 공시 의무만 유지될 뿐 한국예탁결제원이 그동안 대리 행사한 섀도 보팅에 대한 행사를 집합 투자업자가 하지 않아도 이를 직접적으로 규제할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기업만 주주총회 성립이 안 될까봐 발을 동동 구르며 섀도 보팅제 완화 또는 유보 등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명할 뿐 법률 개정 취지 및 대상인 집합 투자업자는 어떠한 동요도 없다.

한편 정부는 섀도 보팅제가 폐지돼도 2010년 도입된 전자투표나 전자 위임장 제도를 활용해 일반 주주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2010년부터 2014년 9월까지 한국예탁결제원의 전자투표 서비스 이용 회사 현황을 살펴보면 특수목적회사(SPC)의 이용 건수가 대부분이고 비상장사 2개사를 제외하고는 상장회사가 이용한 실적이 없다. 또한 전자투표제를 도입한 상장 기업도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전자투표제는 기업엔 실효성 없는 대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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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주주총회를 성립시키기 위해 지난 9월 섀도 보팅제 폐지와 관련해 법무부·금융위원회·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및 정무위원회에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 의견서의 주요 내용은 섀도 보팅제가 폐지되면 감사(또는 감사위원회) 선임과 특별 결의 때 곤란하다는 상장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와 함께 주주총회 결의 요건 완화, 감사 또는 감사위원 선임 시 의결권 제한 제도 폐지, 의결권 대리 행사 권유 제도 개선, 전자 위임장 제도 도입, 섀도 보팅제의 폐지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담겨 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의 의견 대부분이 상법 또는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폐지 유예기간 연장도 제도 추진 진행을 고려했을 때 현실적으로 어렵다. 섀도 보팅제 폐지가 3개월 후로 다가왔지만 아직도 학계·기업·입법 당국 등의 입장 차는 여전히 좁혀지고 있지 않고 있다.


기업 스스로 늑장 공시 탈피 등 변화 필요
하지만 제도 시행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섀도 보팅제의 폐지가 야기하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만을 주장하기에는 늦은 감이 있고 사실 기업 스스로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답변도 알고 있기 때문에 섀도 보팅제 폐지에 대한 준비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따라서 주주총회 성립을 위한 의결권 확보를 위해 기관투자가 등 대량 주식 보유자 또는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요청, 전자투표제 도입 등의 방안뿐만 아니라 주주총회 늦장 공시 관행을 탈피하고 주주총회 의안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주주에게 알리고 참여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정부도 기존 기업 주주총회 관행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기업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다만 기업이 섀도 보팅제 폐지 이후 의결정족수 확보를 위한 핵심 대안으로 제안한 위임장 권유 제도가 섀도 보팅제 폐지에 따르는 문제점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법상 위임장 권유 방식과 수여 방식이 실무상 매우 번잡하고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전자 위임장 권유 제도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명서 EFC 책임 컨설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