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탐정 없어…2005년 이후 11번째 법안 발의 예고}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아서 코난 도일의 추리소설 주인공인 ‘셜록 홈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명쾌하게 풀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셜록 홈스와 같은 명탐정이 되고자 하는 꿈을 꾼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국내에는 공식적으로 탐정이 없다. 증거를 수집하며 단서를 꿰맞춰 가는 탐정 업무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을 중심으로 탐정 제도를 입법화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연 한국판 ‘셜록 홈스’가 탄생할 수 있을까.
[ECONOPOLITICS] 한국판 ‘셜록 홈스’ 탄생하나
(사진) 한 시민이 인터넷에서 흥신소 홈페이지를 찾아보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불법으로 정보 수집하는 흥신소

남의 사생활을 불법으로 캐 온 흥신소 일당과 의뢰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흥신소에 배우자 등의 위치 정보나 미행을 부탁한 의뢰인들을 불구속 입건하고 의뢰인이 지목한 차량에 위치 추적기를 몰래 설치해 실시간 위치 정보를 수집한 흥신소 업자들을 검거했다고 지난 7월 4일 밝혔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에 영업 중인 흥신소는 3000여 곳에 이른다. 지난해 2월 간통죄 폐지 이후 수요가 급증하면서 흥신소도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60만원 정도면 일반인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위치 추적기를 구입해 실시간 위치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한다.

흥신소를 찾는 대부분의 의뢰인은 이혼을 앞둔 부부로, 이혼 귀책사유가 상대방에게 있다는 것을 법원에 입증하기 위해 증거 수집 차원에서 흥신소 문을 두드린다. 이혼 소송 시 법원이 혼인 파탄의 원인 및 파탄에 기여한 책임 정도에 따라 위자료를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신소의 주된 업무가 외도가 의심되는 배우자의 뒷조사인 만큼 ‘흥신소=탐정’이라는 부정적인 등식이 성립됐다. 이처럼 국내에선 흔히 탐정이라고 하면 음성적으로 행해지는 심부름센터나 흥신소를 자연스레 떠올리기 마련이다.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오래전부터 탐정이 공식적으로 활동해 왔다. 미국에선 1850년 처음 탐정 업체가 등장했다. 앨런 핑커턴이란 탐정이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핑커턴 탐정 사무소가 그 시초다. 핑커턴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암살 기도 음모를 사전에 알아낸 공로를 인정받아 나중에 링컨 대통령의 경호를 맡기도 했다.

미국 내 탐정업은 각 주마다 탐정업의 효율적 규제와 활성화 방식이 혼용되고 있고 소송절차에서 변호사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는 경호·경비·민간조사 등이 결합된 보안 업체 형태로 발전했다.

셜록 홈스의 고향인 영국은 2001년 ‘민간보안산업법’을 제정했다. 과거 특별한 면허나 자격 없이도 자유롭게 탐정업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업무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는 판단에 따라 법으로 제도화했다. 현재는 국가 직업 인증을 받아야만 탐정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일본에선 ‘탐정업 업무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을 기반으로 탐정이 일반인의 실생활에 자리 잡았다.

2015년 9월 경찰청이 발간한 입법정책 설명 자료인 ‘민간조사제도 어떻게 도입해야 하나?’에 따르면 약 1억2000만 명의 인구를 지닌 일본에는 총 6만여 명의 탐정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 명당 탐정이 50명으로 탐정업이 합법한된 주요 국가들 중에서 가장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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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기쿠치 히데미 일본조사업협회장은 경찰청 민간조사업정책 태스크포스(TF)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일본에선 간단한 신고서만 제출하면 탐정업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불륜 관련 업무가 주요 수익원인 국내 흥신소와 달리 업무의 범위도 넓다. 기구치 회장이 운영하는 탐정 업체 ‘아자부리서치’의 활동 분야를 보면 불륜 관련 업무는 10%에 불과하다. 재판 증거 수집, 상속인 소재 조사 등 변호사 위탁 업무가 절반을 차지하고 인수·합병(M&A) 조사와 같은 기업 관련 업무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또한 미국의 탐정 업체인 크롤은 전체 사건의 약 50%를 법무법인(로펌)으로부터 의뢰받는다. 풍부한 인적자원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탐정 업체에서 외근 활동 조사를 수행하는 것이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이란 판단에서다. 의뢰인이 법률 자문을 필요로 할 때에는 고객과 로펌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연거푸 무산된 탐정업 법제화 움직임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유일하게 탐정 제도가 없는 나라다. 국내는 ‘신용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제40조 제4호 및 제5호에 따라 사실상 탐정 활동이 금지돼 있다. 과거 이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이 10번이나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되고 말았다.

2005년 9월 이상배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국내 최초로 ‘민간조사업법’을 정식으로 발의했다. 앞서 민간조사업법은 1990년대 후반부터 국회 공청회 등을 통해 조금씩 논의돼 왔지만 실제 법안으로 발의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후 2008년 9월 이인기 한나라당 의원이 18대 국회에서 발의한 ‘경비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소관 행정안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법제사법위원회까지 회부되는 등 진전을 보였지만 회기 종료로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선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과 송영근 의원이 민간조사업 법제화 관련 법안(일명 탐정법)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이 역시 국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만 거듭해 오다 결국 자동 폐기됐다.

2013년 3월 ‘민간조사업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송 전 의원은 제안 이유에 대해 “심부름센터의 불법 조사 행위를 근절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민간조사업자들의 활동을 관리·감독하고 권한 오남용에 따른 불법행위 시 가중처벌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송 전 의원은 “미아나 실종자에 대한 조사, 분실하거나 도난당한 재산의 회수 외에 변호사의 의뢰를 받은 민·형사 사건의 소송 준비 자료 수집과 조사 등의 분야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국가 수사력은 시간적·물리적으로 한정돼 있어 실종된 가족의 소재 탐지를 의뢰하거나 지식재산권 피해자가 피해 상황을 파악해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할 때 수사기관에 신고·고소해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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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탐정법’ 이달 중 발의 예정

재선에 성공해 20대 국회에 입성한 윤재옥 의원은 19대 국회 때 폐기된 법안을 일부 수정해 7월 말께 재발의할 예정이다. 경기지방경철청장과 경찰청 정보국장 등을 역임한 윤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두 차례에 걸쳐 관련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윤 의원실 관계자는 “7월 안에 (공인탐정) 법을 발의할 예정”이라며 “현재 경찰청과 협의 중이고 야당 의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조항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20대 국회에선 특히 경찰 출신 의원이 19대 때보다 2배 늘어난 8명이어서 관련 법안이 발의되면 종전과 사뭇 다른 양상을 띨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윤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사안에 따라 야당과 초당적으로 협력할 방침”이라며 “단순히 의원 숫자가 늘어났다는 차원보다 (경찰 출신 의원들이) 여야에 골고루 포진돼 있으므로 치안에 대한 이해의 폭과 정도가 공감대 형성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회 밖에서도 다양한 입법 추진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은 경찰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7월 ‘민간조사업 정책알리미 블로그’를 개설하고 민간조사제도 입법정책에 관한 설명 자료를 펴내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또한 강신명 경찰청장은 지난 6월 21일 가진 간담회에서 “20대 국회에선 공인탐정법(옛 민간조사업법) 등 4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중점 과제”라고 강조했다. 강 청장은 이어 “지난 19대 국회에서 민간조사업법이 폐기됐지만 이번엔 법 이름과 적용 범위 등을 조정해 통과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조직 내부에선 전·현직 경찰을 중심으로 사설탐정제도 도입 방안을 비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최근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 따르면 ‘대한공인탐정연구원’ 회원을 모집하는 공고가 올라왔다. 회원 자격은 퇴직 경찰관과 정년이 5년 이내로 남은 현직 경찰관으로 향후 사설탐정제도를 연구하고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 위한 활동을 펼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2014년 3월 ‘신직업 육성 추진 계획’을 발표하면서 사립탐정을 44개 미래 유망 직업 중 하나로 선정했고 현재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경찰청과 법무부를 대상으로 관계 기관 협의를 통해 탐정업의 관리·감독 기관을 조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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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000명 일자리 창출 효과

2013년 경기대 산학협력단이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 탐정업이 합법화되면 고용 효과는 1만5000여 명으로 추산됐다. 또한 약 4900억원대 규모의 단기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고 관련 업계가 일본처럼 국내총생산(GDP)의 0.1% 수준으로 성장하면 약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경제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전국 성인 남녀 101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탐정제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85.5%(매우 필요 8.5%, 필요 77%)를 차지할 만큼 일반 시민들도 탐정제도를 도입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때마침 국내에서도 다양한 탐정물 영화가 스크린에 내걸리고 온·오프라인에선 ‘추리·탐정 동아리’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갇힌 방 안에 놓여 있는 각종 물건들을 활용, 추리력을 동원해 탈출을 시도하는 이색 카페도 등장하는 등 ‘탐정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월 26일 ‘탐정학술편람집’을 출간한 김종식 한국민간조사학술연구소장은 “(탐정업) 법 제정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는 국민에게 안심과 편익을 줄 수 있는 합리적인 민간조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며 “탐정이란 직업이 국내에 공인된다면 새로운 일자리 창출 효과와 함께 이를 소재로 한 각종 영화·드라마·소설·만화 등 탐정 문화의 창달로 창조경제 유발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내에서도 ‘탐정과정’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경기대 대학원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사립탐정(민간조사전문가) 최고위과정을 개설했고 부산에 있는 동의대 평생교육원도 민간조사사과정 12주 교육을 신설했다.

◆‘동상이몽’ 법무부와 경찰청

한국판 셜록 홈스의 탄생에 대한 필요성만큼 과도한 사생활 및 개인 정보 침해 우려, 변호사를 비롯한 다른 직업군과의 업무 영역 침범 등에 따른 반론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와 함께 향후 법제화될 때 탐정의 관리·감독 기능을 담당할 주무 부처를 놓고 법무부와 경찰이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법무부는 탐정업의 경우 업무 성격상 민간이 하는 준(準)수사 업무로서 사법행정의 중추 기관인 법무부에서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경찰은 프랑스·일본·미국 등 대부분의 해외에선 경찰이 관리·감독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며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국적인 조직·인력과 24시간 근무 체제를 갖추고 경비업 등 유사 분야의 관리 노하우가 있는 경찰에서 관리·감독하는 게 타당하다”며 “다만 정책의 공정성과 부처 간 협력을 제고하기 위해 자격제도위원회를 구성, 위원의 2분의 1 이상을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군 장성 출신의 송영근 전 의원은 “과거 국무조종실에서 (탐정의) 주관 관할권을 놓고 수차례 조정에 나섰지만 법무부와 경찰의 이해관계가 매번 엇갈렸다”며 “경찰이 주관하게 된다면 결국 경찰 위주로 간다. 군·검찰 등 수사 경험이 있는 이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야당 측 의원실 관계자는 “해당 법 제도화 필요성 여부는 사실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논의돼 왔지만 법무부와 경찰이 서로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하게 대립해 왔다”면서 “양 부처의 얘기를 들어보면 법무부의 주장도 맞고 경찰의 주장도 옳다. 따라서 실제 법이 통과되려면 양 부처 간 협의를 거쳐 국무총리실 산하 공동 관리·감독 부서를 신설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enry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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