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정부,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 통해 수출로 인정…수출통계 분식하나?
중견·중소 면세점 납품업체, 무역금융 등 수출 지원정책 혜택 얻어
(사진) 지난 10월 3일 국내 한 면세점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쇼핑하고 있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김현기 기자] 앞으로 면세점에 납품하는 국내 중견·중소기업들도 정부 수출 지원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부가 외국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국산품에 대해 수출 실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면세점에서 판매하는 국산품을 수출로 인정하는 내용을 담은 ‘대외무역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을 관보에 게재하고 시행에 들어갔다고 10월 18일 밝혔다.

◆구매확인서 통해 수출 실적 인정

면세점 납품 기업들은 면세점 판매 실적을 근거로 발급해 주는 구매확인서를 통해 수출 실적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해당 면세점 납품 업체들은 앞으로 무역보험·무역금융·해외전시회 참가·포상 등 200여 개에 달하는 정부의 수출 지원 정책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또한 외국인에게 국산 물품을 판매하고 있는 면세점도 수출 기업으로 인정받게 되는 길이 함께 열렸다.

전자 상거래와 면세점 판매는 외국인이 물품을 구매하고 해당 물품이 바로 외국으로 이동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전자 상거래는 수출로 인정되는 데 비해 면세점 판매는 수출로 인정되지 않아 그동안 관련 업계로부터 형평성 문제 등이 제기돼 왔다.

정부는 지난 7월 개최된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면세점 판매 국산품에 대해 수출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해 왔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 증가 등에 힘입어 국내 면세점 판매액이 크게 증가하면서 국산 물품 판매 비율이 빠른 속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면세점 내 매출 규모는 해마다 크게 늘어났다. 2011년 5조3730억원을 기록한 면세점 판매액은 2015년 9조원을 넘어선 9조1984억원을 달성했다. 올 상반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26.1% 증가한 5조7749억원을 기록해 이와 같은 추세라면 연내 10조원을 무난하게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같은 기간 국산품 판매 비율도 큰 폭으로 뛰었다. 2011년 18.1%에 불과했던 국산품 판매 비율은 2015년 37%로 크게 높아졌고 올 상반기에는 41.6%로 집계됐다.

박진규 산업부 무역정책관은 “이번 대외무역법 시행령 개정으로 면세점이 국내 중견·중소기업들의 해외 진출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해외시장 개척 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중견·중소 면세점 납품업체, 무역금융 등 수출 지원정책 혜택 얻어
◆‘상생의 시대’ 열릴 것으로 기대

면세점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번 시행령 개정에 대해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한 대기업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관계자는 “대외무역법 시행령을 개정하기 위한 준비를 예전부터 해 왔다”며 “국산품 면세점 매출 비율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고 국산품 안에서도 중견·중소기업들의 비율 또한 크게 늘고 있어 이들 업체가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면세점 업계가 특혜를 많이 받아 왔다는 좋지 않은 시각을 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줄로 믿는다”며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중소기업도 함께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상생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개정안으로 직접적인 수혜를 보게 된 한 중기업계 관계자는 “일단 정부가 면세점 사업자에게 수출로 실적을 잡아주는 개정안은 환영한다”면서 “다만 아쉬운 점은 대기업 중심의 현 면세점 시장에 ‘쿼터제 제한’ 또는 ‘의무비율 편성’을 늘리는 식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이 마련됐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정부의 이번 개정안에 대해 국내 면세점에서 판매되는 국산 물품의 상당수가 화장품이고 면세점 화장품 시장은 일부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어 이들 기업에만 특혜가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하락하는 수출 통계를 막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일부 비판도 있었다.

이에 대해 황호준 산업부 무역정책과 사무관은 “이번 개정안은 지난 4월 면세점 협회에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도 개선을 요청해 내부 검토를 마친 후 결정된 것”이라며 “대기업에만 혜택을 주기 위해 개정한 것은 결코 아니다. 대기업은 이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출 지원 혜택을 받고 있는 반면 중견·중소기업은 납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로 인정받지 못해 그동안 혜택을 받지 못해 왔다”고 설명했다.

수출 하락을 감추기 위한 ‘정부의 꼼수’라는 일부 비판에 대해선 “이번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출 실적에 반영할 수 있게 됐지만 곧바로 무역통계에 반영되지는 않는다”면서 “추후 관세청 수출 신고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는 올해 연말 이후에 관계 부처 협의를 통해 추가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henr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