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폴리틱스]
‘화물운수사업법 개정안’ 계류…업계, “전기차라도”…1월 임시국회에 ‘시선집중’
국정농단에 발목 잡힌 ‘화물차 증차’
[한경비즈니스=김병화 기자]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정국이 마비된 가운데 화물차 증차와 전기화물차 도입에도 제동이 걸렸다.

소형 화물차(1.5톤 미만)에 대한 수급 조절제를 폐지하고 진입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화물운수사업법 일부 개정안(이헌승 새누리당 의원 대표 발의)’은 지난해 1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일부 야당 의원의 반대로 계류됐다.
전기차에 한해 화물차 증차를 허용하자는 이른바 ‘전기차(EV) 특별법(이우현 새누리당 의원 대표 발의)’도 함께 발목을 잡혔다.

여야 대립 구도보다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의 의견 차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개정안은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화물운송 시장 발전 방안’에 기초했다.

이를 두고 화물연대는 작년 10월 10일 새벽 0시부터 10일 동안 파업에 돌입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특별법만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 ‘화물차 증차’를 둘러싼 갈등
국정농단에 발목 잡힌 ‘화물차 증차’
(사진)이헌승 새누리당 의원.

쟁점은 ‘화물차 증차’다. 국토부는 증차를 허용해야 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운행 중인 4만5000여 대의 택배용 화물차 중 1만3000대가 불법 운행 중이다.

노란색 번호판을 단 영업용 택배 화물차 사이에 종종 눈에 띄는 흰색 번호판 자가용 화물차들이 불법 택배 차량이다.

자가용 화물차를 이용하는 한 택배 운전사는 “합법적으로 일하고 싶지만 10년 넘게 신규 발급이 중단된 영업용 번호판 가격이 3000만원에 달한다”면서 “빚을 내 번호판을 살 수 없는 노릇이고 자가용 번호판을 달고서라도 (택배) 영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1만3000여 대의 불법 차량은 이미 단속의 범위를 초과했다고 강조한다. 단속을 강화하는 수준에서 제어가 가능한 수준이 아닌 만큼 어떤 식으로든 택배용 화물차량을 증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물연대는 증차를 반대한다. 화물차가 늘어나면 수익이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불법 택배 차량은 단속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소형 화물차에 대한 내용이라는 점에서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다.

물류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역 거점을 잇는 대형 트럭을 중심으로 구성된 화물연대가 택배 시장 상황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며 “영업용 번호판을 살 수 없는 영세 택배 운전사들의 생계를 위해서라도 증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화물연대가 주도한 파업이 소득 없이 10일 만에 끝난 것도 명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이어졌다.

화물연대는 택배 차량의 급증이 택배 단가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증차와 택배 단가 하락은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물동량 자체가 계속 급증하는 추세인 만큼 증차로 인해 택배 단가가 떨어질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기화물차에 대해서도 국토부와 화물연대는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친환경 정책에 부합하는 전기화물차의 개발 및 보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화물연대는 “전기화물차가 친환경 정책의 일환일지라도 증차로 이어진다면 지지할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2016년 6월 국토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특별 대책’에 따르면 국내 미세먼지 발생의 요인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경유차(수도권 기준)이고 경유차 미세먼지의 70%가 화물·특수차량에서 발생한다.

특히 노후 경유차일수록 많은 미세먼지를 배출한다. 10년 이상 된 노후 경유차는 318만 대(37%)에 불과하지만 전체 경유차 미세먼지 배출의 79%를 노후 경유차가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이에 따라 2017년 1월 1일부터 배기가스 후처리 장치(DPF)를 달지 않은 노후 경유차의 운행을 서울시내 전역에서 제한하기로 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서울시가 2012년부터 일부 지역에 한해 실시해 오던 ‘노후 경유차 운행 제한 제도’를 서울 지역 전체로 확대한 것이다.

불똥은 노후 경유 화물차를 사용하는 택배 운전사들에게 튀었다. 당장 차량을 교체하지 않는 이상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 시점에서 노후 화물차의 대체 차량으로 주목받는 전기화물차의 개발과 보급에 속도를 붙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택배 운전사는 “어차피 차량을 교체해야 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지원해 준다면 전기화물차로 바꾸지 못할 것도 없다”며 “정부는 친환경 전기차를 늘리면서 화물차 증차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기화물차 근거리 배송택배에 안성맞춤
국정농단에 발목 잡힌 ‘화물차 증차’
(사진)이우현 새누리당 의원.

전기화물차가 택배 배송에 안성맞춤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CJ대한통운에 따르면 국내 업체가 제작한 적재량 최대 500kg인 소형 전기화물차로 1회 충전 시 약 70km 거리를 운행할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95km이며 경사로에서는 20.6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특히 택배용 화물차는 승용차와 달리 근거리 배송 위주로 하루 주행거리(약 50km)와 루트가 비교적 일정해 배터리 방전 문제에 따른 불안감도 해소할 수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 말부터 제주도에서 전기화물차를 활용한 택배 배송 시범 서비스를 시행하며 전기화물차 정보를 분석 중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은 이미 전기차로 재편되고 있다. 각국의 정부는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2030년까지 전기차 비율을 전체 자동차 시장의 60%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를 위해 보조금 지원, 세금 감면, 인프라 확충 등 각종 정책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자칫 국내 전기화물차 시장을 중국 기업에 선점당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전기화물차 개발에 소극적이고 쌍용과 한국GM 역시 전기화물차에 큰 관심이 없다.

르노삼성이 전기화물차 도입을 고려 중이지만 아직 시장이 충분히 열리지 않았다는 판단에 도입 시기를 망설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이번에 계류된 전기차 특별법이 통과돼 (전기화물차의) 수요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면 분위기가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은 당초 일정대로라면 지난해 11월쯤 논의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 등으로 어수선해진 국회는 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채 해를 넘겼다. 1월 임시국회가 1월 20일을 기한으로 지난 1월 9일 열렸다. ‘개점휴업’ 상태로 막을 내릴지 물류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b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