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인사이드]
감성 자극하는 디자인에서 IT 발맞춘 기능·편의성으로 ‘중심 이동’

[한경비즈니스 = 정채희 기자] ‘가로 8.6cm, 세로 5.4cm.’

전 세계적으로 통일된 카드 규격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전까지는 정해진 카드 규격 안에서 감성을 자극하는 디자인으로 차별화를 시도했다면, 최근에는 이미지보다 기능과 편의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핀테크 시대가 오면서 실물 카드가 스마트폰 속에 탑재돼 실체가 사라지거나, 카드 결제 방식이 카드를 긁는 것에서 삽입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가로에서 세로로 디자인을 전면 교체하는 식이다.

오프라인에서 모바일로, 가로에서 세로로…. ‘20세기, 플라스틱의 혁명’ 신용카드의 변천사를 조명했다.
‘플라스틱의 혁명’ 신용카드, 어떻게 변했나
‘50.6%.’ 지난해 한국은행이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급 수단을 물은 결과 신용카드가 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했다. 여기에 체크·직불카드를 더하면 카드의 점유율은 66.2%까지 오른다. 빈도수 대신 보유 여부로 질문을 바꾸면 신용카드의 시장점유율은 93.3%에 육박한다.

지금에야 국민 10명 중 9명 이상이 보유할 정도로 대중화됐지만 카드의 시작이 처음부터 대중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사각 플라스틱·엠보싱·검은 띠’의 시작

1969년 신세계백화점은 자체적으로 카드를 소량 발급해 자사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최초 카드의 등장이다. 이 카드는 회사 이름과 로고만 강조하는 단순한 디자인이었다. 플라스틱판 표면에 회원 이름과 회원 번호 등을 양각으로 새겨 ‘엠보싱 카드’로 불리기도 했다.

상류층 위주에서 일반 대중에게로 카드가 전파된 시기는 1980년대다. 1978년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이 처음으로 ‘VISA카드’를 발급했다. 1980년엔 국민은행(현 KB국민은행)이 카드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비씨카드의 전신인 ‘은행신용카드’가 발급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신용카드 시대가 열렸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뒷면에 일명 ‘검은 띠’가 부착된 신용카드의 디자인이 이 무렵 등장했다. 검은 띠는 자기 성질을 띤 마그네틱 테이프다. 여기엔 회원의 이름, 비밀번호, 계좌 번호, 거래 은행의 정보가 담겨 있다.

이후 카드사는 엠보싱과 마그네틱 테이프가 모두 적용된 카드를 사용하게 됐다. 이 카드는 모두 가로 8.6cm, 세로 5.4cm의 플라스틱 재질로 통일돼 있다. 이에 따라 카드사들은 차별화를 위해 ‘디자인’에 골몰했다.

카드 서비스의 차별화가 한계에 다다르자 기업 브랜드를 카드 디자인에 녹여 회사 이미지를 각인한 셈이다. 카드에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을 새겨 예술성을 더하거나 캐릭터 상품을 전면 배치해 친근하고 유연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또 소비자의 개성을 살려 스스로 디자인하는 셀프 카드 디자인까지 나오는 등 각양각색의 디자인 카드들이 봇물을 이루듯이 출시됐다. 고급화를 강조하기 위해 실제 다이아몬드를 박거나 금박을 씌우는 등 재료를 다양화한 카드도 등장했다.
‘플라스틱의 혁명’ 신용카드, 어떻게 변했나
◆달라진 결제 방식, 혁신을 부르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들어 검은 띠가 둘러쳐진 카드에 기술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마그네틱 방식의 카드는 기억 용량이 크지 않고 암호화 기능이 없어 카드 복제가 가능하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 당국은 2002년부터 안정성과 신뢰성이 보장된 집적회로반도체(IC) 기술을 카드에 시범 도입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카드 앞면에 부착된 금색 또는 은색 사각형 모양의 칩이 바로 IC칩이다.

2015년 7월 금융 당국은 신규·교체 단말기에서 카드 승인 시 마그네틱보다 IC칩을 먼저 읽도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현재 시중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카드들은 마그네틱과 IC칩을 모두 채용하고 있다.

최근 화제가 된 현대카드의 세로 모양 카드(세로 8.6cm, 가로 5.4cm)도 이에 따라 등장했다. 즉 가맹점에서 새로 도입하는 카드 단말기의 결제 방식이 마그네틱 중심의 ‘긁는 방식’에서 IC칩 중심의 ‘끼워 넣는 방식’으로 변경됨에 따라 카드의 모양을 가로 중심에서 세로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현대카드는 일반적으로 전면에 배치하는 카드 번호와 제휴 브랜드의 로고 등을 후면에 배치했다. 전면에 기타 정보를 제거해 기능과 함께 심미적인 디자인도 강조한 셈이다. 사실 세로형 카드는 10여 년 전에도 다른 카드사들이 디자인을 위해 일부 도입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달라진 결제 방식에 맞춰 세로 카드를 전면 도입한 것은 현대카드가 처음이다.

진짜 혁신은 따로 있다. 2015년 금융위원회가 ‘실물 없는 모바일 카드’에 대한 유권해석에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놓으면서 플라스틱 카드를 발급받지 않아도 되는 모바일 전용 카드가 출시됐다. 실체 없는 카드의 탄생이다.

이후 카드 업체들은 저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모바일 카드를 선보였다. 이 혁신을 본격적으로 주도하고 있는 곳은 IT 기업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간편 결제 서비스인 ‘삼성페이’를 자사 스마트폰에 탑재하면서 카드 가맹점의 카드 리더기에 스마트폰을 대는 것만으로도 결제할 수 있는 기술을 최초로 도입했다.

삼성페이는 카드사 앱을 별도 구동해야 하는 모바일 카드와 달리 신용카드·체크카드 결제가 가능한 대부분의 매장에서 스마트폰만 꺼내면 쓸 수 있다. 이에 따라 범용성과 편리성 모두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페이는 출시 1년 만에 국내 이용자 500만 명을 돌파했고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카드의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래 사회에는 목소리·정맥·홍채 등 생체 정보만으로 카드 결제가 가능한 ‘바이오페이’가 대중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른 '실체 없는' 모바일 카드의 디자인 변화도 지켜볼 대목이다.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