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없는 협상가는 거래 타결에만 집중…숨은 이해관계인 놓치지 말아야
‘이해관계인 지도’ 그려야 협상에서 이긴다

[한경비즈니스 칼럼=이태석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선 반드시 협상과 관련 있는 이해관계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협상을 마무리하면 기대했던 이익을 챙기지 못하거나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해관계인을 고려해 협상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협상에 참가하는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잠재적 이해 당사자들까지 넓게 파악하고 그림을 그린 다음 협상에 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사례를 살펴보자.

◆협상의 새로운 판을 만든 스테이플스

사무 용품 체인인 스테이플스의 창업자 토머스 스템버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벤처캐피털 회사로부터 지원받은 자금으로 사업을 시작해 매년 판매 목표를 50% 초과 달성하던 차에 오피스디포 같은 경쟁 업체들이 여기저기 나타나 시장을 잠식하고 있었다.

스템버그 창업자는 급히 사업을 확장할 자본이 필요했다. 당연히 그는 초기에 자금을 대준 벤처캐피털 회사들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들은 기업 가치가 낮게 평가됐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믿었던 곳으로부터 거절 당한 스템버그 창업자는 용기를 내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협상을 벌였다. 그들은 마치 담합이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이유로 거절했다. 스템버그 창업자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빌 살먼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에게 자문했다. 살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연금 펀드나 보험사 같은 기관들과 직거래하세요. 그들은 벤처캐피털 회사들의 주주이지만 벤처캐피털 회사가 운용 수수료와 초과 이익 수익으로 20%씩이나 빼간다고 화를 내고 있어요.”

이들 기관들은 자사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줄 수 있는 잠재적인 투자자였다. 만약 직거래하게 된다면 그들은 20%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살먼 교수의 조언 덕분에 스템버그 창업자에게는 새로운 투자처가 생겼다. 연금 펀드와 보험사들이 스템버그 창업자에게 돈을 대겠다고 제안했던 것이다.

또 누가 스테이플스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 줄 수 있을까. 기관투자가와 달리 투자에 대한 독립적인 시각을 가진 개인들에게도 호소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스테이플스 2호점 건너편에 있는 매스트 인더스트리의 마티 트러스트 사장에게 접근했다. 그동안 스테이플스의 놀라운 실적을 직접 지켜본 트러스트 사장은 지분 10%에 3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스템버그 창업자는 지나치게 탐욕을 부리는 벤처캐피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협상 기술 같은 것을 쓰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협상의 이해관계인 범위를 확장하고 협상 상대를 바꿨다.

그다음 그는 벤처캐피털 회사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1차 투자자였던 그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완전히 배제될까봐 오히려 초조해졌다. 결국 스템버그 창업자가 제시한 투자 조건을 수용했다.

자, 이제 이해관계인 지도를 그리고 협상을 재디자인하면서 어떤 의문이 떠오를까. 그것은 바로 ‘이해관계인 중 누구와 협상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질문이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이 아니라 고려해야 할 이해 당사자 그리고 진짜 협상 상대를 어떻게 찾아내야 할까. 그에 대한 해답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

첫째, 당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스테이플스는 벤처캐피털 회사가 아닌 그들의 주주인 연금 펀드나 보험회사들을 상대로 협상했다. 이처럼 대면하고 있는 상대가 아니라 당신에 대해 높게 평가해 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구매 담당자가 계속 납품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고 하자. 고객과의 관계를 고려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고객의 원가 인하에 부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가격 인하가 어려워 “노(No)”라고 얘기한다면 구매 담당자와의 관계가 서먹해질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노”라고 말하기에 앞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제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둘째,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관계자들은 누구인가. 정식 협상이 아니라 비공식 협상에 참여할 관계자들은 있을까. 있다면 그들로 하여금 협상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통해 협상을 잘 마무리한 사례를 들여다보자.

경기도 양평에 있는 전원주택을 둘러본 A 씨는 한눈에 반했다. 주변 풍광이 좋았고 내부 구조와 인테리어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집주인과 가족들이 거주하기 위해 그만큼 공을 들인 집이라고 했다. 중개 업체에 알아보니 내놓은 가격이 비쌌고 가끔 다른 사람이 괜찮은 가격을 제시해도 오히려 매물을 거둬들이는 등 뭔가 내막이 있어 보였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최근 재혼했고 후처가 집에 대해 약간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집이 불쾌하게도 전처를 자꾸 떠올리게 했고 부동산 경기도 계속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협상 방해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해야

결국 A 씨는 협상 방식을 바꾼다. 속전속결이 아니라 흥정을 붙이면서도 시간을 질질 끌었다. 그리고 가격을 제안하면서 부동산 조사 분석 자료를 첨부했다.

주택 경기가 하락하고 있어 계속 집을 보유하는 것보다 차라리 매각해 그 돈을 제대로 투자한다면 몇 년 안에 자산이 상당히 불어날 것이라는 설득력 있는 내용이었다.

중개업자도 거래가 있어야 수입이 생기므로 끊임없이 집주인을 설득했다. 무엇보다 후처가 보고서를 읽고 신중히 검토해 보도록 했다. 그 결과 어떻게 됐을까. 매수자인 A 씨는 중개업자·후처와 합심해 집주인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이런 협상 기술은 알다시피 영업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 자주 사용한다. 최종 의사결정권자를 찾아 자기편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협상 상대를 설득하는 방법 말이다.

셋째, 의사결정을 방해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경험이 부족한 협상가들은 거래 타결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협상을 방해할 위치에 있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 부분을 잊곤 한다.

타결 결과에 따라 이익을 얻을 집단도 있겠지만 반면에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을 집단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모 항공회사 사례가 바로 그것이다. 노사 협상이 비록 타결됐지만 타결 내용에 상대적인 불만을 가진 집단이 또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협상 타결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영향을 주게 되는 내부자들, 특히 방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들을 항상 주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넷째, 잘못된 동기를 가진 세력은 없는가. 협상에 임하는 사람들은 간혹 사적인 이익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헬기 운송 사업을 하다가 추락 사고를 당한 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인 B 씨는 보험회사가 보상금 지급에 늑장을 부리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항공 사고에 보상 경험이 많은 변호사를 고용하고 수수료와 성과급을 주기로 했다.

변호사는 일사천리로 보험 협상을 처리했지만 B 씨는 비슷한 일을 당한 다른 사람과 얘기해 본 후 실상을 깨달았다. 그 변호사는 몇 안 되는 보험회사들과 합의를 진행하면서 보험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을 신속하게 처리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의뢰인의 이익을 더 우선해야 하는 변호사가 왜 그랬을까.

◆최종 의사결정권자를 움직여라

이유는 이랬다. 변호사는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해 보험회사와 다투기보다 자신의 사업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보험회사와 등을 돌리게 되면 자신의 사업 운영에 지장이 생길 위험도 있고 보험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우려도 있었다.

개인의 사적인 이익이 잘못된 협상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잘못된 동기를 가진 협상 당사자가 없는지 여부다. 협상의 목적과 상반되는 잘못된 이해관계를 지닌 협상 당사자도 있을 수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이익 충돌(conflict of interests)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당신을 대리하는 사람이 당신의 관점과 이익을 잘 대변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다.

다섯째, 협상의 최종 승인권자는 누구인가. 협상에 모든 이해관계인들이 참여하는 일은 별로 없다.

정부의 정책적 결정은 많은 국민의 공통된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회사 직원들의 노동조건은 노조 간부와 경영진의 협상에 좌우된다. 협상 당사자의 뒤에는 이렇듯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대부분 존재한다. 이를 무시하면 협상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수조 탱크를 제작·납품하는 P화학 C영업팀장은 새로 확보한 거래처에 아주 좋은 가격 조건을 제시했다. 타 거래처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매 담당자가 계속 추가 할인을 요구했다.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그는 구매부서 내 다른 담당자를 통해 얘기를 들었다.

알고 보니 그 회사에 새로 부임한 경영지원본부장이 원가절감을 외치며 끊임없이 구매 담당자를 닦달했던 것이다. 구매 담당자가 문제가 아니라 본부장의 인식이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C팀장은 수조 탱크업계의 표준가격 리스트와 가격변동표, 심지어 매입 원장까지 뽑아 줬다. 구매 담당자는 본부장에게 그 자료를 보여줬고 본부장은 더 이상 추가 할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협상에서 고집불통인 상대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최종 의사결정권자가 있을 수 있다. 막무가내로 ‘안 된다’고 외치는 상대방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면 위와 같은 사례가 적지 않다. 엉뚱한 사람을 붙잡고 협상하느라 시간만 허비하지 말라는 얘기다.

여섯째, 협상 당사자들이 너무 많지 않은가.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보면 협상 당사자가 많을수록 낫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 보면 협상 과정에 결정적인 당사자가 배제될 때가 적지 않다.

반대로 협상을 잘하려는 욕심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인들을 포함함으로써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또한 협상은 원래 관련자들이 적을수록 쉽게 진척되기 마련이다.

결론적으로 당사자들이 많고 적고의 이슈는 아니다. 협상 상황에 따라 당사자 숫자는 탄력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하지만 분명한 원칙은 제대로 된 당사자가 없으면 제대로 된 거래가 어렵다는 점이다.

핵심적인 이해관계인이 누구인지 사전에 파악하고 이들로부터 지원을 얻어낼 수 있도록 협상 지도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뛰어난 협상가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1호(2019.02.11 ~ 2019.02.17)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