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지난 10월 19일 오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제금융 담당 공무원들의 휴대전화가 일제히 꺼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뒤 청와대의 발표가 나왔다. 한국과 일본이 70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를 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방한 중인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와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통화 스와프 규모를 현재 13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700억 달러 중 300억 달러는 한국 원화와 일본 엔화를, 나머지 400억 달러는 한국 원화와 일본 보유 달러를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또 기존 13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는 원·달러, 30억 달러는 원·엔화로 각각 교환하는 조건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 단독회담을 하기 전에 기념촬영하며 악수하고 있다..2011.10.19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청와대에서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와 단독회담을 하기 전에 기념촬영하며 악수하고 있다..2011.10.19
안전 자산인 달러 자금 포함된 것이 특징

한일 통화 스와프 확대는 한국 정부가 지난 9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일 재무장관 회담 때 먼저 제안했다. 유럽 재정 위기와 세계경제 둔화로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친 데 따른 방어책이었다. 일본도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와 역내 금융시장 안정, 한일 정상회담 등을 고려해 통화 스와프 확대에 동의했다.

이에 따라 지난 10월 4일 재정부와 한은 관계자들이 일본 재무부를 방문해 실무 협의를 진행했고 이 자리에서 700억 달러라는 금액에 합의했다. 이어 지난주에 일본 측에서 급하게 방한해 세부 점검 사항들을 협의했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도 10월 14일부터 이틀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아즈미 준 일본 재무장관과 같은 내용을 협의했다.

이번 통화 스와프 확대엔 달러 자금 교환이 포함됐다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이 인출할 때 일본에 700억 달러 상당의 원화를 주고 일본으로부터 300억 달러 상당의 엔화와 400억 달러의 미국 달러화를 받을 수 있다.

700억 달러라는 큰 규모도 예상 밖이었다. 언론에선 300억 달러 내외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일각에선 이같이 한일 스와프 규모가 확대된 것엔 정치적인 이유가 일부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 등 정치적으로 풀기 어려운 문제를 경제 분야로 우회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

물론 일본이 한일 통화 스와프로만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노다 총리는 정상회담에 앞서 이 대통령에게 일제강점기에 수탈한 정묘어제 2책과 조선왕조의궤 중 대례의궤 1책, 왕세자가례도감의궤 2책을 인도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의 규모가 확대된 것은 일본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아시아에서 자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우려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두 정상은 2006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한일 FTA 교섭을 조속히 재개하기 위한 실무 협력을 강화하고 정상 간 ‘셔틀 외교’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한일 통화 스와프에 대한 시장의 반응에는 낙관과 비관이 섞여 있다. 낙관론자들은 통화 스와프가 심리적인 호재이기 때문에 환율 급등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라고 평가한다. 반면 외국계 금융사를 중심으로 한 비관도 만만치 않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놓는 것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통화 스와프가 확충된 만큼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위해 외화보유액을 추가로 쌓는 게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박신영 한국경제 경제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