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때 사자” 미중일 기업 인수 팔 걷어, 한국은 실패 걱정에 손 놓고 있는 꼴

[이슈 인사이트] 다시 들썩이는 M&A 시장…한국만 무풍지대
코스닥 시장을 보완하기 위해 중소기업 전용 시장인 코넥스(KONEX)가 개설된 지도 1년이 넘었다. 기업공개(IPO) 상장 종목 수가 적다느니 거래가 턱없이 부족하다느니 했지만 상장 기업이 56개, 일간 거래 대금도 10억 원 전후로 늘어나 나름대로 중소기업 자금 조달에 숨통을 틔워 주고 있다. 그러나 기업 생태계가 활력을 얻고 선순환하려면 IPO뿐만 아니라 인수·합병(M&A) 시장도 활성화돼야 한다. M&A는 기업엔 성장 엔진, 투자자에겐 조기 회수의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중국·일본 등 성장 동력 확보에 부심하고 있는 주요국들도 M&A 활성화에 정책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M&A는 기업 간 기술 융합이나 수익 모델 결합이란 점에서 기술 융합을 강조하는 박근혜 정부의 창조 경제와도 맥을 같이한다.

그러면 한국 M&A 시장의 현주소는 어떨까. 한마디로 글로벌 M&A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우선 글로벌 M&A 시장을 들여다보자.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주춤했던 글로벌 M&A는 2010년 이후 점차 회복세를 보이다가 올 들어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1~4월간 M&A 금액은 1조2000억 달러로, 작년 동기 대비 42%나 늘어나 올해가 사상 최고치였던 2007년에 버금갈 것으로 시장에선 기대하고 있다. 지난 4~5년의 글로벌 M&A 특성을 보면 지역적으론 미국과 아시아, 섹터별로는 정보통신기술(ICT)과 미디어 부문이 전체의 약 25%를 차지하며 M&A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中 정부, M&A 활성화로 대기업 육성 노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메카로 유명한 미국 실리콘밸리는 M&A도 대단히 활발하다. 특히 최근 2~3년간 기술 벤처 창업과 글로벌 IT 경쟁자 간의 M&A가 늘고 있는데, 범위도 IT 스타트업 기업부터 무인 항공기 대기업까지 다양하다. 올 들어선 페이스북이 IT 초기 기업인 모바일 메시징 업체인 와츠앱을, 구글이 무인 항공기 업체인 타이탄에어로스페이스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글로벌 금융 위기에 별 관계없이 M&A가 증가 추세다. 특히 2013년엔 1062건과 1857억 달러로 건수와 금액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면 중국이 이처럼 빠른 M&A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뭘까.

첫째, 에너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중국과 같이 몸집이 큰 대국이 고성장을 지속하려면 안정적인 에너지 자원 확보가 필수다. 이에 따라 국가 전략 차원에서 끊임없이 해외 원유 시설, 원자재 광산을 M&A하고 있다. 둘째, 기술 경쟁력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미국·유럽 기업들의 뛰어난 기술력을 얻고 시장을 잠식하려면 금융 위기로 이들의 재무 상태가 취약해진 지금이 최상의 적기인 셈이다. 중국 정부는 2012년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해외 M&A 거래액 기준을 1억 달러에서 10억 달러로 대폭 늘리는 등 해외 M&A 촉진책을 발표한 바 있다. 셋째, 시진핑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과잉생산 설비의 구조조정도 M&A 증가 요인이다. 특히 철강·화학·조선 등 구 경제에서 M&A를 통해 군살을 빼고 생산성을 제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러면 최근 아베노믹스로 20년 경기 침체를 벗어나고 있는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2008년 리먼 쇼크 이후에도 M&A가 비교적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편이다. 해외에선 글로벌 위기로 재정난에 처한 해외 기업 인수, 국내에선 2020년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부동산·건설·교통 등 인프라 기업의 M&A가 활발해지고 있고 국내 중소기업은 후계자 상속의 해결 수단으로 M&A를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기업 M&A가 활발해지고 있는 이유는 첫째, 글로벌 경기가 회복 신호를 보이면서 아직 쌀 때 M&A하겠다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고 둘째, 글로벌 시장에서 리보 금리가 역사적 저점에 근접함에 따라 차입 매수(LBO) 여건이 워낙 좋고 셋째, 기업을 사는 것이 신사업 개척이나 신기술 개발보다 위험이 적다는 인식하에 전략적 M&A가 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2005~2007년 증가하던 국내 M&A는 2010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특히 작년 이후론 크게 위축되는 모습이다. 2013년 국내 M&A 건수는 16건, 금액은 약 6200억 달러에 그쳤고 해외 M&A 금액도 414억 달러로 일본의 765억 달러, 중국의 1641억 달러 대비 훨씬 적다. 특히 일반적으로 M&A가 많이 일어나는 중소기업 M&A는 연평균 40여 건에 불과한 데다 거래 규모도 10억~100억 원의 소규모여서 중소기업의 성장 동력 확보에 애로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M&A가 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에선 M&A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족을 첫째 이유로 든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인수가 헐값 인수, 팔 비틀기 인수라는 부정적 시각이 워낙 뿌리 깊다는 것이다. 둘째, 성장 전략 부재와 승자의 저주를 꼽는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놀란 경험 때문일까. 성장 동력을 찾기보다 구조조정에 치중하는 대기업이 많고 STX·웅진 등 M&A 경쟁에서 이겼다가 부실해진 기업을 보면서 M&A에 보수적인 기업이 늘고 있다. 셋째, M&A에 관한 시장 정보, 특히 해외 기업에 대한 정보 부족이다. 넷째, 글로벌 플레이어로서의 국내 투자은행(IB)이나 사모 펀드 역량이 부족한 점도 한 이유다. 해외 M&A 딜은 해외 투자은행이 주로 M&A를 주관하다 보니 국내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는 그만큼 어렵기 마련이다.


STX·웅진 몰락으로 ‘승자의 저주’ 인식 확산
물론 정부가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작년 5·15 대책에서 기술 혁신 기업 M&A를 할 때 매수 기업의 법인세를 감면해 준다든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계열사로 편입할 때 3년간 계열사 편입을 유예하고 합병가액 규제를 완화하는 등 다양한 M&A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또한 시장에서도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왜 여전히 M&A가 활발해지지 않는 걸까.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대책이 나온 지 1년 남짓의 짧은 기간인 점, 한국의 M&A 문화 정착에 시간이 필요한 점, 보다 과감한 대책이 필요한데 내놓지 못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첫째, 이들은 중·장기적으로 인식을 전환하기 위한 문화 정착도 중요하지만 이른 시간 내에 국내 M&A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M&A 중개 기관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M&A 딜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정보 부족,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의 니즈 파악 부족, 특히 가격 접근 중개가 필요한데 이를 전문적으로 해줄 전문 기관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시장에선 다소 파격적일지 모르지만 증권사를 M&A 전업 중개 기관으로 지정하는 의견도 나온다. 너도나도 M&A를 중개하다 보니 수익성이 약해져 자본력 있는 M&A 전문 기관과 전문 인력이 육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라리 M&A를 증권사 등 일부 기관의 고유 업무로 함으로써 전문성과 인력 양성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M&A가 가장 발달된 미국도 M&A는 증권사의 고유 업무다.

둘째, 기업 생태계 선순환에 중요한 중소기업 M&A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부족한 M&A 자금을 매칭해 줄 정책 펀드 등을 활용할 만하다. 소위 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 역할이다. 중소기업들은 업계와 상대방을 알고 기술 융합 및 활용에도 이해력이 높기 때문에 부족 자금을 제때에 공급받으면 그만큼 M&A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일본처럼 해외 기업 M&A를 보다 과감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외 IB, 사모 펀드와 벤처캐피털리스트 간의 교류 확대를 통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 또한 운용 규모 세계 3위인 국민연금 등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이미 글로벌 영향력이 엄청난 만큼 국내 기업이 국민연금을 주요 기관투자가로 하는 M&A 사모 펀드를 구성할 경우 해외 기업 M&A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신 한국벤처투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