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요직 거친 ‘정통 하나맨’…명예 택한 출구전략 분석도

[이 주의 인물 업 앤드 다운] 김종준 하나은행장 “통합 위해 사퇴”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임기를 약 4개월 남기고 자진 사퇴 했다. 김 행장은 지난 11월 3일 퇴임식을 갖고 하나은행장으로서의 모든 직무를 내려놓았다.


김종준 하나은행장이 임기를 약 4개월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김 전 행장은 지난 11월 3일 퇴임식을 갖고 하나은행장으로서의 모든 직무를 내려놓았다. 하나은행은 당분간 선임 부행장인 김병호 부행장이 은행장 직무를 대행한다.

김 전 행장은 1980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한 ‘정통 하나맨’으로 한국투자금융 출신 중 현직 최고참이었다. 하나은행이 ‘4대 은행’으로 성장하는 과정의 주역으로 기업금융그룹 부행장, 가계영업그룹 부행장, 하나은행장 등 모든 요직을 거쳤다. 그러나 이번 퇴임으로 내년 3월로 예정된 임기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하나은행을 떠나게 됐다.

그는 이날 퇴임식에서 “성공적인 통합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지금이 지난 35년 동안 몸담아 온 하나은행에서 소임을 마치고 떠나는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하나와 외환의 성공적인 통합이 이뤄지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지난 8월에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이 가시화될 때 백의종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김 행장의 사퇴로 조기 통합에도 탄력이 붙을 것이란 관측이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 과정에서 은행장 자리를 두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김 행장의 사퇴로 자연스럽게 교통정리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통합 은행장을 맡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함께 KT ENS 사기 대출과 관련된 금융 당국의 추가적인 징계 등 하나은행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포석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전 행장은 앞서 하나캐피탈의 저축은행 부당 대출로 문책 경고의 중징계를 받은 바 있다. 하나캐피탈 사장 시절 영업 정지된 옛 미래저축은행에 145억 원을 부당 지원한 혐의다.


금융 당국 추가 징계 가능성
이 때문에 그동안 김 전 행장은 당국의 중징계를 받은 최고경영자로서 자진 사퇴 압박이 거셌지만 내년 3월까지 임기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강력히 피력해 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하나은행의 KT ENS 부실 대출에 대한 제재심의위원회가 아직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김 전 행장이 추가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내년 3월까지 임기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반쪽 행장’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컸던 것이다. 여기에 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김 전 행장은 입장을 번복해 조기 통합에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동조합을 달래는 목적으로 중도 사퇴를 선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자진 사퇴는 징계에 따른 불명예 퇴진보다 은행장에서 명예롭게 물러나기 위한 일종의 출구전략인 셈이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