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젠드라 시소디어 美벤틀리대 교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이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됐다. 많은 대기업들이 잇따라 상생 협력 방안을 내놓으며 정부의 ‘상생 모드’에 발맞추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마뜩하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의 저자인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대 마케팅 교수는 상생과 협력이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바탕을 둔 ‘깨어 있는 자본주의’도 표방한다.

한경비즈니스는 국가브랜드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시소디어 교수를 만나 최근 대·중소기업 간 상생 문제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담은 윤여선 KAIST 경영대학원 교수(마케팅학 박사)가 맡았다.
[이슈 인터뷰] “상생은 기업 경쟁력의 주요 원천이죠”
윤여선 KAIST 경영대학원 교수(이하 윤 교수) 최근 한국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상생 방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국 벤틀리대 마케팅 교수(이하 시소디어 교수) 자유시장경제 체제는 경쟁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그런데 비즈니스에 보면 경쟁 못지않게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대단히 많습니다.

문제는 회사가 극심한 경쟁 속에 있는 경우 이 협력이라는 새로운 생산요소를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최근 조사를 보면 한 기업이 창조하는 가치의 80~85% 정도가 아웃소싱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외부에서 사 와서 20% 정도의 가치만 추가해 고객들에게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들이 수직 통합을 지향했던 과거와는 다른 중요한 변화입니다.

윤 교수 공급 업체를 잘 대하지 않으면 가치의 원천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시소디어 교수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공급 업체들을 쉽게 교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얻기 위해 공급 업체들을 쥐어짜는 잘못을 범해 왔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실수입니다.

공급 업체를 마치 고객처럼 대우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고객에게 하듯이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약속해야 하고 공급 업체들의 니즈를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윤 교수 실제 사례를 들어서 이야기해 주시죠.

시소디어 교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면 제너럴모터스(GM)를 들 수 있습니다. 1990년대 GM은 수익성이 추락하고 있었는데 구매담당 임원이었던 호세 이그나시오 로페즈가 모든 공급 업체들에 납품가를 10%씩 낮추라고 통보했습니다.

이 결정으로 GM은 수십억 달러를 절감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런 상황이 수년째 지속되자 공급 업체들이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했습니다. 더욱이 고품질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GM과 거래를 끊고 더 나은 고객사를 찾아나섰습니다. 결국 GM은 자동차 업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공급 업체들 대부분을 잃고 말았습니다.

윤 교수 한국 기업인들을 만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자주 강조합니다. 사실 한국 기업인들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회사별로 봉사 활동도 하고 기부도 하고 투자와 노력을 많이 기울이죠. 그런데 문제는 성과가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시소디어 교수 그런데 CSR를 주로 어떤 부서에서 주관합니까. 별도의 팀이 있습니까.

윤 교수 주로 최고경영자(CEO) 직속 부서가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회사 차원의 정책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이 많고, 실적과 무관하게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소디어 교수 사회적 활동에 힘이 실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종업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종업원들이 자기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는 프라이드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죠.

실제로 ‘사랑받는 기업’을 보면 현장의 종업원들이 적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오히려 중간관리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이해 당사자들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입니다.

윤 교수 실제로 중간관리자들이 나중에 경영진도 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점에서 중간관리자들이 무척 중요한데 잘 안 되는 게 정말 문제라고 보입니다.

시소디어 교수 무엇보다 회사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나온 책 ‘직원 먼저, 고객은 그 다음(Employee First, Customer Second)’이라는 책을 의미 있게 읽었습니다.

윤 교수 ‘사랑받는 기업’을 보면 그 기업의 성공 사례들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좀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더군요. 그래서 드는 의문인데 그들이 ‘사랑받는 기업’이 된 것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독특해서가 아닐까 싶었어요.

[이슈 인터뷰] “상생은 기업 경쟁력의 주요 원천이죠”
시소디어 교수
그런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사실 그들의 전략도 좋고 포지셔닝도 훌륭합니다. 우리가 흔히 ‘깨어 있는 비즈니스’라고 하는데 그것도 비즈니스의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깨어 있는’ 기업은 엔진이 2개 달린 기차라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점입니다.

2개의 엔진 중 하나는 비즈니스이고 다른 하나는 깨어 있는 그 정신이라고 저는 정리합니다. 이 두 가지 모델로 높은 목적을 향해 열심히 일하니 성과가 나오는 것이지요. 10년을 기준으로 비교할 때 깨어 있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랑받는 기업’들이 시장 평균의 9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윤 교수 그런 비즈니스 모델에서 그 두 가지 엔진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그런 비유를 기업인들을 만나 얘기하면 대개의 경우 그것이 왜 분리되지 않느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소디어 교수 호황일 때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비즈니스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고 실제 비즈니스도 잘 되기 때문이죠. 하지만 문제는 경기 침체나 불황일 때입니다. 깨어 있는 자본주의 정신이 없으면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사랑받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종업원들과의 유대 관계가 끈끈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매우 놀라울 정도입니다. 예컨대 컨테이너스토어라는 회사는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경기가 불황일 때 파트타임 워커들을 가장 잘 챙겨줍니다. 그래서 이 회사에서는 파트타임 워커라고 부르지 않고 프라임타임 워커라고 부릅니다.

윤 교수 ‘깨어 있는 자본주의’가 시대적인 대세라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시소디어 교수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는 세상을 인식하도록 우리의 지각을 열어놓는다는 의미입니다. 깨어 있는 기업은 개인에게 평화와 행복을 불러일으키고 사회적으로는 존경과 연대 의식을 가져다주며 회사나 조직에는 그 사명을 완수하도록 해 주는 모델입니다.

윤 교수 도요타나 스타벅스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두 가지 엔진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소디어 교수 저도 동의합니다. 제 기억에 도요타는 3년 전쯤 최고경영자가 자동차 업계 1위가 되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다가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1등이 되는 것인데 거꾸로 인위적인 목표를 세운 것이 문제였습니다. 옳은 일(right thing)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 실적은 따라오는 것인데 억지로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니 잘못된 일(wrong thing)을 하는 것이죠.

윤 교수 바람직한 정부와 기업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시소디어 교수 동양의 자유시장 속에서 이미 침투한 서구적 사고방식에 따르면 한 사회의 다양한 기관들의 관계가 상당히 적대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적지 않습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회 교육기관의 이익은 같은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합니다.

사회 기관들의 목적은 최대 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대 다수의 복지를, 그것도 미래에도 지속적일 수 있는 방식으로 창출하는 것입니다. 기업과 정부가 상생을 화두로 보다 더 원대한 목적을 갖고 기업과 정부가 함께 일하면 규제를 해도 더 스마트하게 할 수 있고 비즈니스 기회도 더 많이 창출할 수 있습니다.


라젠드라 시소디어 교수

약력 : 미국 벤틀리대 마케팅 교수. 지난해 9월 ‘깨어 있는 자본주의 연구소’를 창립해 회장을 맡고 있다. 컬럼비아대에서 마케팅과 경영 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2003년 영국 마케팅 전문 연구소가 선정한 ‘뛰어난 마케팅 사상가 50인’에 뽑혔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등에 100편이 넘는 논문을 실었으며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 등의 저서가 있다.

대담 = 윤여선 KAIST 경영대학원 교수
정리 = 김재창 기자 cha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