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을 글로벌 항공사로 성장시킨 주역…평창올림픽유치위원장 등 ‘민간 외교사절’로 활약
동경했던 하늘로 돌아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평생 가장 사랑하고 동경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하늘로 다시 돌아갔다.”

조양호 회장이 미국에서 4월 8일 새벽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한진그룹은 이같이 발표했다. 한진그룹은 “조 회장이 만들어 놓은 대한항공의 유산들은 영원히 살아 숨 쉬며 대한항공과 함께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 회장은 지난해 연말 미국으로 출국했고 폐질환으로 수술 받은 후 회복했다가 최근 병세가 다시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을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주역이다. 한진그룹은 1945년 11월 설립된 한진상사를 뿌리로 한다. 물류 사업 중심이었던 한진은 1969년 대한항공이 설립되면서 항공 사업을 주축으로 성장했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가 166대로 늘었고 일본 3개 도시만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이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고 연간 수송 여객 수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1949년 3월 8일 인천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의 뒤를 이었다. 조 회장은 1975년 인하대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1979년 서던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 1988년 인하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 1992년 대한항공 사장을 거쳐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에 올랐고 7년 뒤인 2003년 2월 14일 한진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창설 주도

조 회장의 회장 취임 직후인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등 악재가 잇따라 터지며 세계 항공사들이 구조조정, 항공기 주문 축소 등 최대한 움츠린 경영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선제적 투자로 위기에 대응했다. 2003년 A380 초대형 차세대 항공기, 2005년 보잉787 차세대 항공기 도입을 연이어 결정해 주목 받았다. 조 회장의 예측대로 2006년 세계 항공 시장이 회복되자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또 세계 항공업계가 무한 경쟁 시대를 대비해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SkyTeam) 창설을 주도하기도 했다. 특히 조 회장은 ‘항공업계의 국제연합’이라고 불리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 대한민국 항공 산업의 발언권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조 회장은 1996년부터 IATA의 최고 정책 심의·의결기구인 집행위원회(BOG) 위원을 맡았다. 이후 2014년부터 31명의 집행위원 중 별도 선출된 11명으로 이뤄진 전략정책위원회(SPC) 위원도 맡았다.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 항공사(FSC)와 저비용 항공사(LCC) 간 경쟁 구도로 재편될 것으로 내다보고 2008년 진에어를 창립하기도 했다.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별도의 LCC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은 한국의 항공 산업이 나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해 왔다”고 평가했다.

조 회장은 다양한 부문에서 민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국격을 높이는 데도 앞장섰다. 조 회장은 한·불 최고경영자클럽 회장으로서 양국 간 돈독한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충실히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2015년 프랑스 최고 권위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그랑도피시에를 수훈했다.

몽골로부터는 2005년 외국인에게 수훈하는 최고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받기도 했다. 조 회장은 몽골 학생 장학제도 운영 등을 통해 한·몽골 관계를 진정한 협력 동반자로 확대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 회장은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개최의 숨은 일등 공신이기도 하다. 대한항공이 1988년 서울올림픽 공식 항공사로 선정된 이후 그룹 차원에서도 국가 올림픽 행사 유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조 회장이 2009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이유기도 하다.



◆아버지와 함께한 ‘사진’이 유일한 취미

그는 유치위원장 재임 기간인 1년 10개월간 50번에 걸친 해외 출장을 돌며 약 64만km(지구 16바퀴)를 이동했다. 이때 IOC 위원 110명 중 100명을 만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결국 이러한 조 회장의 노력은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이어졌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은 조 회장은 2012년 1월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중 첫째 등급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했다.

2008년부터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았고 지난해 세계선수권 남북 단일팀 구성 등에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소탈한 경영 스타일로 알려졌다. 대외 행사에도 수행원을 많이 두지 않는 편이다. 수행하는 비서 없이 해외 출장을 다니며 서비스 현장을 돌아보곤 했다. 취항지를 결정할 때도 직접 사전 답사했다. 미국 취항지를 결정할 때 18일간 허름한 모텔에서 자고 패스트푸드를 먹으며 직접 6000마일(9600km)을 운전해 답사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꼼꼼함으로도 유명하다. 최고경영자(CEO)는 시스템을 잘 만들고 원활하게 돌아가게끔 하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직원들의 글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고 술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셔도 와인 한 잔 정도로 끝낸다. 많은 경영인이 즐기는 골프도 즐기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조 회장의 유일한 취미 생활은 사진이었다. 한진가는 사진 사랑으로 유명하다. 조 회장은 아버지에게 사진기를 선물 받은 후부터 사진을 취미로 뒀다. 아버지 조중훈 창업자도 사진을 좋아했다.

조 회장의 사진 실력은 수준급으로 꼽힌다. 직접 촬영한 사진을 모아 달력을 만들어 국내 경제계 인사들에게 선물했고 사진집도 출간했다. 조 회장이 국내 명소를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은 대한항공 CF에도 사용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전 이사장을 비롯해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딸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 전무 등 1남 2녀와 손자 5명이 있다. hawlling@hankyung.com
동경했던 하늘로 돌아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2000년 6월 스카이팀 창설식에 참석한 조양호 회장
동경했던 하늘로 돌아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2007년 6월 세계 최대 여객기 에어버스 a380의 대한항공 탑승 체험행사에서 조양호 회장이 자신의 카메라로 기내를 촬영하고 있다.
동경했던 하늘로 돌아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양호 회장이 2011년 7월 ㅏㅁ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2018 평창올림픽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게 증명서를 받고 있다.

조양호 회장 약력 : 1949년 인천 출생. 1964년 경복고 입학. 1975년 인하대 공업경영학과 졸업. 1979년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988년 인하대 경영학 박사. 1974년 대한항공 입사.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6년 한진그룹 부회장.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집행위원회 위원.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0년 한·불 최고경영자 클럽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2009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2014년 한진해운 대표이사 회장.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