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치판에선]
-이인영·임종석 등 국정 중추 역할…
“실력과 유연함 제대로 갖춰 ‘1987년 화석’에서 벗어나야”
당·청 요직 장악 ‘전대협’…‘책임 정치’ 시험대 서다
[한경비즈니스=홍영식 대기자] 이인영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출을 계기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전성시대’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온다.

이른바 ‘86(1960년대 출생, 80년대 학번)운동권’ 주류를 이루는 전대협 출신 인사들이 청와대와 여당의 핵심 지위에 오르면서다. 선배 정치인들의 전위대 역할에서 이제는 명실상부한 국정 운영의 중추에 포진한 것이다. “전대협 운동권이 당·청을 장악했다”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전대협 대세론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17년 5월 정부 출범과 함께 임종석 전 의원이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되면서다. 올해 1월 물러난 임 전 비서실장(현 외교특별보좌관)은 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다. 청와대와 여당에 포진한 전대협 출신 인사는 어림잡아 60여 명에 이른다.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 참모 가운데 임 전 비서실장을 비롯해 한병도 전 정무수석,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진성준 전 정무기획비서관, 송인배 전 정무비서관, 유송화 춘추관장, 권혁기 전 춘추관장 등이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이다.

민주당에선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낸 이 원내대표, 1기 부의장 우상호 의원, 이 원내대표와 원내대표 경쟁을 벌였던 김태년 전 정책위원회 의장(1기 부의장), 송갑석 의원(4기 의장) 등 3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지낸 오영식 전 의원은 3기 의장을 지냈다. 전대협 출신 지방자치단체장은 허태정 대전시장 등 30여 명에 이른다.

전대협은 1987년 8월 출범했다. 그전까지 학생운동은 각 대학과 지역 위주로 이뤄졌고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추지 못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월 민주 항쟁을 겪으면서 전국 대학의 연대화·조직화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해 8월 19일 95개 대학 3000여 명의 학생들이 충남대에 모여 전대협 출범식을 가졌다. 전대협은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평화통일·민중연대·학원자주화·통일단결을 활동 목표로 내걸었다. 1989년 임수경 방북 사건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친북 성향, 주사파 단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1991년엔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논란에 휩싸였고 결국 1993년 3월 대의원 총회를 통해 해체를 결정했다. 이후 1993년 5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재발족했다.

◆ “능력과 무관, 노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덕에 당선 ‘탄돌이’”

전대협은 첫 전국적인 대학생 조직으로 치밀한 노선 투쟁을 펼쳤다. 그 이전과 이후 운동권 세대보다 조직력과 전투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금까지도 전대협 동우회를 중심으로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전대협 출신이 정치권에 많이 유입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대협 출신의 한 여당 의원은 “밀어주고 당겨주는 끈끈한 유대감이 다른 어떤 운동권 세대보다 강하다”고 했다.

이들이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겸하고 있던 김 전 대통령은 이회창 총재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에 맞서 동교동계 위주의 인물들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젊은 피 수혈에 나섰다.

이 원내대표와 임 전 비서실장, 우상호 의원, 오영식 전 의원 등이 이때 영입된 ‘젊은 피’의 대표적 인물이다. 임 전 비서실장은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 최연소(34세·서울 성동을)로 당선됐다.

전대협 세력은 2004년 17대 총선 때 정치권에 대거 들어왔다. 이들은 관료 집단과 충돌하며 노무현 정권을 떠받치는 주축 역할을 했다. 기존 정치 질서를 인정하지 않고 선배 정치인의 용퇴를 주장하는 등 튀는 언행으로 주목받았다.

2004년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 17대 총선 당선자 워크숍에서 한 재선 의원이 “초선 의원들의 군기를 잡겠다”고 하자 한 초선 의원이 “군기 잡겠다는 사람의 귀를 물어뜯겠다”고 말하면서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초선 의원 108명에 빗대 ‘108번뇌’라는 말까지 나왔다.

한편에서는 능력과 무관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 덕에 운 좋게 당선됐다는 뜻의 ‘탄돌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노무현 정권에서 실패 경험을 한 이들은 2008년과 2012년 총선에서 상당수 낙선했다.

절치부심한 끝에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이제 단순 비판 세력이 아닌 책임 정치를 구현해야 하는 위치에 오른 만큼 국정 운영 능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하는 막중한 과제도 안게 됐다.

◆ “제 안의 낡은 관념·아집 불살라 버리겠다”고 했는데…

하지만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새 정치’를 외쳤던 이들도 이해찬·김근태 등 선배 정치인들의 ‘계파·계보 정치’에 함몰돼 전위대·행동대장 역할을 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았다.

기성 정치를 개혁하기는커녕 이에 편승해 스스로 기득권이 되고 계파가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가 별다른 사회 경험 없이 이른 나이에 정치권에 들어와 국민의 삶과 민생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적지 않게 받았다.

이미 운동권 후배로부터 뼈아픈 비판을 받으며 물갈이 대상으로 몰리기도 했다. 2015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임미애 혁신위원은 “새 활력과 대안을 제시해 줄 것으로 믿었던 86그룹은 아직도 1987년의 지나간 잔칫상 앞에 서성이고 있는 듯하다”며 “또 다른 권력이 돼 버렸다. ‘86 숙주정치’라는 말까지 들린다”고 비판했다.

86세대 정치 평론가인 서성교 건국대 초빙교수의 지적이다. “전대협 출신을 비롯한 86세력은 세계 문명사적 발전에 역행하는 역사관·경제관·사회관을 갖고 21세기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 이들은 1980년대 반독재 민주 투쟁 경험 시절의 인식과 철학에 머물러 있다.

이분법적 선악의 정치와 과도한 이념주의에서 탈피해 균형 잡힌 현실주의 인식으로 전환해 국정 운영 능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민주화 시대를 지나 정보화 시대에 들어온 지 오래됐는데, ‘87체제 화석’에만 머물러선 안 된다. 나라를 위해서라도 새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세력이 돼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성공하고 나라가 발전할 수 있다.”

86세대 출신인 박성민 정치컨설팅그룹 MIN 대표는 MBC 심인보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혁신과 기득권은 간단하다. 내가 변하자고 한다면 혁신이고 상대가 변해야 한다고 하면 기득권이다. 이 원내대표가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진짜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역사인식, 상대에 대한 태도, 이런 걸 좀…(바꿔야 한다). 굉장히 유연해야 한다는 점을 부탁하고 싶다”고 했다.

우상호 의원도 “(우리는)기존 정치 문법을 배웠고 기존 관행을 혁파하는 데 주저했다”고 자성한 바 있다. 이 원내대표는 “정치라는 축구장에서 ‘레프트 윙’에서 옮겨 ‘중앙 미드필더’가 되겠다”며 “저부터 변화를 결단한다. 제 안의 낡은 관념·아집부터 불살라 버리겠다”고 했다.

그는 강성 운동권 이미지에서 변신하기 위해 희끗희끗한 머리를 검게 염색하기도 했다. 까칠했던 이 원내대표가 유연해졌다는 말도 들린다. 변신하겠다는 뜻이다. 문제는 어떻게 현실 정치에 접목하느냐다.

국정 중추 세력이 된 전대협 출신들이 선민의식과 이념적 아집을 넘어 문재인 정부 후반기 국정 운영 능력을 제대로 입증할 수 있을까. 이들의 리더십이 진짜 시험대 위에 올랐다.


ysho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5호(2019.05.20 ~ 2019.05.2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