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1251호 (2019년 11월 20일)

‘KPI·영업 할당·법인카드 한도’ 없앤 정영채 사장의 파격 리더십

[비즈니스 포커스]
-취임 후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 행진
-콜 리포트·업무 일정 공유 등 고객 중심 경영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지난해 연간 순이익 3615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올린 NH투자증권이 올해도 3분기 기준 순이익 3599억원을 달성해 최대 실적을 갈아 치울 것으로 보인다. 2018년 3월 정영채 사장 취임 이후 2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 가고 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투자은행(IB) 부문의 전문가로 경력을 쌓아 온 정 사장의 취임 이후 NH투자증권은 ‘IB 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히며 질주했다. IB부문뿐만 아니라 자산관리(WM)를 비롯한 전 부문에서의 고른 상승세가 눈길을 끈다. 

NH투자증권의 이와 같은 호실적 뒤에는 ‘조직 문화’를 바꾸는 데 공을 들인 정 사장의 파격 행보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적 중심이었던 핵심성과지표(KPI)를 폐지하고 ‘과정 가치’ 중심으로 평가 방식을 바꾼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KPI를 폐지한 곳은 NH투자증권이 처음이다. 임직원들이 익명으로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창’을 만들고 IB 부문에서 적용하던 ‘콜 리포트’를 전 부문으로 확대해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얼마나 잘 팔았는가’가 아니라 ‘고객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WM 비즈니스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정영채식 리더십’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콜 리포트’ 시스템 전사 확대

“상품담당 부서는 편한 의자로 바꾸겠지만 영업 부서에는 ‘송곳 의자’를 주겠습니다.” 지난 3월 정 사장이 소집한 첫 IB사업부 전체 회의. “오랫동안 앉아서 야근하기에 의자가 너무 불편한데 바꿔 주실 수 있느냐”는 한 직원의 질문에 정 사장이 농담 섞어 건넨 대답이다. 고객과의 ‘현장 스킨십’을 강조하는 정 사장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정 사장은 1988년 ‘증권 사관학교’로 일컬어지던 대우증권에 입사하며 증권업계에 첫 발을 들였다. 1997년 33세에 대우증권 부장에 오른 뒤 2005년 IB담당 본부장으로 초고속 승진에 성공했다. 그런데 상무 승진 보름 만에 돌연 사표를 쓰고 대우증권을 떠났다. 잦은 경영진 교체로 불안했던 대우증권 대신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의)의 IB사업부문 대표직을 선택한 것이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의 IB 시장을 개척해 보겠다는 투지가 반영된 결정이었다.

‘사람이 재산이다’를 앞세우는 그의 경영 철학 또한 오랜 IB 업무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정 사장은 “IB의 본질은 첨단 금융 기법이 아니라 결국 고객과의 네트워크”라며 “고객을 먼저 생각하다 보면 실적은 따라온다”는 것을 수시로 직원들에게 강조한다. IB 부문을 이끌 때부터 하루에 16시간씩 일할 정도로 일밖에 몰랐던 그는 고객들을 만날 때마다 아주 사소한 대화까지 꼼꼼히 기록했다고 한다. 정 사장 스스로 “지난 10년간 쌓아 온 고객들에 대한 자료가 가장 큰 자산”이라고 말할 정도다. 고객에 대해 많이 알아야 고객들을 위한 방안을 연구할 수 있고 그것이 결국 회사의 수익률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바로 ‘콜 리포트’다. 

정 사장은 지난해 3월 취임 직후 자신의 영업 비밀 병기나 다름없는 콜 리포트 시스템을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고객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고객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등을 기록한다는 데 초창기만 해도 직원들의 푸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은 내용들을 꼼꼼히 기록하기 위해서는 예전과 비교해 그만큼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직원들이 ‘콜 리포트’ 시스템을 따라갈 수 있었던 데는 IB 부문을 통해 긍정적인 성과가 입증된 영향이 컸다. 

정 사장은 2005년 IB사업부문을 맡아 이끌면서부터 독특한 팀 문화를 이끌어 왔다. ‘콜 리포트’를 통한 고객 정보 공유와 정 사장 자신을 포함한 직원들의 ‘업무 일정’ 공유가 대표적이다. 말 그대로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는지, 또 ‘어떤 고객에게 무슨 제안을 했고 고객의 반응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공유하도록 한 시스템에 초기에는 IB 부문 직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직원들뿐마 아니라 정 사장 본인이 먼저 자신의 업무 일정과 콜 리포트를 공개하기 시작하며 이와 같은 시스템이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관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서 서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는 것을 이해시켜 나갔다. 실제로 긍정적 효과 또한 컸다. ‘콜 리포트’를 통해 고객 기업과 인물에 대한 정보가 쌓이기 시작하면서 ‘고객 맞춤형’ 서비스가 가능해진 데다 담당 직원이 바뀌어도 고객의 성향에 맞춰 적절한 전략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정 공유 역시 업무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다. 정 사장과 직원들 모두 서로의 일정을 공유하며 동선이 중복되는 일을 방지하고 협업을 진행하는 데도 더욱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지금도 NH투자증권의 모든 임원들은 물론 본인의 지원 사격이 필요한 사업부와 본인의 업무 일정을 공유하고 있다. 



◆WM부서 KPI 폐지…증권업계 첫 시도

‘정영채식 파격’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업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고객 중심’의 철학을 NH투자증권 전 직원들에게 심어 넣는 데 있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WM사업부의 인사 평가 시스템에서 KPI를 폐기한 것이다. 지금까지 증권업에서 개인의 업무 성과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수익 규모’, ‘판매 실적’, ‘신규 거래 고객 유치 실적’ 등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숫자’들을 기반으로 한 업무 평가를 하지 않겠다는 결정이었다. 그 대신 정 사장이 내세운 평가 기준은 ‘직원이 고객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직원이 고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소통을 이어 갔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과 같은 이른바 ‘고객만족지수’다. 실제 고객과의 대면 접촉 횟수, 자산 운용 보고서와 데일리 정보 자료 발송 등 고객 접촉 활동, 시황 분석과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학습 활동, 고객 분석과 같은 사전 준비 활동, 수익률 보고서와 세무 정보 안내, 고객 행사 안내 등과 같은 내용들이 구체적인 평가 지표가 된다. 

직원들이 ‘회사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벌어다 줬느냐’가 아니라 ‘고객들을 얼마나 만족시켰느냐’로 평가의 잣대를 완전히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고객 중심의 자산관리 강화’를 앞세우는 증권사들은 많았지만 KPI 폐지를 선택한 곳은 NH투자증권이 국내 증권업계의 첫 사례였다. 그만큼 초창기만 해도 우려가 많았다. KPI를 폐지해 실질적으로 경영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직원들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낯선 개념인 데다 이와 같은 과정을 어떤 식으로 평가한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적지 않았다. 

정 사장은 직원들을 설득하기 위해 ‘정공법’을 택했다. 3월 22일 NH투자증권 WM사업부 1500여 명의 직원들에게 새 평가 지표인 고객 중심의 ‘과정 가치’의 의미를 설명하는 전체 메일을 보냈다. 주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과정 가치’의 정착이 왜 중요한지와 함께 ‘재무적 손실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단호한 방침을 밝혔다. 그는 “과정 가치는 잠시 머무르는 바람이 아니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라며 “만약 여러분이 고객을 열심히 만나고 치열하게 고객을 돕기 위해 뛴다면 그 결과로 재무 손실이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이는 오롯이 최고경영자(CEO)인 제가 책임질 문제”라고 직원들을 설득했다. 

KPI가 폐지되며 NH투자증권 내부에서 사라진 것이 있다. 소위 영업 할당량이다. 직원들이 할당량을 달성하기 위해 고객들에게 상품 판매를 무리하게 밀어붙인다거나 불완전 판매가 일어날 가능성을 애초에 차단한 것이다. 그렇다고 직원들의 책임감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고객들에게 처음으로 연락을 취하는 순간부터 모든 과정이 평가의 대상이기 때문에 고객들을 대하는 데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되 과정에 있어서는 원칙 중심.’ KPI 폐지뿐만 아니라 최근 NH투자증권의 모든 변화를 관통하는 ‘정영채식 리더십’의 핵심이다. 정 사장은 취임 후 직원들이 사용하는 법인카드의 한도를 없앴다. 직원들이 출장을 갈 때 정해져 있던 ‘출장비’도 사라졌다. 해외든 국내든, 고객들과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금액의 제한 없이 얼마든지 자유롭게 사용하라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원칙이 더욱 강조된다. 직원들은 어디에 무엇 때문에 회사의 비용을 사용했는지 등의 ‘과정 가치’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를 두고 “사장이 업무를 너무 잘 알아 직원들이 고생한다”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NH투자증권이 지난 1월 16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50년 사사(社史)를 전 임직원에게 배부했다. 정영채(오른쪽) NH투자증권 사장이 본사 영업부를 방문해 직원들에게 사사를 전달하고 있다./NH투자증권 제공



◆대면 보고 축소하고 익명 게시판 설치

조직 문화가 근본적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이를 이끌어 가는 ‘강력한 리더십’만큼이나 ‘직원들의 공감’이 필수다. 정 사장이 ‘콜 리포트 확대’, ‘KPI 폐지 후 과정 가치 평가 도입’ 등과 함께 사내의 소통 문화를 개선하는 데 공을 들이는 이유다. 

지난해 3월 사장 취임 후 조직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정 사장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조직 문화 혁신 태스크포스’ 신설이었다. 외부 컨설팅을 통해 기존의 조직 문화를 진단·분석하고 조직 구성원들이 지향하는 방향에 맞도록 정책·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나타난 큰 변화 중 하나는 ‘대면 보고’의 축소다. 부서 간의 회의를 비롯해 직접 상사와 대면해 업무 보고를 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꾼 것이다. 그 대신 팀원들은 물론 임직원들 간에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쉽게 소통할 수 있도록 사내 메신저 등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강화했다. 정해진 틀에 맞춰 상부에 문서로 보고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업무상 필요한 논의들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단순한 정보성 보고는 보고서 작성을 지양하고 메일이나 카카오톡·문자 등을 통해 진행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소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또한 정 사장이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다. 신입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사장에게 직접 업무와 관련된 의견을 개진하거나 건의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지난해 말부터 시작한 사내 익명 게시판이다. 정 사장은 사내 익명 게시판을 만들기 전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가입해 직원들의 불만을 직접 지켜보던 중 ‘사내 게시판을 만들 테니 그곳에 불만을 터놓고 소통하자’는 글을 남기고 블라인드를 탈퇴했다. 이후 만들어진 사내 익명 게시판에는 말 그대로 허심탄회한 내용들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CEO 생각’, ‘소통의 창’, ‘조직문화 혁신 활동’, ‘투(To) CEO'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승진의 기준을 묻는 글에서부터 지점 출근 시간에 대한 불만까지 임직원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글들이 올라와 있다. 정 사장 또한 직원들의 건의 사항에 직접 댓글을 다는 등 적극적인 소통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조직 문화 개선을 통해 정 사장이 추구하는 목표는 ‘미국의 아마존’이다.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이 정보기술(IT) 기업인 ‘아마존’을 목표로 삼는다는 게 생뚱맞게 들리지만 정 사장은 오래전부터 “증권사도 미국의 아마존처럼 고객을 중심으로 사업 전략을 짜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고객들에게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고민할 때 경쟁력을 갖고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성과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으로 ‘고객과의 관계’를 다져나가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과정 가치’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정 사장은 “아마존이 전 세계 소비자들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선제적인 마케팅을 하는 것처럼 NH투자증권도 고객이 어떤 투자가 필요할지 먼저 알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NH투자증권을 고객과 자본이 알아서 몰려오는 ‘자본시장 플랫폼’으로 도약시킬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


당사의 허락 없이 본 글과 사진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입력일시 : 2019-11-21 16:42

가장 기대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서비스는 무엇입니까.
투표하기 결과보기

  • 한경BUSINESS 페이스북
  • MONEY 페이스북
  • MONEY 인스타그램
  • 한경BUSINESS 포스트
2019.12
통권1253
Business 통권1253호 이미지
2019 전국 경영대 랭킹
지난호 보기정기구독신청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