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 business 제 768호 (2010년 08월 25일)

[Prism] ‘하토야마-센고쿠’라인 주도…시각차 여전

일본 총리 ‘사과 담화’ 막전막후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지난 8월 10일 각의 의결을 거쳐 발표한 ‘한국에 대한 사과 담화’는 1995년 8월 15일 일본의 종전 50주년을 맞아 발표했던 당시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와 표현상 비슷하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일 강제 병합의 불법성을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이다.

◇ ‘무라야마 담화’와 뭐가 다른가 =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는 1995년 8월 15일 발표한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기분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 담화는 일본 역대 정부가 표명한 가장 진전된 견해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잘못했지만 병합조약 자체는 유효하게 체결됐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때문에 한·일 병합 100년을 맞아 발표되는 총리 담화에는 병합조약 자체가 원천 무효라는 부분까지 포함되지는 못하더라도 ‘병합조약에 이르는 제반 조약·협정(혹은 과정)이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됐다’는 부분이 포함되길 바라는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간 총리의 사과 담화는 한국 측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8월 10일 총리 관저 기자회견에서 간 총리가 인사하는 모습.

하지만 간 총리의 담화는 이 부분을 “100년 전 8월 일·한(한·일) 병합조약이 체결돼, 이후 36년에 걸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됐다.

3·1운동 등의 격렬한 저항에도 나타났듯이 정치적·군사적 배경 아래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反)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고 모호하게 처리했다.

표현 자체만 보면 병합조약에 이르는 과정을 언급하지 않은 채 다만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다는 결과론에 머무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본 전문가들은 ‘병합조약 체결로 시작된 식민지 지배가 정치적·군사적 배경 아래 한국인의 뜻에 반해 이뤄졌다’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일본 내에서 ‘병합조약 자체도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리로 연결되는 길을 열어 놓은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담화의 표현 자체로는 무라야마 담화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적극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표현도 일부 포함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으로선 이런 표현에 만족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무라야마 전 총리도 담화 발표 후 국회 질의·답변 과정에서 “병합조약이 강제된 측면이 있다”고 인정한 적이 있었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일본 내 논의 과정에서 담화의 새로운 표현이 어떻게 해석되는지 지켜볼 필요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일 병합의 합법성 여부는 이미 양국 간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 논란을 이해하려면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1965년 한·일 기본조약 2조 해석을 둘러싼 논쟁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한국이 ‘이미 무효’라는 표현을 1904년 2월 한일의정서에서 시작해 1910년 한·일 병합조약에 이르는 모든 조약과 협정이 원래부터 무효였다고 해석한 반면 일본은 ‘국제법상으로 유효하게 체결됐지만 한국의 독립이나 한국 정부의 수립으로 결과적으로 무효가 됐다’고 전혀 다르게 풀이했다.

이런 해석의 차이는 독도 영유권 문제와도 관련이 있을 정도로 민감한 문제다. ‘1905년 1월 28일 독도를 일본에 편입한 결정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일본 외무부의 주장이 성립되려면 일제가 추천하는 재무와 외무 고문을 두도록 강요해 대한제국의 재정권과 외교권을 박탈한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한일협정서)도 유효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상득 부의장 분주한 행보 = 아사히신문은 일본 총리의 한·일 병합 100년 담화 전문을 한국 정부는 발표 당일(8월 10일) 아침에 받았고 발표 직전 ‘평가한다’는 뜻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인 오카다 가쓰야 외무장관이 8월 9일 낮 한국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총리 담화의 골자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자세한 내용은 설명을 피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밤새 일본 측에 담화 전문을 계속 요구했다.

센고쿠 요시토

아사히신문은 한국 측의 총리 담화 내용 파악이 늦어진 것은 국내 정치권의 반발을 우려한 일본 측의 사정도 있었지만 담화 작성 과정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없었던 한국 측 때문이었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시민 단체 등이 전쟁 피해자에 대한 개별 보상과 사죄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담화 내용을 사전 협의했다가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밀약이다’는 여론의 역풍을 맞을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한국 정부가 담화 내용을 놓고 일본과 사전 협의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분주하게 움직인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형으로 한·일 의원연맹 회장을 맡고 있는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 전 국회부의장은 지난 7월 한국을 방문한 와타나베 고조 일·한 의원연맹 회장에게 ‘전향적인 총리 담화가 나올 경우 동생(이 대통령)은 역사 인식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민주당 정권으로 바뀌면서 정치권의 한·일 파이프가 제한돼 있어 결국 한국 측이 (이번 담화와 관련) 주도권을 잡은 것은 ‘발표 시기’ 정도였다”고 신문은 전했다.

한국 정부의 고위 인사가 7월 하순 방한한 민주당 의원에게 총리 담화를 낼 경우 한국의 광복절(8월 15일) 이전으로 해 이명박 대통령의 연설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해 담화 발표가 8월 10일로 결정됐다는 것이다.

한편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담화 발표에서 간 총리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반면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보도했다.

담화 작성에 직접 관여한 사람은 간 총리를 비롯해 센고쿠 관방장관, 후쿠야마 데쓰로, 후루카와 모토히사 두 관방부장관 등 4명이지만 하토야마 총리의 측면 지원을 받은 센고쿠 관방장관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도 “이번 담화는 ‘하토야마-센고쿠 라인’이 주도했다”며 “하토야마 전 총리는 재임 중 담화 발표를 구상했고 6월 초 사임하면서 간 총리에게 이를 인계했다”고 전했다.

◇ 센고쿠 관방 공격 당해 = 한·일 강제 병합 100년 담화가 나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센고쿠 관방장관은 일본 보수 우익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 자민당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간 총리의 담화 발표가 나온 직후 “센고쿠 관방장관이 자신의 생각을 충족시키기 위해 (담화를) 냈다”고 직설적으로 공격했다. 그는 센고쿠 관방장관이 주도한 총리 담화에 따라 “향후 문화재 반환과 여러 가지 개인 보상 문제로 불똥이 튈 수 있어 화근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일부 보수 우익 성향의 네티즌들은 센고쿠 관방장관이 ‘매국노 짓’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 ‘굴욕·사죄 외교’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우익지인 산케이신문은 ‘집념의 센고쿠 씨’란 제목의 기사에서 “센고쿠 관방장관이 민주당 내 반발을 억누르고 집념의 각의 결정으로 총리 담화를 이끌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총리가 담화에서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다시 표명함으로써 1965년 일·한 기본조약으로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된 개인 보상 문제가 재연될 우려가 있다”며 “센고쿠 관방장관의 폭주가 정권을 뒤흔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도쿠시마 현 출신의 중의원 6선 의원으로 도쿄대 법대 재학 중 사법고시에 합격한 센고쿠 장관은 변호사 시절부터 강제 징용자와 사할린 강제 억류자, 외국인 지방참정권 등에 관심을 가져 온 일본의 양심적 정치가 가운데 한 명이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반성하고 한국과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1990년 구 사회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했지만 사회당이 사민당으로 이름을 바꾸자 민주당으로 옮겨 간 총리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해 왔다.

차병석 한국경제 도쿄 특파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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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0-08-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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