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와 서비스를 중소기업에 더 많이 맡기고 혁신적인 첨단 납품 업체를 모아 공급망을 개선하는 정책을 펴 나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중소기업은 대부분 선진 경제의 활력이다.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혁신을 통해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3년부터 2009년까지 중소기업이 일자리의 65%(약 1000만 개)를 창출했고 첨단 기술 근로자(과학자, 엔지니어,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의 43%를 고용했으며 대기업보다 13배나 많은 특허를 출원했다.

독일과 대만도 마찬가지다. 독일은 중소기업이 혁신 기술과 새 수요에 대한 발빠른 대응력과 첨단 기술 분야의 전문성을 토대로 대기업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일례로 다수의 가족 기업까지 망라하는 소기업 네트워크 미텔스탠드(Mettelstand)는 독일이 기계·공구에서부터 레이저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대만의 중소기업은 독립 이후 나라 경제 발전의 주역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대기업이 수출과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지만 혁신의 동력은 중소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도 1960년대 초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인식해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발전을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며 중소기업을 위한 금융 서비스를 도입하고 중소기업 전용 업종을 지정해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정책의 변화를 꾀해 코스닥 같은 제도적 장치를 통해 중소기업 스스로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게 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중소기업은 어떤 위치에 있을까. 정부 통계에 따르면 중소기업은 생산액의 절반, 고용의 90%를 담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혁신을 주도하는 중소기업의 비중은 1% 미만으로 매우 낮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0년 9월 13일 주요 대기업 총수들을 만난 자리에서 “투자 확대, 고용 확대, 중소기업 지원”을 당부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이 중소 납품 업체를 압박하며 원가절감을 요구하는 까닭에 중소기업이 혁신을 위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대기업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회사를 수직적으로 통합하거나 특수 관계인을 동원해 가족형 카르텔을 형성하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벤처 파이낸싱이 중소기업의 중요한 구조적 장애물로 인식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는 중소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더 많다.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 침체, 이익 감소로 기술과 혁신에 대한 투자 부진, 고급 인재 확보 실패 등이 겹쳐 한국 중소기업의 앞날은 어두운 편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중소기업을 위한 강력하고 혁신적인 토대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무엇보다 대기업들이 다각화 및 수직적 통합 전략을 재고해야 한다. 제조와 서비스를 중소기업에 더 많이 맡기고 혁신적인 첨단 납품 업체를 모아 공급망을 개선하는 정책을 펴 나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비교 우위의 원리는 아직도 유효하다. 대기업은 높은 고정비를 감안해 고부가가치 활동에 집중하고 이익률이 낮은 활동은 고정비 부담이 적은 중소기업에 맡기는 것이다.

둘째, 한국 국민과 언론은 혁신의 문화를 포용하고 혁신적인 중소기업에는 대기업에 버금가는 갈채를 보내야 한다. 그러면 대기업보다 부가가치를 더 빠르게 높이고 기업 운영 방식을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중소기업에 일류 대학 졸업자가 자연스레 몰리게 될 것이다.

투자자, 혁신 전문가, 대학 연구소는 아이디어를 간단한 방법으로 상업화하는 방법을 궁리할 필요가 있다. 벤처캐피털 등 금융회사는 단순히 자금을 융통하는 데서 벗어나 신규 벤처기업에 경영 노하우를 알려주고 중소기업이 성공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야 한다.

정부는 다양한 금융 혜택과 투명하고 정당한 부도 처리법, 중소기업 지식재산 보호 조치 등을 마련해 중소기업의 육성과 성장을 지원하는 한편, 대기업과 비교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공정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국민 1인당 나스닥에 입성하는 벤처기업의 수가 미국보다 많은 환경을 만들었다. 한국도 할 수 있다.

[경제산책] 한국의 중소기업 육성 방안
라비 쿠마르 카이스트 경영대학장

1952년생. 74년 인도공대(IIT) 기계공학과 졸업. 76년 미국 텍사스대(알링턴) 오퍼레이션리서치, 통계학 석사. 8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 경영과학 및 산업공학 박사. 2003년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 부학장. 2009년 KAIST 경영대학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