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27-망리단길]
인스타가 찜한 '힙 플레이스'
망원시장부터 한강공원까지, 젊은층 ‘데이트 코스’ 따라 상권 발달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사진) 망원시장 옆 오래된 골목길에 젊은 감각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속속 자리잡고 있다. /이승재·김기남 기자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김태림·주현주 인턴기자] 망원동 하면 영화 ‘추격자'가 먼저 떠오르던 때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연쇄 살인범의 추격 신이 벌어진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망원동은 낡고 음습한 기운으로 어두운 밤 골목을 마음 놓고 돌아다니기 힘든 동네였다.

이 영화가 나온 게 2008년 무렵이니 그 이후 10여년. 지금의 망원동은 전혀 딴 세상이다. 새로 생긴 커피숍이나 공방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은다.

그 발길을 따라 더 많은 카페들이 거리 풍경을 바꿔 가는 중이다. 마포구 망원동 망원시장 일대를 일컫는 ‘망리단길’이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인스타 타고 ‘힙(hip) 상권’으로 부각

요즘 가장 ‘힙한 상권’으로 손꼽히는 망리단길의 첫인상은 당황스러웠다. 그저 오래되고 낡은 골목길만 눈에 들어온다. 흔히 이곳을 ‘인스타 상권’이라고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동네의 진가를 알려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망리단길’을 한번쯤 검색해 보는 건 기본이다.

그래야 골목 사이사이 숨어 있는 ‘힙한 가게’를 찾을 수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별 볼 일 없는 동네 상권이지만, ‘인스타를 쫓아’ 오는 이들에게 이곳은 색다른 재미가 넘치는 보물 창고다.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한 SNS에 망리단길이 지금처럼 자주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 사이의 일이다. 흔히 망리단길이라고 하면 하모니마트를 그 시작점으로 친다. 이곳에서부터 망원시장 방향으로 이어진 ‘포은로길’이 중심축이다. 이 길을 가운데에 두고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 일대를 모두 통틀어 일컫는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망리단길 입소문의 진원지는 ‘카페 동경’이다. 2014년 망원동에 둥지를 튼 이곳은 ‘비엔나 커피가 맛있는 곳’으로 자주 언급되며 지금은 망리단길의 필수 코스가 됐다. 간판도 없이 지하에 자리해 있지만 오후 1시 문을 열기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다.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의 유품이 전시돼 있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오드리 헵번’ 카페, 다양한 피규어 장난감들을 전시해 놓은 피규어 카페 ‘비바쌀롱’ 등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들이 뒤이어 입소문을 탔다.

이색적인 레스토랑도 많다. 멕시코 음식점 ‘델리차우’같은 이국적인 레스토랑에서부터 채식주의 빵을 파는 ‘꽃밀’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작은 서점을 지향하는 ‘만일 동네책방’이나 가죽 공방이나 유리공예 같은 공방도 늘어나고 있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망리단길이 뜬다고 하니 새롭게 가게를 알아보러 오는 창업 투자자들의 발길도 부쩍 잦아졌다. 망원시장 옆 포은로길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유흥 주점이나 술집,새시가게,한복집 등이 다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젊은 사람들 취향에 맞춰 카페나 펍, 아이스크림 가게 등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최근 2년여 사이에 이 일대에 새롭게 들어선 가게만 하더라도 30여 곳 정도인데, 그중 절반 이상이 올 들어 문을 연 곳들이다.

명지공인중개사 관계자는 “망원시장과 포은로길을 연결하는 골목이 특히 인기가 많다”며 “도쿄빙수 골목만 하더라도 이제 기존 가게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새로운 업종으로 교체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 ‘5000만원’이면 새 가게 오픈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각광받는 그 수많은 골목 상권 중에서도 ‘망리단길’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것은 저렴한 임대료다. 망원동 부동산들에 따르면 상가 시세는 33㎡(10평)를 기준으로 월세 70만~150만원 선이다. 보증금은 1000만~2000만원, 권리금은 2500만원 정도다.

보통 카페나 음식점 창업에 소요되는 인테리어 비용 2000만~3000만원 정도를 감안해도 5000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가게 하나를 오픈할 수 있다.

1년 전만 해도 권리금이 전혀 없던 이 동네에는 최근 들어 2000만원 안팎의 권리금이 붙기 시작했다. 사람이 모이자 돈이 따라 붙고 있는 것이다. 망원시장 근처에 자리한 신바람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최근 한 달 사이에 권리금을 가장 비싸게 받은 상가는 3500만원 정도로 상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망원동은 홍대 상권의 핵심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서교동·합정동과 맞닿아 있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임대 시세는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니 망원동 지하방이나 옥탑방을 작업실로 삼는 방송작가나 음악가들이 꽤 많았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예술적 감성이 채워지면서 이태원 경리단길과 혜화동 이화마을, 연남동 등 ‘이미 떠버린 골목 상권’에서 망원동으로 둥지를 옮기는 가게들이 서서히 생겨나기 시작했다.

카페이자 미술 공방인 ‘우아하게’는 원래 연남동에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최근 월세가 많이 올라 새로운 곳을 알아보다가 1개월 전 이곳으로 옮겨 왔다.

우아하게 관계자는 “공방이 아예 없는 곳보다 몇 개라도 몰려 있는 곳들을 찾아왔다”며 “지금은 망원동이 카페나 음식점 중심이지만 공방도 늘어나고 있어 단순히 ‘먹자 상권’을 넘어 즐길거리가 많은 상권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고 설명했다.


◆SNS 홍보는 필수

지하철 6호선 망원역과 가까운 역세권인 데다가 서울 시내 대표적인 재래시장으로 알려진 망원시장을 끼고 있다는 점 또한 망리단길이 뜰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다. 실제로 SNS상에 망리단길이 자주 언급된 데에는 이 일대가 ‘데이트 코스’로 좋다는 입소문의 영향이 컸다.

망원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싼 음식을 즐긴 뒤 걸어서 15분 정도면 망원동 한강공원까지 산책을 즐길 수 있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사진) 망리단길의 또 다른 재미 ‘망원시장’.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음식을 즐길 수 있어 최근 젊은층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망원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망원시장이야 망리단길 전에도 사람이 워낙 많았다”며 “하지만 예전에는 주로 60~80대 거주민과 가정주부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주말 낮이나 평일 저녁을 중심으로 젊은 데이트족이 자주 눈에 띈다는 게 가장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 덕분에 시장 내 상인들의 매출도 늘었다. 망리단길이 뜨기 전과 비교해 대략 20% 정도 매출이 증가했다는 게 시장 상인들의 전언이다.

대체로 평일 밤에는 홍대 상권에서 넘어온 젊은 층의 유입 인구가 늘어나고 주말이 되면 지방에서 올라온 데이트족이나 20~30대 여성 고객들의 비율이 높다.

이곳에서 만난 대학생 이모 씨는 “여자 친구가 대전에 사는데 인스타그램을 통해 망리단길을 알게 돼 데이트를 즐기러 왔다”며 “원래는 카페동경에 가려고 했는데 2시간쯤 줄을 서야 한다고 해서 SNS로 다른 맛집을 찾아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인스타 상권’ 망리단길을 찾아오는 소비자들의 패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자연스레 이곳 상인들 사이에서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SNS를 활용한 홍보는 필수가 됐다. 가게 운영자가 직접 SNS를 관리하지 않더라도 손님들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저절로 홍보가 되기도 한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망리단길은 여느 골목 상권과 달리 인스타에서 검증된 맛집을 찾아가는 목적형 상권의 특징이 강하다”며 “입소문을 탈 만한 차별화 요소가 성공의 핵심 요건”이라고 짚었다. 이와 함께 SNS 활용에 익숙한 10~20대 젊은층을 타깃으로 하는 만큼 객단가가 낮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vivajh@hankyung.com

[기사인덱스]
-홍대 상권 ‘인접’한 망리단길…임대료는 절반 이하
-인포그래픽: 망리단길 하루 평균 유동인구 5만3553명
-7평 빙수 가게에 하루 손님 400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