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걸어온 길이 미래를 만들어…성공의 열쇠는 자신의 경험}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르네상스는 14~16세기에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 일어난 문화 혁신 운동이다. 르네상스의 의의와 영향에 대한 본인의 의견과 21세기 르네상스는 어떤 분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서술하시오.’

올해 4월 현대차가 상반기 대졸 신입 사원 채용에서 인적성검사에 출제한 역사 에세이 문항이다. 현대차는 2013년부터 인적성검사에서 역사 에세이 시험을 보고 있다. 많은 지원자들이 현대차의 역사 에세이가 고시만큼 어렵다고 말한다.

최근 현대차뿐만 아니라 삼성·LG·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입사 시험에서 역사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문제가 어렵다 보니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역사가 대기업 입사를 결정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대학가는 이미 역사 공부 열풍으로 뜨겁다.

국내 주요 기업들이 역사 시험을 강화하는 것은 역사관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서다. 과거는 현재를 낳고 현재는 미래를 잉태한다. 역사 공부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세계와 만나게 된다. 과거와 대화하고 소통한다.

과거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공유하고 함께 새로운 것을 설계한다. 에드워드 카가 말한 것처럼 역사를 배우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아는 차원을 넘어 현재를 읽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키우는 것이다.

◆기업은 왜 역사를 공부하라고 할까

이처럼 사람들은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 세계의 역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자기 과거를 꼼꼼히 살피지 않는다.

자신이 당시 처한 상황이 어땠고 그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이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이가 많다. 자기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했다는 사람들조차 매우 제한적이고 단편적인 모습만 알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현재를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나는 헤드헌팅 회사 경영자로 있다 보니 이력서와 경력기술서를 접할 기회가 많다.

이 가운데 ‘좌충우돌형’ 이력서가 종종 눈에 띈다. 도무지 어떻게 그런 이력서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이력서에 올라 있는 경력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다. 이력서 주인공이 머물렀던 직장들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도통 상호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왜 이렇게 직장을 옮기게 됐는지 한참을 생각해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마흔 살도 되기 전에 수차례 직장을 옮겨 다녔다.

이들은 대체로 자신의 이전 직장이나 직무에 큰 관심이 없다. 당연히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낙담하고 무엇에 열광하는지 잘 모른다. 이들은 직장을 옮길 때도 자신이 이전에 어디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옮기려는 회사에만 관심을 쏟을 뿐이다.

연봉이나 복리후생 같은 근무 조건, 직책이나 직급처럼 사내 위상과 관련된 것들을 파악하는 데 안테나를 세운다. 이들에게 과거 직장 생활 경험은 미래의 직장과 직무를 결정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때 성공률을 높이려면 현재의 사업과 연관성이 강해야 한다. 그래야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에 성공하려면 직간접적인 경험이 많아 잘아는 분야를 선택해야 한다.

지식과 경험이 많은 분야에서 일해야 성과가 나고 업무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얘기다. 직장인들이 이직할 때 자신의 과거 직무와 연관성이 높은 분야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경험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면 자신에 관한 연구가 필요하다. 마치 취업 준비생들이 역사 공부를 하듯이 자신의 개인사를 공부해야 한다. 가족이나 학교, 주거지역 같은 성장 배경, 취미나 사회 활동, 친구나 선후배, 전공 분야 등을 입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특히 회사를 옮기려는 30대 직장인들은 자신이 이전 직장에서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부터 정확하게 분석해야 한다. 주로 맡았던 직무가 무엇이고 직무의 성과는 어땠으며 그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어떤 일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모든 경험은 현재 생활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장애 가운데 어린 시절 경험 때문에 발생한 것이 많다고 말한다. 심인성 질환이나 장애가 대표적이다. 물론 어린 시절 경험의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잊힌다.
하지만 경험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식에서 사라졌을지 모르나 잠재의식에서 여전히 존재한다. 이 때문에 정신과 의사나 최면 전문가들은 사람들을 최면 상태로 만든 뒤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을 잠재의식에서 불러온다.
경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사진) ‘멕시코의 피카소’라고 불리는 귄터 게르초의 그림은 그가 무대 세트 디자이너로 근무한 경험에서 나왔다. 귄터 게르초의 작품 ‘조류의 탄생’.

◆‘글씨 쓰기’에 매료됐던 스티브 잡스

경험은 이렇게 순간의 사실로 끝나지 않고 현재와 미래의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정신 결정론(psychic determinism)’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모두 과거 경험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험을 잘 분석하고 활용하면 우리가 얻으려는 결과를 훨씬 쉽게 확보할 수 있고, 얻으려는 성과를 더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데 과거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귄터 게르초는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구성의 아름다움을 보장하는 황금 비율을 중시했는데 주로 대칭과 비대칭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의 균형을 그림에 담았다.

이 때문에 그는 ‘멕시코의 피카소’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가 기하학적 도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0여 년간 유럽에 머무르면서 세잔, 렘브란트, 마티스 같은 화가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정적 요인은 그가 미술로 진로를 바꾸기 전 극장의 무대 세트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이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 역시 자신의 경험을 잘 활용해 사업에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경제적 이유로 대학을 중퇴했지만 상당 기간 동안 캠퍼스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청강을 즐겼다.

당시 그가 열심히 청강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글씨를 아름답게 쓰는 기술인 캘리그래피 수업이었다.

그는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맥은 아름다운 활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는데, 만약 내가 그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맥컴퓨터는 지금의 다중 활자체나 비례적으로 공간이 있는 폰트들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애플의 아름답고 우아한 서체는 바로 그가 청강한 서체 강의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사업을 벌인다. 따라서 직장인들이 업무 성과를 거두고 업무 만족도를 높이려면 자신의 경험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히 중간 간부의 반열에 오르고 임원을 염두에 두고 있는 30대 직장인들이라면 자신의 역사를 공부하는 데 좀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자신이 했던 모든 경험을 분석하고 종합해 스스로에게 맞는 최적의 직무와 직장을 찾아내야 한다.

물론 ‘휴브리스(Hubris)’처럼 경험 만능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 휴브리스는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문명 비평가인 아놀드 토인비가 사용한 개념이다.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휴브리스는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정도의 오만을 뜻하는 말이다.

토인비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질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성공 경험을 과신하는 바람에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이 과거에 했던 방법을 절대적 진리로 착각해 실패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이런 휴브리스류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자신의 과거 경험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는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세상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관계없이 자신이 했던 방식대로 일을 추진하다가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과거에 맡았던 직무와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다른 일을 하거나 직장을 옮기면 경력에 큰 금이라도 갈 것처럼 두려워한다.

이렇게 경험의 굴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미래를 열기가 쉽지 않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이 부족하면 성장이 멈추거나 꺾일 가능성이 높다.

◆길이 끊기면 과거를 돌아보라

모든 경험은 다 소중하다. 직장인들의 커리어에 살이 되고 뼈가 된다. 성공만이 소중한 게 아니다. 실패한 경험도 절대 버리면 안 될 자산이다. 가끔씩 우리는 과거를 헛되게 보냈다며 후회하곤 한다. 그 시절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그냥 흘려보낸 게 아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많은 것을 얻었다. 단지 지금 활용하지 못하고 있거나 활용할 생각을 못할 뿐이다.

따라서 미래를 설계하려면 과거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는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경험이다.

경험은 직접 몸으로 부닥치고 마음으로 느끼지 않으면 얻기 어렵다. 또 쉽게 얻기 어려운 만큼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험은 가장 위대한 스승”이라는 옛말처럼 우리에게 갈 길을 제시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경험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길이 나뉘어 있거나 끊겨 있을 때 역사를 공부하듯이 경험과 대화하며 성찰하면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게 옳은지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