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만의 커리어 업그레이드]
직장은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치’를 찾아야 한다
그래 봤자 직장, 그래도 직장
(사진)조치훈 9단의 대국 모습. /한국경제신문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 “그래 봤자 바둑.”
재일교포 프로 바둑기사인 조치훈 9단이 한 말이다.

바둑 한 판 이기고 지는 것은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당연히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는다. 이기면 짜릿하고 지면 우울하지만 그뿐이다. 그냥 바둑이다. 그러니 바둑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다. 목숨을 거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그래 봤자 직장.”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이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

입사한 지 몇 년이 지나면 좁디좁은 취업문을 뚫고 진입했다는 안도감 그리고 낯선 환경으로 인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직장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조금씩 매너리즘이 다가온다. 이런 상황에서 야근이나 주말 근무에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까지 겹치면 ‘이렇게까지 해 가며 직장을 다녀야 하나’라는 회의에 빠지게 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몇 번씩 개선을 요청해도 반영되지 않는 직장은 구성원들을 무기력하게 만든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래 봤자 직장”이고 “그래 봤자 회사”라는 자조적 푸념으로 자신들의 한계를 토로하곤 한다.

나는 사람들이 직장에 너무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직장인들은 회사를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여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안에도 크게 휘둘린다. 외부 사람들이 보면 별것 아닌 문제인 데도 전전긍긍할 때가 많다.

이들을 보면 ‘그렇게까지 직장 생활에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봤자 직장’ 아닐까. 만약 부닥치고 있는 문제가 너무 복잡하고 풀기 어렵다면 회사를 옮기면 그만이 아닐까.

회사의 모든 문제를 떠안고 즐거움이 하나도 없는 표정을 지어 가며 직장 생활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직장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셀 수 없이 많다. 또 직장을 떠난다고 죽는 것도 아니다. 가능성이 없다면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치 25주의 중상을 이겨낸 조치훈 9단의 힘

“그래도 바둑.”
바둑은 일반인들에게 별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조치훈 기사에게는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바둑은 그에게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바둑 없이 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삶에서 바둑을 빼놓고 할 얘기는 별로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가 바둑 한 판 한 판에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해도 일본인들은 조치훈 기사가 종종 “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건다”고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일본에서 재일교포는 주류 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도는 존재였다.

이 때문에 그가 바둑을 가지고 목숨 운운하는 것에 대해 일본인들은 ‘바둑 조금 둔다고 시건방지다’는 부정적 시각으로 바라봤다. 그런데 이런 시각은 한순간에 바뀌었다.

1986년 1월 요미우리신문이 주최하는 기성전 대국을 10일 앞두고 조치훈 기사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른쪽 다리의 정강이뼈가 부러지고 왼쪽 다리와 왼쪽 손목이 골절상을 입은 전치 25주의 중상이었다.

하지만 조치훈 기사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의사가 만류했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총 7번의 대국 가운데 첫 대국에 불참해 기권패했지만 둘째 대국에서 완승했다. 왼팔과 몸에 깁스를 하고 붕대를 감은 채 휠체어에 앉아 바둑을 두면서도 그는 초인적 집중력을 발휘했다.

기성전에서 4 대 2로 지긴 했지만 ‘휠체어 대국’에서 바둑을 대하는 그의 자세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가 왜 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건다고 이야기하는지 알게 됐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당시 일반인들에게 기성전은 신문사가 주최하는 바둑 대회의 하나였다. 바둑계 인사들에게도 수많은 바둑 대회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일반인들 눈에 비치는 기성전 대국은 그가 건강과 바꿀 만큼 심각한 그 무엇이 아니었다.

그러나 기성전 타이틀 보유자인 조치훈 기사는 그 대국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바둑을 둘 것이다. 기권은 없다. 기권하느니 차라리 바둑판 앞에서 죽겠다. 내 머리와 두 눈, 오른팔은 멀쩡하다. 이것은 바둑을 두라는 하느님의 계시다.”

모두가 조치훈 기사가 기권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보란 듯이 대국장에 나타났고 대국마다 최선을 다했다. 당시 도전자인 고바야시 고이치 기사도 그의 투혼을 높이 사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졌다. 그를 꺾지 못했다. 나는 영원히 이 부끄러운 승리 때문에 괴로워할 것이다.”

◆‘가치’에 대한 확신은 난관을 극복하는 원동력

“그래도 직장.”
직장 생활의 매너리즘은 회의감으로 이어져 나름대로 갖고 있던 자존감마저 흔든다. 특히 30대 중반에 가까이 갈수록 이런 상황은 더 심해져 업무 의욕을 잃는 상황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래 봤자 직장인데 전전긍긍할 게 뭐람. 적당히 하자. 그러다 문제가 생기면 직장을 옮기면 된다. 회사에 충성하고 업무에 매진한다고 해서 내게 돌아올 것은 없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래 봤자 직장’이지만 ‘그래도 직장’이지 않을까.
가끔 직장 생활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된다. 직장을 단순히 일하고 그 대가로 월급을 받는 곳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현대인들에게 직장은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고 행복한 삶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그런데도 일부 직장인들은 삶의 중심을 직장 밖에 두면서 직장을 그곳에서 활동하기 위한 보조적 존재로 간주한다.

이들은 가족이나 종교 단체, 봉사 단체 같은 친목 단체를 자기 삶의 근거지로 삼는다. 가능하면 업무를 제외한 회사의 다른 일에 얽히지 않으려고 한다. 이들에게 직장의 주인은 대주주나 경영자, 혹은 임원과 간부들이다. 자신은 그냥 일해 주고 월급을 받는 사람일 뿐이다.

언뜻 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직장 생활을 잘하는 방법처럼 보인다. 회사 내의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니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만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 뒤처질 수밖에 없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이런 직장 생활도 멈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런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직장 생활을 잘하고 오래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사람이 어떤 일에 집중하면서 그 일의 중심에 서려는 것은 그 일이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가치에 대한 확신은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핵심 에너지다. 여성들이 아직까지 직장의 중심에 서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제도나 관습의 수많은 장애물 때문이지만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직장의 가치를 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성들만 그런 게 아니다. 직장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업무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직장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직장의 가치를 잘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쏟는 사람은 없다.

직장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직장에 자기 생활의 중심을 두기 어렵다. ‘그래 봤자 너는 월급쟁이일 뿐이야’라는 자기 비하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자신이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지 않는 직장인에게서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가치가 없으면 그냥 어렵고 힘든 일일 뿐

‘직장이 무슨 가치냐’고 치부해 버리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만큼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다. 반면 내가 선택한 직장에 가치를 부여하고 내 인생의 가치로 받아들이면 그 시간은 고스란히 내 인생이 된다.

조치훈 9단이 교통사고로 몸을 가누지 못할 상황에서도 깁스를 한 채 휠체어를 타고 대국장에 나타난 것은 그가 바둑에서 자기 삶의 가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그래 봤자 바둑”이라고 얘기하더라도 자신은 “그래도 바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가 매번 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걸 정도로 열과 성의를 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그에게 바둑은 자기 삶이고 자기 세상이고 자기 일이다. 누가 알아주고 인정해 주지 않아도 단지 자신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는 대국이 끝나면 탈진할 정도로 바둑에 열정을 쏟는 것이다.

물론 조치훈 기사가 바둑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과 똑같이 모든 직장인들이 직장 생활에 가치를 둬야 한다는 것은 조금 무리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직장이 아무리 자신의 의지만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도 직장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직장 생활은 어렵고 힘들고 지겨울 수밖에 없다.

세상에 누구의 간여도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만으로 결정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직장 생활은 내 의지와 무관한 것이어서 가치를 둘 수 없고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누가 뭐래도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다. 남이 강요한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최선이 아니더라도 차선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내린 자신의 결정이다.

많은 직장인들은 고된 업무와 상사나 동료의 비수 같은 말 때문에 힘들어 한다. 직장 생활에서 회의감을 느끼거나 한없이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낙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우리는 직장 생활을 적당히 할 수 없다. 조치훈 기사에게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 바둑이었다면 직장인들이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곳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이기 때문이다.

직장만이 가치를 추구하는 곳이라는 뜻이 아니다. 직장 생활에 가치를 부여해야 내 삶이 쌓일 수 있다는 얘기다. 조치훈 기사처럼 목숨을 걸지는 않더라도 직장 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자기 바둑을 후회 없이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