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타트업 '23앤드미', 질병 위험·조상 찾기 등 서비스

'유전자 분석' 단돈 99달러면 OK
인간의 체질적 특성은 외모가 유사한 쌍둥이더라도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동일한 조건에서도 특정 질병에 유달리 취약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정보를 기억하고 있는 세포 단위를 유전자라고 한다.

유전자의 존재는 이미 19세기부터 알려져 왔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여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됐음에도 불구하고 그간 유전자의 방대한 특성 중 일부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90년 생명체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는 게놈(Genome)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인간 유전자의 특징과 구조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유전자의 외형적 특징을 감식하고 판별하는 것은 이제 그다지 낯설지 않다. 유전자 감식은 범죄 현장에서 찾은 혈흔이나 머리카락에 포함돼 있는 유전자를 분석해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지문 채취 등 기존 방법에 비해 매우 정확하기 때문에 과학 수사의 중요한 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다.

◆신의 영역 도전하는 ‘유전자 분석 기술’

한편으로는 혈육을 확인하기 위해 유전자 감식을 이용하는 사례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전자의 선천적 기형이나 돌연변이 현상은 특정 질병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유전자를 정밀하게 분석한다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의 위험을 사전에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유전자 정밀 분석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게 됐다.

미국의 여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유전자 분석 결과 미래에 유방암이 발생할 확률이 90%에 육박한다는 결과가 나오자 암을 예방하기 위해 유방 절제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와 같은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유망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서비스로 인식됐다. 유전자의 특징을 분석해 질병 위험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천문학적으로 높은 비용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2011년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스티브 잡스는 췌장암 치료를 위한 유전자 분석을 위해 약 10만 달러나 지출하기도 했다. 이런 고비용 때문에 전문가들은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대중화되기 위해서는 보다 오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저변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의 발전으로 유전자 분석 비용이 크게 낮아졌고 소요 기간 역시 훨씬 단축됐기 때문이다.

게놈 프로젝트는 최종 완성까지 무려 15년이 걸렸고 비용도 30억 달러나 투입된 엄청난 프로젝트였지만 이제는 훨씬 낮은 비용만 지불하면 단 며칠 내에 유전자 분석을 통해 각종 질병의 위험을 편리하게 알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는 2015년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주노 테라퓨틱스·오바사이언스 등 유전자 분석 기술 기업들을 대거 선정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한 기업이 바로 유전자 분석기를 만드는 일루미나다.

1998년 설립된 일루미나는 유전자 분석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장비를 개발해 전 세계 유전자 분석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수많은 연구소 및 기업들이 대부분 일루미나의 기술과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유전자를 분석하는 데는 거의 수 만 달러에 육박했지만 2014년 개발된 일루미나의 신형 유전자 분석기 ‘하이세크 엑스텐(HiSeq X10)’은 유전자를 분석하는 비용을 1000달러까지 낮췄다.

의학계에서는 유전자 정보를 활용해 효과적으로 진단, 치료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 비용이 1000달러 이하로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이 때문에 일루미나의 기술은 본격적인 유전자 분석 기반 의료 시대를 실현했다는 찬사를 얻었다.

현재 일루미나는 7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바탕으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에 진출하는 등 사업을 다각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저렴해진 분석 비용…일루미나, 시장점유율 70%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유전자 분석 벤처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23앤드미(23andMe)’라는 벤처기업은 단 99달러에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알려지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의 부인이었던 앤 워짓스키가 창업한 23앤드미는 아주 적은 비용만으로도 각종 질병의 발병 위험과 특정 약품에 대한 부작용, 과거의 조상 찾기 등 풍부한 종류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2015년 미국식품의약국(FDA)도 23앤드미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허가했다. 원래 FDA는 2013년 23앤드미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신뢰성이 낮고 안전성을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중단시켰지만 방침을 바꿔 최종 승인했다.

이를 통해 23앤드미는 바이오 및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대중화를 촉진한 기업이라는 호평을 얻게 됐다.

한편 일루미나와 함께 MIT가 혁신 기업으로 선정한 벤처기업 카운실 역시 유전자 분석을 기반으로 신생아가 특정 질병에 걸릴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한국 역시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출시되면서 이를 찾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과거에 비해 부담이 적은 금액만으로도 유전자를 분석해 주요 질병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고 해당 질병에 걸리지 않기 위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향후에도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찾는 이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 분석' 단돈 99달러면 OK
◆시장 초기 단계…한국도 잠재력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단지 사람들의 질병을 예측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각종 신약을 개발하거나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환자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치료법을 적용하는 맞춤형 의료 수준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활용이 필수적이다.

유전자 분석을 사용해 적합한 약을 선택하거나 새로운 맞춤형 치료제 개발을 위해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활용하는 등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의학 수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조짐을 보이면서 선진국들은 정확한 유전자 분석 기술 및 시장 활성화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이 매년 20% 이상 고속 성장하고 있고 수많은 유전자 분석 서비스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맞춤형 의료 기술 개발에 2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 성장을 위한 전략 추진에 나섰다.

또한 중국 정부 역시 2012년 세계 최대 유전자 분석 기관인 베이징게놈연구소(BGI)가 유전자 분석 기술을 보유한 미국 컴플리트 게노믹스를 인수하도록 지원함으로써 향후 급성장할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영국 정부 역시 최근 유전적 질병 환자 10만 명의 혈액을 수집하고 여기에서 수집한 유전자를 분석해 맞춤형 치료 발전을 촉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한 난관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유전자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유전 정보를 보유하고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필수적이다.

오랜 연구·개발로 유전자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기술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온 반면 이러한 데이터를 다차원으로 분석해 질병 위험을 정확히 검출하는 기술은 아직 초기 수준이다.

따라서 유전자와 질병 간의 상관관계가 뚜렷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을 내릴 위험도 크다. 게다가 향후 유전자 해독 기술의 발전으로 산출되는 정보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슈퍼컴퓨터 이상의 데이터 처리 능력도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이제 막 초기 단계지만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특히 유전자 분석 서비스는 IT와 바이오 등 다양한 첨단 기술의 융·복합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에서 해당 분야에 강점을 가진 한국의 잠재 수준도 매우 높다는 분석이 많다.

그러므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의 원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원한다면 한국도 글로벌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을 것으로 전망된다.

< 전승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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