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 첨단 기술로 공급사슬망의 채찍 효과 줄이기…수요 예측으로 품질관리


[장영재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제품이 공장에서 만들어져 도매상과 소매상에게 전달되고 마지막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체 제조-유통-고객으로 전달되는 전 과정을 관리하는 것을 공급 사슬망 관리(SCM)라고 한다. 과거에는 제조·유통·소매를 별개의 단위로 관리했다면 공급 사슬망 관리는 제조-유통-고객으로 이어지는 상호 관계의 효율을 증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정보기술(IT)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접목한 혁신적인 첨단 공급 사슬망 관리 방식들이 선보이고 있다.
세계적인 커피 메이커 네스프레소가 사물인터넷에 집착하는 이유는?
네스프레소의 사물인터넷 전략
2014년 국제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방문했을 때 학회의 주선으로 바르셀로나 근교에 자리한 네스프레소 물류 창고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네스프레소는 글로벌 식료품 전문 기업인 네슬레의 커피 브랜드로 캡슐형 커피 메이커 분야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90% 이상으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아메리카노나 에스프레소와 같은 고급 커피 음료 시장이 커지며 이러한 고급 커피를 가정에서 쉽게 마실 수 있도록 개발된 것이 캡슐형 커피 메이커다. 커피를 갈아 거르고 고압의 에스프레소 기계에 커피액을 추출하는 번거로움 없이 취향에 맞는 캡슐을 구매해 쉽게 캡슐만 전용 커피 머신에 넣으면 집에서도 고급 커피를 맛 볼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가정용 커피 머신뿐만 아니라 카페나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업용 캡슐과 커피 머신도 제공하고 있다.

당시 방문한 물류 창고는 다양한 네스프레소 캡슐 제품을 보관, 스페인 전역의 소매점에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견학을 하며 필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네스프레소의 IoT 전략이었다.

커피 머신에 인터넷 서버를 장착해 커피 머신을 인터넷과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과 연결할 수 있는 IoT 네스프레소 커피 머신 가격과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제품의 가격을 거의 비슷하게 책정해 마진을 덜 남기더라도 고객이 IoT 제품을 적극적으로 구매하게 한다는 매우 적극적인 미래 전략도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과 연결된 기기라고 생각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혹은 인터넷 TV 정도를 떠올릴 수 있는데 왜 커피 머신을 인터넷에 연결하려고 할까.


심지어 마진을 낮추면서까지 인터넷과 연결된 커피 머신을 판매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명목상으로는 커피 머신이 인터넷에 연결돼 잘 작동하는지, 문제가 없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해 제품을 효과적으로 애프터서비스한다는 개념이다. 필터나 교체품의 주기도 파악해 인터넷으로 자동으로 주문할 수 있는 옵션도 제공한다. 하지만 애프터서비스만이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바로 첨단 기술을 통해 공급 사슬망의 효율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이 있다.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된 후 제품이 도매와 소매 등의 유통망을 거쳐 판매된 후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을 공급 사슬망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달 과정을 관리해 효율적으로 고객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제품을 전달하는 것을 공급 사슬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간략하게 SCM이라고 한다.

왜 공급 사슬망 관리가 중요할까. 소매점에서 고객이 물건을 찾으면 도매점이나 본사에 연락해 제품을 더 많이 받으면 되고 공장에서는 도매점이나 소매점에서 요청하면 생산해 전달하면 되지 특별히 관리해야 할 게 무엇일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단순하지만은 않다.
생활용품 업체인 P&G는 아기 기저귀의 변동 폭이 소매-도매-공장으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기 기저귀와 같은 제품은 연간 수요가 어느 정도 일정한데 소비자 수요가 조금만 늘어도 소매점들은 도매점에 하는 요청량이 크게 늘어나고 도매점이 공장에 주문하는 양은 이보다 더 크게 늘어나는 현상을 발견했다.


소매→도매→공장으로, 물건이 만들어지는 반대 방향으로 진행할수록 변동의 폭이 커지는 것을 채찍 효과(bullwip effect)라고 한다. 채찍을 손잡이 부분에서 작게 흔들어도 채찍 끝 부분의 변동량은 매우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러한 채찍 효과의 가장 큰 원인은 수요의 왜곡이다. 고객들이 특정 제품을 선호한다고 생각하면 소매점들은 경쟁적으로 제품을 도매점이나 공장에 주문하게 된다. 어떤 인기 상품을 소매점에서 다음 주에 20개 정도 팔 수 있다 예상해도 20개만 주문할 경우 본사나 공장에 충분한 재고가 없다면 원하는 만큼 제품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예상보다 더 많은 제품을 주문하게 된다. 즉 30개는 주문해야 20개라도 받을 수 있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 수요보다 더 많은 수요를 경쟁적으로 주문하는 것을 유령 주문 혹은 팬텀 오더(phantom order)라고 한다. 문제는 모든 매장에서 경쟁적으로 팬텀 오더를 하다 보면 공급 사슬망 끝단인 공장에서는 엄청난 수요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만일 이러한 상황에서 공장에서 실제 수요보다 훨씬 더 많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원자재를 구매하고 실제 생산에 들어갔다면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았지만 왜곡된 수요로 만들어진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 이러한 재고는 전체 유통망에 잔존하게 된다.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이 만들어지고 결국 도매·소매 생산자 모두 재고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 다른 팬텀 오더의 원인은 도매가 소매에 얼마나 많은 양을 주문했는지 그리고 실제 공장에서는 현재 얼마나 생산해 재고가 있는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만일 특정 제품이 인기가 있어 공장에서도 도매나 소매로부터 주문이 들어오기 전 여유 있게 제품을 생산해 재고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매점들이 안다면 이러한 유령 주문은 줄어들 수 있다.
세계적인 커피 메이커 네스프레소가 사물인터넷에 집착하는 이유는?
비어 게임으로 확인한 채찍 효과 줄이기
실제 이러한 현상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에서 개발돼 널리 알려진 맥주 게임, 혹은 비어 게임(beer game)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4명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한 팀을 이뤄 각각 매주 유통에서의 소비자·소매점·도매점·공장 역할을 담당해 보드게임으로 맥주 유통망을 운영하는 게임이다.

실제 카이스트 학생들이 수업에서 비어 게임을 진행해 왔다. 여기에서 소비자는 매장에, 매장은 소매점에 1주일에 한 번 맥주를 주문하게 된다. 이러한 소매점의 수요는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수만큼 결정된다. 즉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것이 1주일을 의미하게 된다. 소매점은 만일 제품이 충분히 재고로 있으면 판매해 이윤을 남기게 되고 제품이 충분히 없으면 판매 기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소매점은 충분한 재고가 없다고 판단하면 도매점에 재고를 주문하게 된다. 문제는 재고를 주문하자마자 즉시 도매에서 소매로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1주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진행된다. 소매에서 도매로 물건을 주문하고 이윤을 내는 방식과 도매에서 공장으로 물건을 주문하고 이윤을 내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각 주차별로 매장은 주사위를 던져 수요를 결정하고 매 주차마다 주문을 받고 또 지난주 주문량만큼 공장은 도매점에, 도매점은 소매점에 지난주 주문량을 전달하면 한 주가 완료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20주에서 30주 정도 진행한다.

보통 두 세트로 게임이 진행되는데 첫 세트에서는 서로가 얼마나 많은 재고를 주문했는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하고 둘째 주에서는 이 정보를 함께 공유하면서 진행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서로 주문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진행되면 채찍 효과와 같이 재고량이 물류 이동 반대로 갈수록 더욱 크게 증가하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소매에서 도매로 이미 많은 양을 주문했는데 도매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자체적으로 또 더 많은 양을 주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로 주문한 양을 공유하면 전체 공급 사슬에서 실제 주문된 양이 얼마인지를 파악해 이를 고려해 주문하므로 채찍 효과가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왜 네스프레소는 IoT에 집착할까. 바로 실제 고객의 소비량을 제조 단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다. 네스프레소가 커피 머신을 판매해 남기는 마진은 거의 없다. 실제 매출은 커피 머신에 필요한 커피 캡슐 판매다. 마치 특정 프린터를 구매하면 그 프린터에 맞는 카트리지를 지속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것과 같이 고객이 네스프레소의 커피 머신을 구매하면 지속적으로 네스프레소 캡슐을 구매해야 한다. 그런데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또한 캡슐의 유통기간이 길어질수록 커피 맛이 변한다. 즉 네스프레소에서는 적절한 수요만큼 적절한 양을 제조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 제품 품질의 핵심이다.

문제는 소매-도매로 이어지는 유통망에서 실제 수요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도매상이 대량으로 본사에 주문하는 것이 실제 수요 때문인지 단지 재고를 쌓아두고 선점하겠다는 전략인지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도매점이나 소매점에 실제 매출과 재고 정보를 요청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정보는 기업 내부 영업 자료로 요청하는 게 쉽지 않다. 물론 최근 SCM의 중요성이 증대되면서 서로의 공생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미국 최대 전자 제품 유통망인 베스트바이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 매달 판매 정보를 제공해 실제 수요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도매나 소매점들 간 경쟁이 심하거나 특정 인기 제품은 정보 공유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IoT로 해결할 수 있다. 네스프레소 IoT 커피 머신은 고객이 어떤 제품을 사용하는지 센서를 통해 파악하고 이 정보는 바로 네스프레소에 전송된다. 도매와 소매에서 판매 정보만으로 실제 수요를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얼마나 생산할지 그리고 재고를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 현재 네스프레소는 이러한 IoT 전략을 가전용이 아닌 상업용 커피 머신에 제한적으로 시도 중이다.

전 세계 프린터 시장을 수십 년째 선점하고 있는 휼렛팩커드(HP)도 비슷한 전략을 이미 취하고 있다. IoT란 간판만 달지 않았을 뿐 HP는 ‘HP 인스턴트 잉크(Instant Ink)’, 직역하면 ‘즉시 잉크’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이 원하면 잉크젯 프린터의 잉크가 다 소진되기 전에 잉크를 배송하는 서비스를 실행 중이다.

과거 공급 사슬망에서 채찍 효과가 발생하는 핵심적인 요인은 정보의 불확실성이었다. 정확한 고객 수요 정보를 파악할 수 없다는 가정 아래 수요를 어떻게 예측하는지, 혹은 최적의 재고를 어떻게 산출하는지 그리고 SCM 관리 조직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등의 이론이 등장하게 됐다. 하지만 이제는 발전된 IT 기기를 통해 좀 더 정확한 실제 정보 파악이 가능한 시대로 접근하고 있다. 이제 실제 수요를 예측하는 방향보다 넘쳐나는 정보를 기반으로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 판단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4호(2019.09.30 ~ 2019.10.0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