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부터 개방적 가업 승계, 벤처보다 폐쇄성 덜해

올해 창업 140주년을 맞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올해 창업 140주년을 맞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장수 기업의 숫자와 규모는 일본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창업 100년을 넘긴 일본의 장수 기업, 이른바 ‘노포(老鋪) 기업’은 그 숫자만 2만 개를 웃돈다. 상위 10개국 모두를 다 합쳐도 1위인 일본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본에서 70주년 등 특별한 분기점에 달한 기업은 무려 13만5292개나 된다. 이 중 383개가 상장 기업이다(제국데이터뱅크).

노포 기업에 대한 조명과 주목은 단순한 전통 사랑, 자부심 그 이상이다. 가령 주간동양경제 최근호에서는 취업 유망 후보 회사로 노포 기업을 지목했다. 장수 기업의 존속 기반을 확인함으로써 후속 세대에 직장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건실한 사업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노포 기업의 승계 곤란이 확산되는 것도 감안했다.

100년을 넘긴 기업 중 2016년이 기념 해인 곳의 선두 주자는 창업 450주년의 니시가와산업이다. 침구류 전반을 커버하는 도매 업체로, 2015년 3월 기준 344억 엔의 매출을 기록했다. 전국 백화점을 비롯해 전문점 등에서 판매되며 직원은 약 1000명이다. 회사는 전국시대였던 1566년 창업한 업계의 유명한 터줏대감이다.

원래는 19세 창업자가 구멍가게에서 모기장·활을 팔며 대를 이었지만 1887년 이불을 판매 아이템에 추가한 게 주력 사업이 됐다. 현재는 그룹사로 6개의 자회사가 있다. 다각화로 건강 기기, 보석·귀금속, 실내장식, 건설공사, 섬유 수출 등을 커버한다.

의식주·소재 분야 기업이 대다수

뒤이어 히게타장유는 1616년 창업, 올해 400주년을 맞이한 간장 제조사다. 교토에서 창업했지만 곧 도쿄로 옮김으로써 전국구 사업 체계를 갖췄다. 수도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간장 제조 메이커다. 2015년 3월 기준 206억 엔의 매출을 올렸고 국내외 30개의 관련 회사를 보유했다.
의식주와 함께 장수 기업 사업 모델 중 빠지지 않는 게 소재다. 이 분야에서 올해 350년 역사를 맞은 장수 기업은 유아사상사다. 1666년 개업한 소재 관련 특화 회사로 4417억 엔(2015년) 매출에 75억 엔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이 밖에 올해가 기념해야 할 특별한 연도인 회사는 많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과 삿포로맥주가 2016년 140주년에 이름을 올린 명문 장수 기업이다. 1876년 창업했으니 30년을 1세대로 치면 무려 5세대에 걸쳐 살아남았다. 창업 100년이 장수 기업을 가르는 기준이고 노포 기업의 절대 다수가 중소기업이란 점에서 이들 거대 기업의 장기 생존은 남다른 특별함을 갖는다. 산케이신문도 최근 장기 생존에 성공한 거대 기업 중 2016년이 남다른 기념 해인 몇몇 기업을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2016년 이들 기업을 통해 장수 조건을 찾아본 것이다.

‘외침 없는 섬나라’, 사업 지속에 한몫

그렇다면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 기업을 가지게 된 배경은 뭘까. 먼저 장수 기업을 매년 분석·발표하는 도쿄상공리서치(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노포 기업 90%는 중소기업이다. 소유·지배 구조로 봤을 때는 창업자 일족 경영(Family Business)이 기업 수로는 95%, 고용 측면에서는 70%를 차지한다. 일족 경영이 업적 측면에서 일반 기업보다 낫다는 연구 결과 때문에 최근 구미 선진국에서도 가족 경영의 기법 연구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문제도 많다. 후계자 선정 기준부터 혈족 분쟁, 연고주의, 인사 적폐, 감시 결여, 사유화(공사 혼동) 등이 그렇다. 다만 장기 업력을 가진 노포 기업은 대부분이 이를 극복해 내면서 가족 경영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했다. 즉 장기 관점에서 건전 경영, 인재 육성, 제품 개발, 시장 개척 등에서 단결과 인내를 발휘했다. 양보다 질을 중시하면서 자사 브랜드의 파워를 지켜 내는 경영 방침도 고수했다.

또 다른 노포 기업의 특징은 직원과 고객의 동시 중시다. 안으로는 직원을 가족처럼 챙기되 밖으로는 사회 공헌, 고객 신뢰 및 사회 자본화에 성공했다. 경영 이념은 가훈·사시로 문서화돼 있지는 않아도 후계 전승과 일상 경영을 통해 실천했다. 특히 직원은 권한 이양과 동기부여가 공통적이다.

이 밖의 분석도 많다. 학계를 비롯해 많은 분석가들이 장수 기업의 출현 배경을 분석해 왔는데,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결과가 도출된다. 우선 안정 기반이다. 주지하듯이 일본은 극동의 섬 국가다. 외부 침략은 물론 도쿠가와 막부부터는 전쟁 경험도 거의 없다. 전란이 계속된 불안정한 국가에서는 사업 지속과 시장 창출이 곤란하다.

국민성도 관련이 있는데, 요컨대 장기 지속성에 대한 선호다. 회사·가업을 승계해 대를 이어 고객 관계를 중시하는 가치관이 뿌리 깊다. 무엇보다 집중력의 장인 정신을 둘러싼 사회적인 존경심을 뺄 수 없다. 정치권력이 장인과 제조업을 중시한 것도 장수 기업의 절반 이상인 제조업의 비교 우위로 거론된다.

일본적인 가족 경영과 종신고용·연공서열이 장수 기업의 탄생 근간이라는 분석도 있다. 실제 창업 200년 이상의 장수 기업만 3000개가 웃도는데, 이는 끈끈한 가족 경영의 원리 실현 없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진다. 일본적인 기업 형태가 노포 기업을 지켜내는 근본적인 힘이 됐다는 의미다.

한계를 넘어서는 무기는 개방적인 가업 승계다. 누구든지 능력·의지만 확인되면 승계 후보에 오르는 기업 문화가 그렇다. 단순한 혈연 고집은 없다. 일족 경영도 적지 않지만 한편에선 대개 3대째부터 양자 승계를 허용해 장수 DNA의 외연을 넓히는 선택이 일반적이다. ‘노포 토대를 쌓는 건 3대째 부터의 양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앞서 장수 기업의 생존 전략에 주목한 주간동양경제는 노포 기업의 폐쇄적 이미지가 벤처보다 덜할 것이란 분석 결과도 내놓았다. 오너의 압도적인 정보 독점과 권력 사용은 비상장의 벤처보다 상장의 노포 쪽이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다수 연구를 취합한 결과 추출되는 장수 기업의 공통적인 특징은 사실상 장기 경험과 지혜 축적으로 요약된다. 여기에 급속한 세계화와 경제 부침 속에서 과거의 성공 사례에 함몰되지 않고 급변하는 경영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한 것도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능력 초월의 과욕을 경계하고 본업 위주로 판을 유지하되 늘 분수를 지키는 사업 결정도 존속 토대가 됐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특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