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시의 긴급조치에 여론 우호적…파리 등 다른 도시도 골머리
‘최악 스모그’에 통행금지·2부제 초강수
‘스모그 도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럽 각국이 일상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올겨울 최악의 스모그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탈리아는 ‘스모그와의 전쟁’을 선언한 모양새다.

이탈리아 북부 도시 밀라노는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사흘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민간 차량의 도심 통행을 전면 금지했다. 대기오염 수치가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법으로 오염 물질 농도가 1㎥당 50마이크로그램(㎍)을 넘는 날이 1년에 35일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밀라노는 2015년 86일(이탈리아 환경단체 레감비엔테 자료, 12월 26일 기준)을 넘어섰다. 특히 12월 26일 대기오염 수치는 기준치의 두 배에 육박하는 97㎍을 기록했다. 밀라노의 교통 체증과 강우량 부족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이번 차량 통제 기간 동안 밀라노 당국은 200명의 경찰을 곳곳에 배치, 자동차·오토바이·스쿠터의 도로 진입을 엄격히 막았고 이를 어긴 운전자에게는 163~658유로(21만~86만원)의 높은 벌금을 부과한 것으로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가 전했다.

이탈리아 도시들, 베이징 닮아간다?

이 같은 강경책의 효과로 연말 밀라노의 도심은 차 없는 거리로 변신했다. 시민 대부분은 자가용 대신 자전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해야 했지만 불편을 호소하기보다 당국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이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영국 BBC의 보도에 따르면 밀라노는 2008년 유럽에서 가장 오염된 도시로 평가됐고 2007년부터 차량 통행금지 등의 조치를 몇 차례 시도한 바 있다.

밀라노의 이 같은 정책에 대해 이탈리아 제1 야당인 오성운동의 베페 그릴로 당수는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이 대기오염으로 숨지는데 총리와 장관들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며 비난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스모그는 이탈리아 도시들을 점점 더 중국 베이징과 비슷하게 만들고 있다”며 “산소를 공급하는 나무 573그루를 없앤 밀라노가 이제 와서 차량을 통제해 봐야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밀라노와 함께 수도 로마에서도 지난해 12월 28일과 29일 이틀간 차량 홀짝제를 시행하며 오염 물질 줄이기에 나섰다. 12월 31일에서 1월 1일 사이에 전통적으로 시행되는 새해맞이 불꽃 축제를 취소한 도시들도 많았다.

한편 제노바에서는 올 초부터 스쿠터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지만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정책이 연기됐다. 마르코 도리아 제노바 시장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2월부터 오전 7시~오후 7시 사이에 1999년 이전에 제조된 스쿠터인 베스파의 도심 운행을 금지하기로 지난해 12월 결정했다.

하지만 제노바는 베스파가 처음 만들어진 지역으로, 특히 올해는 베스파가 탄생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스쿠터 금지 조치에 대한 이용자들의 저항감이 상당했다.

베스파 이용자들은 ‘베스파, 제노바에서 태어나 제노바에서 죽다’ 등의 메시지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에 올리며 시의 결정에 적극 항의했다. 당국은 2만 명에 달하는 스쿠터 이용자들이 대체 이동 수단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 위해 해당 정책의 시행을 4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자발적 조치 한계, 강제 규제 나서야”

또한 나폴리 인근의 소도시인 산 비탈리아노는 나무나 석유를 태워 피자를 굽는 화덕 사용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3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피자집과 빵집 등에서 특수 공기 정화용 필터를 사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이 마을의 대기오염 위험일은 114일로, 이는 대도시들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대기오염에 대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지 못한 시 당국은 일단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피자 가게 운영자들은 피자집이 대기오염의 원인일 리 없다며 시의 결정에 항의하기도 했다.

독일의 대표적 자동차 도시인 슈투트가르트도 최근 시민들에게 승용차를 이용한 출퇴근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벤츠와 포르쉐의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자동차 공업의 성지이지만 동시에 독일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로 꼽히기도 한다.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영향으로 오염 물질들이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의 질이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나빠지면서 슈투트가르트에는 독일 대도시 최초로 오염 경보가 내려졌다. 지난 1월 19일 이 도시의 미세먼지 농도는 유럽연합(EU)의 안전 기준보다 두 배 이상 높아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미세먼지는 발암물질로 분류돼 있는 만큼 건강에 상당한 악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친환경 성향의 녹색당 출신인 프리츠 쿤 슈투트가르트 시장은 출퇴근할 때 카풀을 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만약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2018년부터 자가용 이용 금지를 강제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 시민들과 환경 운동가들은 현재 도시의 오염 상태가 심각한 만큼 자발적인 조치보다 강제적인 규제가 즉각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환경보호 단체 도이체 움벨트힐페의 대표는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슈투트가르트의 대기오염 상태는 지난 10년간 독일 내에서 최악이었다”며 주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제외하고는 도시 내에서 디젤 차량의 운행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럽 국가들의 노력은 계속 진행 중이다. 프랑스 파리는 2014년 미세먼지 농도를 낮추기 위해 차량 2부제를 시행했고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시는 2001년 이전에 제조된 디젤 자동차의 운행을 금지하고 있다.

시 당국은 이를 어기면 운전자에게 90유로(12만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암스테르담 시장은 올해 2분기부터 도심의 교통 혼잡을 유발하는 맥주 자전거(자전거를 타면서 맥주를 마시는 인기 관광 상품)의 운행도 일부 구간 금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헤이그(네덜란드)=김민주 객원기자 vitamjk@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