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
경찰, 조준 사격에 살상용 로봇 투입으로 맞대응

[워싱턴(미국)=박수진 한국경제 특파원] 미국에서 7월 5일과 6일 발생한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 사건 이후 흑백 갈등에 따른 경찰과 시위대 간 충돌이 내전(內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7월 7일 백인 경찰을 겨냥한 매복 조준 사격으로 경찰 5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 미국 곳곳에서는 경찰을 향한 총격 사건이 이어지고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점차 과격해지고 있다. 경찰은 7월 9일 이후 시위대 300여 명을 체포했다. 미국 사회에 잠재돼 있던 인종 갈등의 불씨가 폭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다.

일각에서는 1919년 인종 갈등 충돌로 38명이 사망한 ‘붉은 여름’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전역 참전 군인, 경찰 조준 사격

사태는 7월 5일과 6일 두 명의 흑인이 경찰에게 사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나면서 시작됐다. 루이지애나 주 배턴 루지시에서 7월 5일 CD를 팔던 흑인 앨턴 스털링(37)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관 2명에게 제압되는 과정에서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이튿날 미네소타 주 세인트앤서니시에서도 필랜도 캐스틸(32)이라는 흑인이 차를 타고 가던 중 검문을 받는 과정에서 경찰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스털링과 캐스틸은 경찰의 체포와 검문 과정에서 저항하거나 공격할 의도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죽는 모습이 휴대전화로 촬영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동영상이 올라가면서 급속히 확산됐다.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시위는 텍사스 주 댈러스시에서 경찰을 향한 매복 조준 사격 사건이 7월 7일 발생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번졌다.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 출신인 마이카 제이비어 존슨(25)이 이날 시위대를 통제하고 있던 경찰을 향해 총격을 가해 경찰 5명이 죽고 7명이 다쳤다. 민간인 2명도 다쳤다. 그는 경찰이 투입한 로봇에 의해 피폭, 사살됐다. 존슨은 경찰과의 대치 상태에서 “최근 흑인 사살 사건에 분개했다. 백인을, 특히 백인 경찰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격화되는 미국 인종 충돌’ 1919년의 ‘붉은 여름’ 재현되나
◆로봇 사용 놓고 윤리 논쟁도

댈러스 경찰 피격 사건 이후 경찰의 과잉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대와 이를 통제하는 경찰 간의 충돌이 점차 격화되고 있다. 시위대는 도로 점거를 감행했고 경찰은 강경 진압 쪽으로 선회했다.

7월 9일부터 11일까지 뉴욕·시카고·세인트폴(미네소타)·배턴루지(루이지애나) 등 미 전역에서 시위가 들불처럼 일어났고 경찰은 최소 300여 명을 체포했다. 경찰을 향한, 경찰이 행한 총격도 이어지고 있다.

미시간 주에는 법원에서 죄수가 총을 탈취해 호송 중인 2명의 경찰관을 사살했다. 범인도 경찰과의 대치 과정에서 총을 맞고 사망했다. 일리노이 주 이스트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자택에서 지나가던 차에 총격을 가하던 남성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 끝에 총상을 입고 체포됐다.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7월 10일 총을 내려놓으라는 명령에 불복한 한 남성에게 경찰이 12발을 발사했다. 이 남성은 엉덩이에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경찰은 페이스북을 통해 백인 경찰관을 살해하겠다고 주장한 4명의 남성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흑인의 생명이 소중해질 때까지는 누구의 목숨도 소중하지 않다. 모든 백인 경찰을 죽여라”거나 “(댈러스의 저격범이) 정확하게 똑같은 일을 하도록 우리를 고무하고 있다”고 경찰을 향한 총격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 혐의다.

레드릭 C. 해리스 컬럼비아대 흑인정책사회연구소 국장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은 잠재됐던 인종 갈등이 끓어오르는 시점에 와 있다”며 “또 다른 ‘붉은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붉은 여름은 1919년 발생한 미국 사상 최악의 흑백 충돌 사건이다. 시카고에서 시작된 갈등이 미국 25개 도시로 번지면서 흑인 23명과 백인 15명이 사망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백인 경찰의 흑인 사살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2014년 퍼거슨 사태, 지난해 볼티모어 폭동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도했다. 2014년 7월 뉴욕에서 에릭 가너가 백인 경찰에 목 졸려 죽고 한 달 뒤 미주리 주 퍼거슨에서 당시 18세인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관의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항의 시위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한편 미 댈러스 경찰이 7월 7일 로봇을 투입해 경찰 저격범을 사살한 것을 놓고 윤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은 해외 전쟁터에서 로봇을 전투에 투입하고 있지만 미국 내에서 로봇을 살상용으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댈러스 경찰은 이날 저격범 마이카 제이비어 존슨(25)의 투항을 종용했지만 협상에 실패하자 폭탄 로봇(노스롭그루먼 리모텍의 앤드로스 F6 시리즈 마크봇)을 투입했다. 로봇은 폭발물을 싣고 용의자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고 경찰은 원격조종 장치로 폭발물을 터뜨려 용의자를 사살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앞으로 경찰 진압 과정에서 로봇이 상용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용의자에게 위협이 제기되지 않는데도 로봇이 사용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