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뜯어보기

보건복지부·기금운용위·기금운용본부…'옥상옥' 구조에 인력 이탈까지

국내 주식에만 무려 106조원, 해외에선 86조원…. 총 561조원의 연기금을 굴리는 거대 공룡이 있다. 바로 당신의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이다.

연평균 누적 수익금 260조원, 연평균 누적 수익률 5.4%. 2022년엔 덩치가 1000조원까지 불어날 전망이다. 국민연금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들여다봤다.
자본시장 '큰 손', 국민연금 움직이는 사람들
◆옥상옥 구조에 독립성·전문성 논란

“집 위에 또 집이다.” 국민연금 기금의 의사결정 체계를 보고 흔히 하는 말이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업을 관장하되 그에 따른 업무는 투자 전문가로 이뤄진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가 수행한다. 이 기금의 운용 계획을 비롯해 성과 평가 등의 주요 사안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심의·의결한다.

또 보건복지부에는 연금정책국 연금재정과가 있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사무국 역할을 수행한다.

이뿐일까.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아래에는 국민연금기금실무평가위원회를 비롯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성과평가보상전문위원회·투자정책전문위원회 등 다양한 종류의 위원회가 있다.

이런 복잡한 구조로 인해 국민연금은 기금 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①기금운용본부
‘자본시장 대통령’의 허와 실


자본시장 '큰 손', 국민연금 움직이는 사람들
복잡한 구조의 첫 관문은 전문 인력으로 구성된 국민연금공단 산하 기금운용본부다. 금융시장 분석, 포트폴리오 관리, 투자 상품 매매, 위험관리 등 기금의 전문적인 관리와 운용을 위해 1999년 출범했다.

본부의 기금이사인 기금운용본부장(CIO)은 600조원에 가까운 자금 운용을 책임지는 인물로 업계에선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 불린다.

하지만 역대 본부장과 관련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의 외압으로 운용에만 전념할 수 없는 자리라고 평가절하한다.

실제로 1999년 기금운용본부가 출범한 이후 7명의 본부장이 이 자리를 거쳤지만 2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사람은 손에 꼽는다.

2대 조국준 전 본부장은 “투자 결정권이 없다”며 사의를 표했다가 반려 당한 적이 있고 3대 오성근 전 본부장은 정권 교체에 따른 사퇴 압력으로 중도에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6대 홍완선 전 본부장은 최광 국민연금공단 전 이사장과 인사 갈등 끝에 동반 사퇴했다.

지난해 2월 그의 후임으로 7대 본부장에 오른 이는 강면욱 메리츠자산운용 전 대표이사다. 강 본부장의 임기는 내년 2월까지이지만 업계에선 오는 5월 정권 교체로 낙관할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다.

문제는 또 있다. 본부가 올 2월 전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전문 인력의 이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해 퇴직자는 30명으로 전년 대비 3배 증가했고 올 들어 퇴직하거나 퇴사 의사를 밝힌 직원도 20명 정도로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해외 파트 실장급 인력이 이탈해 조직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공단은 지난 3월 기금운용역을 충원하고 보수 수준을 인상하는 등 인력 이탈 방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②기금운용위원회
대표성 강화했지만 전문성은 부족


기금운용본부의 운용 계획 등은 보건복지부 산하 실무평가위원회와 기금운용위원회에 보고된다. 이 중 최고 의사결정기구는 기금운용위원회다.

기금 운용 지침과 연도별 운용 계획, 운용 결과 평가 등 기금 운용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곳이다.

위원장(보건복지부 장관)과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 차관 등 정부 인사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당연직 위원 5명과 노동자 대표, 지역 가입자 대표, 사용자 대표 등으로 이뤄진 위촉위원 14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14인에는 보건사회연구원장과 한국개발연구원장을 비롯해 △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전국경제인연합회 추천 각 1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동조합총연맹·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추천 각 1인 △농어업인 단체인 농협중앙회·수협중앙회 추천 각 1인 △한국공인회계사회 등 자영업자 관련 단체 2곳 추천 각 1인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바른사회시민회의 추천 각 1인이 포함됐다.

이렇다 보니 전문성을 갖춘 인사들로 기금운용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지금의 위원회는 ‘대표성’이 강조된 조직으로 재정 목표를 설정하거나 기금 운용의 목표를 제시하기에는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지적이다.

③보건복지부
옥상옥의 정점…‘정치 입김’ 변수


옥상옥의 정점은 보건복지부다. 국민연금법에 따르면 ‘기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관리·운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겸임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금 운용이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우찬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이는 바로 보건복지부가 기금 운용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구조 때문”이라며 “정부나 정부를 장악한 집권 세력이 영향을 미쳐 기금 운용을 왜곡할 수 있는 구조라는 점에서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현재의 옥상옥 구조를 탈피하기 위해선 보건복지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기금 운용 조직을 공단으로부터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보건복지부 장관은 기금 운용에 간접적으로만 영향력을 행사하고 운용 조직으로 국민연금기금운용공사를 신설해 공사의 사장이 최고집행위원이자 기금이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경비즈니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