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에 대한 다섯가지 오해

얼마 전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의 자매 연구소인 퇴직연금연구소가 주최하는 한 강연회에 참석했다. 연사는 일본경제신문의 다마키 다다기 편집위원이 맡았고 강의 제목은 ‘일본의 고령사회를 생각한다’였다. 다마키 편집위원은 일본경제신문의 서울특파원과 샌프란시스코 특파원을 역임한 국제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기자다.

알려진 것처럼 일본은 현재 노인 인구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다. 필자는 여러 나라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노련한 경제 기자가 보는 고령사회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우리가 앞으로의 삶을 어떤 프레임(frame)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다마키 편집위원은 고령사회의 현실에 대한 기존 관념을 버릴 것을 주문했다. 다마키 편집위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령사회에 대한 가설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가설 1. 고령자는 빈곤하다.
가설 2. 고령자는 병약하다.
가설 3. 그러므로 가족의 부담이 크다.
가설 4. 고령자는 무료하다. 희망이 없다.
가설 5. 고령자는 지방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과연 현실은 어떨까. 일본의 경험을 통해 가설의 타당성을 검증해 보자. 먼저 ‘가설 1 고령자는 빈곤하다.’ 일본의 경우 60세 이상 고령층이 금융회사에 맡겨 놓은 돈의 70%를 소유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오히려 젊은층이 가난하고 노년층은 부유하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는 3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에 걸쳐 있는 소위 베이비 붐 세대(1955년생부터 1974년생까지)가 금융회사에 맡겨 놓은 돈의 60%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조로 10~20년 지나면 한국도 일본과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될 것이다.

건강하고 부유하고 적극적인 고령자
<YONHAP PHOTO-1169> 따라 해봐요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10일 광주 남구 노대동 광주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열린 `제1회 빛고을노인복지재단 부부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한 한 부부모델 후보가 러브 모양을 만들자 옆에 서 있던 부부모델이 멋쩍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선발된 부부모델은 홍보 영상과 인쇄물, 각종 광고모델 등을 통해 노인건강타운을 알리게 된다. 2010.8.10

    minu21@yna.co.kr/2010-08-10 14:56:55/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따라 해봐요 (광주=연합뉴스) 형민우 기자 = 10일 광주 남구 노대동 광주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열린 `제1회 빛고을노인복지재단 부부 시니어 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한 한 부부모델 후보가 러브 모양을 만들자 옆에 서 있던 부부모델이 멋쩍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만 6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선발된 부부모델은 홍보 영상과 인쇄물, 각종 광고모델 등을 통해 노인건강타운을 알리게 된다. 2010.8.10 minu21@yna.co.kr/2010-08-10 14:56:55/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일본과 달라지기 위해서는 지금 사회에 진출하는 20대와 30대 초반의 젊은층이 부(富)를 축적해야 하는데, 지금의 상황으로 봐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젊은층의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전락하고 있고 그들의 선배 세대들이 자산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이런 왜곡된 현상을 막는 방법은 새로운 엘리트가 출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보기술(IT) 및 인터넷 열풍이 불면서 새로운 엘리트가 등장하고 부를 쌓아 올렸듯이 말이다.

만일 이런 계기가 없다면 10~20년 뒤에는 일본과 흡사한 구조를 밟아 나갈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그렇지만 개개인 차원으로 좁혀 봐도 고령자들은 빈곤하지 않다. 다마키 편집위원은 “65세 이상이 보유한 평균 금융자산은 2400만 엔 정도다. 반면 전체 세대 평균은 1800만 엔”이라며 “고령자가 더 많은 자산을 갖고 있다”고 얘기한다.

‘가설 2 고령자는 병약하다.’ 이 또한 잘못된 가설이라는 게 다마키 편집위원의 주장이다. 일본은 후기 고령층으로 분류되는 75세에서 84세 노인들 중 간호 지원이 필요한 사람은 20%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 80%의 노인들은 스스로 몸을 움직이며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설 1과 가설 2가 오류로 판명됐으니 당연히 ‘가설 3 가족의 부담이 크다’도 잘못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가설 4 고령자는 무료하다. 희망이 없다.’ 물론 무료하게 보내고 희망이 없는 노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노인들은 적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 과거 멋진 은퇴의 그림은 젊어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60세나 65세가 되는 시점에는 미국의 플로리다처럼 따뜻한 남쪽 나라에 가서 여유 있는 노년을 보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노인들의 사회적 활동이 확대되면서 이젠 적극적인 활동가로서의 노인의 삶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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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노인들을 파트타임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일본에선 택시 운전사, 골프장 캐디, 식당 점원,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의 허드렛일 등에 노인들의 참여가 두드러지고 있다.

다마키 편집위원은 “노인들이 일하는 것은 건강이나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고용주들이 노인들을 고용하는데 거부감이 크게 줄어들어든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말한다. 즉,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 적극적으로 일하는 노인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가설 5 고령자는 지방으로 돌아간다’도 잘못된 가설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수의 노인들이 살고 싶은 지역은 지방이 아닌 도시 중심부다. 나이가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함께 살다가 떠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다마키 편집위원은 “편리성도 편리성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병원 때문”이라고 답했다.

도쿄도 중심부와 주변부의 큰 가격차 ‘주목’

일본에선 고령화가 진척될수록 도시로 이동하고 싶어 하는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교외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도쿄도 중심부와 주변부의 가격 차이가 많이 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단계는 아니지만 일본의 경험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한국의 신도시 정책은 사실 일본의 것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도시의 중산층은 도시가 확대되는 것에 발맞춰 쾌적한 교외의 신도시로 이주했다. 정부의 주택정책도 도시 주변에 신도시를 건설해 인구를 분산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령 인구가 많아지고 인구가 줄어들면서 도시의 확장세는 멈추고 다시 도시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이 부각되고 있다.

고령화 얘기가 나오면 대부분 은퇴나 퇴직 이후의 삶과 연결시키곤 한다. 이것들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한다. ‘노인이 많아지고 인구가 줄어드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일까’라는 물음말이다.

다마키 편집위원이 강연 서두에 꺼냈던 말이 필자에겐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고령화사회는 사전에 미리 예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도 고령화사회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다. 갑자기 다가오면 지금까지의 상식이 통째로 바뀐다.”

사람은 흔히 익숙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고 한다. 인구가 늘면서 도시가 확장되고 경제는 늘 성장하는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참혹한 6·25전쟁 이후 인구 증가, 고도성장, 도시 확장 등의 길을 걸어 왔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상식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우리의 상식은 이것과 분명히 다를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인구 고령화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일이고 준비할 시간도 있다는 점이다. 국가와 사회도 준비해야 하지만 개인 스스로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자.

‘고령화사회가 되면 내 삶은 무엇이 달라질까. 내가 사는 아파트는 어떻게 될까. 정부는 세금을 더 걷지 않을까. 우리 아이는 그런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처럼 학원가가 아파트 단지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계속될까.

너무 국내에만 투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까(참고로 일본의 무역 흑자는 12조 엔이지만 다른 나라에 투자해 받는 이자나 배당금 등의 소득 흑자는 2007년 기준으로 16조 엔이나 된다).’


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약력 :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lsggg@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