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파리의 IT이야기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뉴스’ 사이트에서 노키아 관련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노키아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RT를 탑재한 태블릿을 내놓는다는 기사였습니다. 노키아가 태블릿을 만든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애플도 만들고 삼성도 만드는 태블릿을 노키아라고 만들지 말란 법은 없죠. 문제는 운영체제(OS)입니다. 다들 외면하는 윈도RT를 탑재한 태블릿을 만들겠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죠.
마이크로소프트 2중대 자처한 노키아, 실패한 윈도RT 탑재 태블릿 개발
기사를 읽으면서 ‘노키아는 마이크로소프트 2중대인가?’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보낸 첩자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캐나다 사람 엘롭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간부로 일하다가 3년 전인 2010년 9월 노키아 CEO로 임명됐습니다. 그때도 “트로이목마다”, “노키아를 마이크로소프트한테 팔아넘기려고 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냥 웃어넘겼는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윈도RT는 마이크로소프트가 태블릿용으로 개발한 윈도8 변형 OS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태블릿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지난해 파트너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윈도RT를 탑재한 ‘서피스RT’와 윈도8을 탑재한 ‘서피스 프로’를 내놓았죠. 서피스는 전반적으로 판매가 부진했는데 특히 서피스RT가 그랬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RT 재고가 쌓이자 2분기에 무려 9억 달러를 손실 처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서피스가 애플 아이패드보다 낫다는 내용의 영상 광고를 시리즈로 내보냈습니다.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 CEO도 “소비자 반응이 좋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도 판매가 부진해 9억 달러를 손실 처리한 겁니다. 그러자 투자자들이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들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정확한 투자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선후 관계를 따져볼 필요는 있습니다. 노키아는 윈도RT와 서피스RT가 이런 상황으로 몰리기 전부터 제품을 개발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궁지에 몰린 지금은 전략을 바꾸고 싶을 텐데 누군가 일부러 정보를 흘렸을 수도 있겠죠. 그렇더라도 노키아 전략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태블릿 시장에 뛰어들 요량이었다면 좀 더 일찍 나섰어야 했습니다. 굳이 윈도를 고집할 이유도 없었다고 봅니다.

따지고 보면 엘롭이 윈도폰을 채택한 게 결정적 패착이었습니다. 엘롭은 노키아 CEO로 임명된 후 회사 사정을 면밀히 분석한 뒤 노키아와 노키아의 주력 OS인 심비안을 ‘불타는 플랫폼’에 비유하고 타 죽지 않으려면 뛰어내려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그 후 심비안을 버리고 윈도폰을 채택했습니다. 널리 알려진 얘기죠.

그때도 노키아한테 기회는 있었습니다. 엘롭은 심비안 대안으로 안드로이드를 택할지, 윈도폰을 택할지 막판까지 고민했습니다. 안드로이드를 택했다면 삼성을 뒤쫓아야 했겠지만 지금처럼 외톨이가 되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폰을 채택하면 대규모 지원금을 주겠다”고 하자 덜컥 윈도폰을 움켜쥐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이어서 그랬을까요. ‘독이 든 사과’를 의심 없이 받아먹었습니다.

노키아가 윈도RT를 탑재한 태블릿을 내놓지 않을 수도 있겠죠. 지금에라도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미국 인터넷 매체인 BGR 기자는 윈도RT 태블릿 개발과 관련해 노키아한테 충고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마(Don’t do it).” 저는 충고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극한상황에서 최고책임자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참모들의 상황 파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광현 한국경제 IT 전문기자 khkim@hankyung.com
블로그 ‘광파리의 IT 이야기’운영자·트위터 @kwang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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