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930호 (2013년 09월 23일)

[SPECIAL REPORT] 순수 화폐의 꿈, 비트코인! 통화량 자동 조절… P2P 모델로 수수료 ‘0’

디지털 황금광 시대다.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동원된 가상 화폐 비트코인 ‘채굴’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올봄 가격이 수백 배 치솟으면서 ‘비트코인 백만장자’가 속출한 결과다. 인류는 돌과 조개껍데기 이후 다양한 형태의 화폐를 만들어 썼다.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등장한 가장 정교하고 대담한 가상 화폐로 불린다. 정부의 화폐 발행 독점과 통제에 정면 도전한다. 개인 간 분산 네트워크를 통해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고 세계 어디나 수수료 없이 송금할 수 있다. 570조 원으로 추산되는 해외 송금 시장에 대격변이 예상되는 이유다.


비트코인 이야기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신비로운 인물에서 시작된다. 2008년 나카모토가 ‘비트코인: 피투피(Peer-to-Peer) 전자 현금 시스템’이라는 제목의 9쪽짜리 짧은 논문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중앙 서버 없이 개인 간의 피투피 네트워크만으로 유지되는 혁신적인 화폐 시스템에 대한 구상과 구현 방법을 담고 있었다. 나카모토는 논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 비트코인 프로그램이 오픈 소스 형태로 공개됐고 최초의 화폐가 발행됐다.

나카모토는 가상 화폐인 비트코인 만큼이나 정체성이 모호하다. 실제 이름이나 나이·국적 등 모두 베일에 가려 있다. 한 명인지 아니면 여러 명이 모인 팀인지도 불분명하다. 일본 이름을 썼지만 유럽인이라는 추측이 많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암호학, 피투피 네트워킹, 경제학에 정통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베일에 싸인 창안자, 사토시 나카모토

나카모토의 정체를 추적한 미국 시사 주간지 뉴요커는 그를 영국인이나 아일랜드인으로 추정한다.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런던의 업무 시간이 끝난 직후 주로 글을 올렸다는 점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나카모토는 2009년 그가 처음 발행한 50비트코인(BTC)에 영국 타임즈를 가리키는 ‘더 타임즈 2009년 1월 3일 총리가 두 번째 은행 금융 구제에 직면하다’라는 텍스트를 남겨 놓았다. 이 문구는 그가 영국 출신일 수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남용된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은행권 구제금융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나카모토는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루트비히 폰 미제스의 이론들에 대한 글도 직접 인터넷에 올렸다. 미제스는 정부가 화폐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대표적인 경제학자다. 그는 정부가 교란할 수 없는 화폐제도를 확립하려고 했다. 미제스는 금본위제의 강력한 옹호자였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미제스의 철학과 통하는 면이 적지 않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정부나 전체를 통제하는 ‘중앙’은 철저히 배제된다. 비트코인 발행은 수학적 알고리즘에 의해 기계적으로 이뤄진다. 처음 4년은 10분마다 50BTC가 공급된다. 그 후 4년마다 공급량이 절반씩 줄어들게 설계돼 있다. 2140년이면 비트코인 총 발행액은 2100만 BTC로 불어나고 추가 발행은 중단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금이 유한한 것과 마찬가지다.

화폐 공급이 일정한 규칙에 따라 증가하는 것은 통화주의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주장과도 연결된다. 프리드먼은 중앙은행이 재량적으로 통화 공급량을 조절하면 안 되며 시장 참가자들이 통화 공급량을 예상할 수 있도록 일정한 준칙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트코인’은 새로운 글로벌 전자금융 시스템이자 그 안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단위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특징은 중앙 서버가 없다는 점이다. 피투피 네트워크에 기반해 개인과 개인 간의 연결만 존재한다. 비트코인 지갑 프로그램을 설치하면 ‘1P2HgUAHPX2NU8iBB8KyrqGVCDxsGde4fG’과 같이 34자리 주소가 생성된다. 비트코인 거래에 사용되는 일종의 개인별 계좌 번호다. 비트코인 시스템에서 개인 간 금융거래는 이 주소를 통해 양측 간 피투피 연결로 처리된다.

이러한 분산형 모델은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문제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다. 한국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코빗의 김진화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수평 모델이 훨씬 효율적이지만 지금까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며 “비트코인이 이를 혁신적인 방법으로 해결했다”고 말했다.

일반 은행 거래에서 모든 계좌의 원 장부는 해당 은행의 중앙 서버에 저장돼 있다. A가 이 은행을 통해 B에게 100만 원을 송금하면 A의 장부에서 100만 원을 빼고 B의 장부에는 100만 원을 더한다. 이 장부가 안전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고객들은 안심하고 은행 거래를 할 수 있다. 피투피를 통한 분산형 모델에서도 계좌 간 송금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장부의 신뢰성이다. 은행처럼 양측이 믿을만한 제삼자의 개입 없이 장부를 공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과제다.



정부 개입 없는 ‘자율 왕국’ 지향

비트코인의 혁신은 모든 사용자의 컴퓨터에 장부를 심는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중앙 서버에 단 한 부의 장부를 두는 대신 비트코인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컴퓨터에 똑같은 장부를 여러 개 두는 것이다. 이는 방대한 비트코인 거래 데이터베이스가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된다는 것을 뜻한다. 2009년 첫 화폐 발행부터 지금까지 이뤄진 모든 거래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된 ‘블록 체인’은 현재 8기가바이트(GB)까지 커진 상태다. 비트코인 지갑을 설치하면 블록 체인이 함께 저장되고 10분마다 정보가 갱신된다.

또 다른 난제는 누가 이 장부를 통일성 있게 정리해 배포할 것이냐다. 다양한 사람이 참여하는 네트워크에서 서로 제각각 장부를 정리해 배포하면 대혼란이 빚어질 게 뻔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비트코인의 두 번째 혁신이 빛을 발한다. 이는 1980년대 초반 컴퓨터 학계에서 제기된 ‘비잔티움 장군의 딜레마’라는 유명한 문제와 연결된다. 적군의 도시를 공격하는 비잔티움 제국의 각 부대들이 지리적으로 서로 떨어져 있고 지휘관 중에 배신자가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동일한 공격 계획을 세우기 위해 어떤 규칙을 따라야 하느냐다.

나카모토는 ‘채굴(마이닝)’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비트코인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돈을 주고 구입하는 방법이 있다. 비트코인 거래소는 세계적으로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거래 수수료가 이들의 주 수입원이다. 올 초 문을 연 코빗은 원화 거래가 가능하다. 최근 1BTC는 13만5000원 안팎에 거래된다.

두 번째는 비트코인 채굴에 참여하는 길이다. 고성능 컴퓨터를 들여놓고 채굴 프로그램을 가동하면 된다. 채굴 참가자들은 먼저 엄청난 연산이 필요한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 기회는 가장 먼저 푼 한 명에게만 주어진다. 고난도 수학 문제가 제출되는 것은 아니다. 무차별 단순 대입이 필요한 일종의 숫자 맞히기다. 숫자를 하나하나 대입해 풀어야 한다. 때로는 수주가 걸리기도 한다. 문제의 난이도는 참가자 숫자에 따라 올라간다. 풀려는 사람이 많을수록 문제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10분마다 한 명만 풀 수 있게 난이도가 자동 조절된다.

문제를 푼 사람에게는 새로 발행되는 피트코인(현재 10분마다 25BTC)이 주어진다. 또한 지난 10분 동안 이뤄진 모든 비트코인 거래의 수수료도 가져간다. 대용량 컴퓨팅 파워가 동원되고 또 여러 명이 팀을 이뤄 채굴에 뛰어드는 이유다. 채굴은 컴퓨터를 가동하는 전력 소모량이 엄청나 개인이 하기에는 부담이 되는 수준이다.

언뜻 전력 낭비처럼 보이는 이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주목할 점은 수학 문제를 푼 한 사람에게 10분간 네트워크에서 이뤄진 모든 비트코인 거래 기록을 정리해 몇 십만 개의 컴퓨터로 보낼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네트워크에서 통일된 장부 정리를 위해서는 어쨌든 한 명을 뽑아야 한다. 같은 사람이 매번 정리한다면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수학 문제를 푸는 경쟁을 유도하고 이를 푼 한 사람이 장부를 정리해 퍼뜨리게 한 것이 바로 비잔티움 장군의 딜레마에 대한 나카모토의 해결책이다. 이를 통해 중앙 서버 없이 익명의 개인들이 평등하게 참여하면서도 합의와 질서를 놀랍도록 잘 만들어 낸다.

비트코인의 가장 큰 강점은 거래 수수료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송금이나 지불·결제 때 최저 0.0005BTC(약 60원) 이상을 자율적으로 내면 그만이다.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에는 큰 도전이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세계 이주자 송금 시장은 연간 570조 원 규모다. 김진화 COO는 “일반 금융회사는 해외 송금 수수료가 평균 12~25%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아프리카로 돈을 송금하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고 이를 송금한 다음 다시 해당국 화폐로 환전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수수료도 높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비트코인은 이런 문제가 전혀 없다. 세계 어디든지 인터넷만 연결되면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고 수수료도 미미한 수준이다.

비트코인과 관련해 경제학자들이 제기하는 우려는 하이퍼 디플레이션 가능성이다. 2100만 BTC로 화폐 발행 총량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을 주로 쓰는 비트코인 경제를 가정하면 경제 규모가 계속 팽창해도 화폐 공급량을 더 이상 늘릴 수 없게 된다. 화폐가치는 계속 치솟고 재화 가격은 상대적으로 계속 떨어지게 된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 지연과 경기 침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1970년대 금본위제가 막을 내리고 불태환 화폐 시대가 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비트코인 지지자들은 디플레이션 우려를 일축한다. 2145년 비트코인 추가 발행이 중단돼도 기존 화폐를 더 작은 단위로 쪼개 쓰면 된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소수점 8자리까지 나눌 수 있게 설계됐다. 비트코인의 가장 작은 단위는 창안자인 사토시 나카모토를 기념하기 위해 ‘사토시’라는 단위로 불린다. 이렇게 따지면 세계경제가 100만 배쯤 커져도 문제없다는 설명이다. 또한 비트코인만 사용하는 경제가 나타날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비트코인에 가해지는 또 다른 비판은 익명성에 초점을 맞춘다. 비트코인 지갑은 개인 정보를 입력하지 않고도 설치할 수 있다. 누가 비트코인 거래의 실제 당사자인지 추적이 불가능한 것이다. 마약 등을 거래하는 불법 사이트 이용자들이 비트코인을 가장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카네기멜론대 정보네트워킹 연구소는 전체 비트코인 거래량의 4.5%인 130만 BTC가 매달 이런 불법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것으로 추정했다.


독일의 한 카페에서 비트코인으로 요금을 지불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규모나 영향력에서 아마존의 아마존 코인, 세컨드라이프의 린덴 달러 등 기존 가상 화폐를 훨씬 뛰어넘는다.



중앙은행도 파급효과 모니터링 나서

비트코인이 검은돈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일면적이다. 비트코인은 개방성과 투명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 지갑 소유자는 베일에 가려 있지만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전체 거래 기록은 2009년 이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돼 모든 사용자가 들여다볼 수 있다. 이를테면 비트코인 거래를 위해 주소를 공개한 피자점이 있다면 누구나 그 주소를 입력해 이 피자점의 매출 내역 전체를 볼 수 있다. 어떤 금융 시스템도 따라올 수 없는 투명성이다.

비트코인에 열광하는 것은 가격 급등을 노린 투자자들만이 아니다.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을 채택하는 오프라인 매장과 온라인 사이트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거래 수수료가 거의 없다는 게 인기 비결이다. 지난 5월 포브스가 샌프란시스코를 무대로 ‘비트코인으로 1주일 생활하기’ 체험을 싣기도 했다. 포브스 기자는 비트코인을 받는 초밥 집과 컵 케이크 매장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비트코인을 받기 시작한 미국 최대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인 푸들러도 활용하며 생존에 성공했다. 온라인 매장은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을 지불 수단으로 받는 첫 사례가 나왔다. 대전에 거주하는 케머런 바흐만 씨가 1파운드에 0.1BTC를 받고 핸드 로스트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거래소는 물론 환전, 지불 처리,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비트코인 관련 벤처에 투자가 몰리고 있다.

비트코인은 규모나 영향력에서 아마존의 아마존 코인, 세컨드라이프의 린덴 달러 등 기존 가상 화폐를 훨씬 뛰어넘는다. 이에 따라 중앙은행 등 통화 당국들도 비트코인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 화폐들이 여러 통화로 교환되면서 규제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교환 비율과 실제 환율의 괴리가 환율 교란과 차익 거래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뷰_김진화 코빗 최고운영책임자(COO)
“ 한국이 아시아 비트코인 경제 주도할 수 있는 기회”

김진화(37) 코빗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실리콘밸리에서 컴퓨터 보안 분야 강사로 활동하던 유영석 코빗 대표와 의기투합해 지난 4월 한국 최초의 비트코인 거래소인 코빗을 설립했다. 이들은 한국 첫 우주인으로 선발됐던 고산 대표가 이끄는 타이드인스티튜트 출범에도 함께 관여했다. 김 COO는 “비트코인은 완전히 새로운 영토”라며 “한국이 아시아 전자금융을 주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코빗은 어떤 곳인가.

4월 서비스를 시작하고 7월 법인을 설립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비트코인 원화 거래소다. 거래 금액의 2%를 수수료로 받는다. 이용자가 1000명 수준까지 늘었다. 거래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중국은 비트코인 프로그램 다운 수가 세계 3위로 올라섰다. 한국은 아직 55~60위에 머물러 있다.

거래소를 만든 이유는.

마운틴곡스가 세계 최대 비트코인 거래소다. 한때 70%까지 시장을 점유했다. 프랑스인들이 일본 도쿄에 세운 회사다. 2위는 슬로베니아에 있는 비트스탬프다. 비트코인 이코노미는 어떻게 보면 평등하다. 미국 중심이 아니다. 아직은 초기 단계여서 거래소만한 비즈니스 모델이 없다.

비트코인의 가능성은.

실리콘밸리 주류 벤처캐피털들이 비트코인을 보고 인터넷이 처음 등장할 때와 같다고 열광한다. 일종의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것이다. 인터넷 프로토콜인 HTTP나 e메일 프로토콜인 SMTP처럼 비트코인이 금융의 기본 프로토콜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비트코인의 빅 팬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국에 주는 기회는.

한국이 동북아는 물론 동아시아까지 포괄하는 금융 강국이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정보기술(IT) 인프라가 강하고 개방을 통해 금융 노하우도 쌓아 왔다. 전통 금융에서는 싱가포르와 홍콩이 허브지만 새로 등장하는 가상 화폐에서는 한국이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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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3-09-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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