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제 733호 (2009년 12월)

‘순수 국내파의 힘 보여주고 싶어요’

자매 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 신현수

하지만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아도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쌓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신아라 신현수 자매가 대표적인 예다.]>

신현수 1987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현). 수상: 2001년 영국 예후디 메뉴인 국제 콩쿠르 2위(주니어부문). 2002년 미국 워싱턴 요한슨 국제 콩쿠르 1위. 2008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 1위. 2008년 워싱턴 내셔널 오케스트라, 오사카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 등.
]>신아라 신현수 자매 바이올리니스트를 이야기할 때는 늘 ‘국내파’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이들의 특별한 재능도 재능이려니와 이들 자매가 여느 음악 전공 학생들처럼 해외 유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국내에서만 실력을 갈고닦았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08년 신현수 바이올리니스트가 세계 5대 바이올린 콩쿠르 중 하나인 프랑스 롱-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했을 때도, 그보다 2년 전인 2006년 신아라 바이올리니스트가 유서 깊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 콩쿠르에서 1위없는 2위를 수상했을 때도 많은 이들은 이들 자매가 ‘국내파’라는 사실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아무래도 악기 자체가 외국 악기여서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려면 유학하는 게 당연하다는 선입견들이 많기 때문이죠.”(신현수) “실제로 국내에서만 배워서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경우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요.”(신아라) 물론 워낙 어렸을 때부터 콩쿠르에서 두각을 나타내 온지라 이들 자매에게도 유학 제의가 심심치 않게 있어 왔다. 하지만 정작 이들 자매는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유학할 형편도 되지 않았지만 굳이 유학을 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실력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처음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예비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우리 자매에게 각별하게 대해주신 김남윤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선생님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가르쳐 주셨거든요.”(신아라)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매주 주말마다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가 선생님께 바이올린을 배운 뒤 밤늦게 전주로 돌아가곤 했죠. 김남윤 선생님은 그런 우리를 10년 동안 무료로, 게다가 선생님의 악기를 직접 빌려주며 가르치셨어요.”(신현수)

헌신적으로 바이올린을 가르친 스승님들 외에도 이들 자매의 바이올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은 또 있다. 바로 자매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단 한 번도 부담을 주지 않으셨어요. 바이올린을 그만두든, 계속하든 늘 우리 뜻에 맡기겠다고 하실 뿐 묵묵히 곁에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셨죠.”(신아라)

치열한 노력으로 환경을 극복하다

이들 자매가 바이올린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여 년 전 동네 유치원에서였다. “우리 집이 전주거든요. 그런데 우리 집 근처 유치원에서는 의무적으로 악기를 한 가지씩 배우도록 했는데, 그때 제가 배우게 된 게 바로 바이올린이었어요. 아마 네 살인가, 다섯 살 때쯤일 거예요.”(신아라) “그 당시 저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여서 기억은 나지 않는데(웃음) 어머니가 말씀하시기로는 언니의 바이올린 소리가 제 태교였다나 봐요.”(신현수) 그 덕분에 동생 현수 씨는 태어나기 전부터 자연스레 바이올린을 접하게 되었다.

서너 살이 되었을 무렵부터는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언니 옆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언니 흉내를 내곤 했다. 이후 언니가 그랬듯 유치원에서 동네 학원으로, 그리고 한예종 예비학교에서 한예종에 이르기까지 계속 바이올린을 공부하게 됐다.

“어머니가 많이 힘드셨을 거예요. 혼자되신 후 집안 살림 꾸려나가랴, 두 아이 음악공부 시키랴 얼마나 고되셨을지 짐작도 안 가요.”(신아라) 하지만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그것도 유난히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음악 공부를 두 명이나 시키면서도 자매의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음악 공부를 그만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굳이 음악을 계속해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어요. 그저 열심히만 하라고 하셨죠.”(신현수)

그래서 자매에게는 바이올린이 취미도 특기도 아니었다. 그저 언제나 곁에 있는, 언제나 열심히 해야 하는 일상에 가까웠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해야 하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늘 바이올린을 끼고 살았다. 언니에게는 동생이 있어, 동생에게는 언니가 있어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악기 문제가 제일 심각했죠. 좋은 악기를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아 늘 빌려 쓸 수밖에 없었거든요.”(신현수) 처음에는 동네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빌려서 연습을 하곤 했다. 국내 콩쿠르에 출전해 좋은 성적들을 거두면서부터는 악기상에서 개중 저렴한 바이올린을 빌려 연습하고 또 출전하곤 했다. “좋지 않은 악기여서인지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아요.”(신아라) 연주회를 가질 기회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콩쿠르는 이들 자매가 스스로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그 때문에 자매는 거의 매년 콩쿠르에 참가하곤 했다. 나이 터울만큼 언니가 수상한 콩쿠르에서 동생도 수상하기 일쑤였다. 한 사람이 콩쿠르에 입상해 받은 상금으로 다른 사람이 콩쿠르에 참가할 비용을 마련하곤 했다. 국내 콩쿠르를 섭렵한 이후로는 국제 콩쿠르에 참가해 실력을 검증받기도 했다. “콩쿠르에 참가하고 입상하면 우리 스스로도 자신감이 생기지만 거기에 더해 우리를 통해 후배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더욱 기쁘죠.”(신현수) 연이은 국제 콩쿠르에서의 수상 이후 자매는 프로 연주자로서의 길을 활발하게 걷고 있다.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할 때는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객관적인 비평가이자 최고의 청중이 되어 주곤 한다. 오랜 시간 늘 함께했던 사이기에 서로가 서로의 장단점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어 자매 사이라고는 해도 긴장감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 “서로의 소리에 대해 가장 잘 알죠. 언니의 바이올린은 굵고 묵직하고 따뜻한 소리를 내요. 브람스와 잘 어울리죠.”(신현수) “동생의 바이올린 소리는 많은 평론가들이 격찬한 것처럼 날카로움이 살아있는, 화려한 소리를 내죠. 또한 그런 반면에 집중력도 상당히 높고요.”(신아라) 서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듀오 연주회에서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한다.

세계 최고를 꿈꾸다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는 현수 씨와 달리 예술사 과정과 전문사 과정을 마친 언니 아라 씨는 연주 활동과 겸해 모교인 한예종에 출강하며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서인지 다들 편하게 잘 대해줘요. 저 역시 제가 배운 것들을 후배들과 나눌 수 있어서 기쁘고요.”(신아라) 하지만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정상의 자리에 서고 싶다는 소망은 여전하다. “평단과 대중에게 모두 사랑받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신아라) 이는 동생 현수 씨도 마찬가지다. “전 정말 욕심이 많거든요. 유학을 하지 않고 순수 국내파 음악인도 얼마든지 세계 최고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우리처럼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 많은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또 유학을 선택하지 않은 많은 음악 전공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 되고 싶습니다.”(신현수)


김성주 객원기자 helieta@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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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09-12-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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