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와 헤어질 결심···마지막 지점 철수한 JP모건
2011년 9월 17일 대형 금융회사의 부조리와 탐욕을 비판하는 시위가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열렸다.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대는 ‘우리는 99%(We are the 99%)’ 슬로건을 들고 JP모간,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사 본사가 들어선 월가를 행진했다.

당시 미국은 신용카드 대출 부실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전 세계 경제위기의 시작을 열었고 그 중심에는 월가가 있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99%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간 가운데 JP모간, 골드만삭스 등 대형 금융회사 CEO들이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긴 것이 드러났다. 미국 자본주의 심장으로 불리던 월가의 어두운 단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다.

현재 월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됐다. 2008년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2020년 코로나19 이후 이곳을 떠나는 금융회사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는 세계 금융의 심장이자 경제위기의 온상이라고 불렸던 시절은 전부 옛말이 됐다는 평가다.

지난 4월 19일 미국 1위 은행 JP모간체이스가 뉴욕 월스트리트 45번가의 마지막 지점을 철수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월 20일 이러한 내용을 보도하면서 “JP모간의 철수는 월가라는 오래된 거리와 함께한 회사의 역사에 비춰볼 때 기념비적인 사건”이라며 “월가를 가득 채웠던 대부분 은행과 증권사가 새 둥지를 찾아 떠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JP모간은 1871년 존 피어폰트 모간이 세운 금융사로 1913년 설립된 중앙은행(Fed)보다 역사가 오래됐다. 본사는 이미 2001년 월가에서 맨해튼 미드타운으로 옮겼고 이번 지점 철수로 월가를 완전히 떠난다. WSJ에 따르면 2006년부터 운영해온 45번지 지점은 몇 블록 떨어진 곳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금융사의 월가 탈출은 2001년 9·11 테러와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시작돼 팬데믹 이후 가속화됐다. 2000년대까지 베어스턴스, 씨티그룹,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리먼브러더스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월가를 배경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001년 월가 근처인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받고, 2008년 금융위기로 주요 금융회사가 사라지거나 인수합병되면서 월가를 떠났다. 팬데믹 이후 급속도로 발전한 디지털화와 과거처럼 넓은 사무공간이 필요없게 된 점도 월가 탈출의 이유다.

현재는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인수된 메릴린치를 제외하고 대부분 근처 미드타운이나 뉴욕시 외곽으로 이동했다. 월가의 은행은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캐나다계 은행인 토론토도미니언의 지점 2곳만 남게 됐다. 여전히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NASDAQ) 등 주요 기관들이 자리하고 있지만 전산화로 인해 과거와 같은 열기는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JP모간 철수는 “월가를 비롯한 미국 상업 부동산의 위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부동산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뉴욕 맨해튼의 상업 부동산 공실률은 2020년 1분기 11.3%에서 올해 1분기 23.4%로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JP모간이 2001년까지 본사로 쓰던 55층 높이의 월가 60번지 건물은 이후 도이체방크가 사용했지만 2021년 이후 공실이다.

임나영 인턴기자 ny92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