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한류’ 주역으로 뜨다

‘한류’ 붐을 타고 일기 시작한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영향력은 초기 드라마 등의 연기 부문에서 이제는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한 ‘음악’ 분야로 넘어온 상태다. 한국이 아시아 대중문화의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한국에서 뜨면 곧 ‘한류 스타’로 대접받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돌 그룹의 ‘탈(脫)한국’을 개척한 건 역시 1990년대 중·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한 1세대 그룹들이다. H.O.T.나 NRG, 베이비복스 등의 경우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들 1세대 그룹들은 본격적인 해외 진출의 의미보다 국내 활동을 중심으로 해외 공연을 덧붙이는 수준에 머물렀던 게 사실이다.

본격적으로 아이돌 스타의 해외 진출을 알린 건 SM엔터테인먼트가 키워낸 ‘보아’다. 지난 2001년 일본에 진출한 보아는 체계적이고 치밀한 계획 아래 해외에 진출해 성공한 첫 사례다.

2000년 1집 앨범 ‘ID:PEACE B’로 데뷔한 보아는 이듬해인 2001년 곧바로 일본 진출에 도전했다. 하지만 데뷔 전부터 이미 일본어와 영어를 마스터하는 등 해외 진출을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또한 일본 최대의 음반 기획사인 ‘에이벡스’와 합작해 SM재팬을 설립하고, 여기서 체계적인 마케팅을 지원한 것도 보아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보아는 일본 진출 2년째 펴낸 일본 정규 1집 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Listen to my Heart)’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고, 지난해까지 내놓은 앨범 모두가 8연속 데일리차트 정상을 차지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오히려 한국보다 일본에서 톱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앨범 판매, 콘서트, CF 등으로 보아가 벌어들이는 경제적 가치는 1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가수 보아 시장 가치 1조 원대
[아이돌 스타, 연예 산업 판 바꾸다] 일본·중국 석권…미국 시장도 넘봐
보아의 성공적인 일본 진출 사례는 같은 소속사 가수인 동방신기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 2006년 일본에 건너간 동방신기는 적어도 차트상으로는 이미 보아를 뛰어넘었다.

올해 3월 24일 발표한 서른 번째 싱글 ‘시간을 멈춰서(時ヲ止メテ)’가 오리콘 싱글 주간 차트 1위를 차지한 것.

자국 가수가 아닌 외국 가수로는 보아가 세운 7회를 넘어선 기록이다. 하지만 동방신기는 최근 소속사와 일부 멤버와의 갈등, 멤버 간의 이견 등으로 그룹 활동을 접은 상태다. 대신 멤버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꾸준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아준수(김준수)는 국내 뮤지컬뿐만 아니라 일본 내 솔로 앨범이 발매 당일 오리콘 차트 2위를 차지했고, 믹키유천(박유천)과 영웅재중(김재중), 최강창민(심창민) 등은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 데뷔를 준비 중이다.

동방신기를 통해 아이돌 그룹의 일본 진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후론 2007년 SS501, 2009년 빅뱅 등의 그룹이 뒤를 이었다.

2010년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일본 시장 진출은 ‘걸그룹’이 총대를 멘 형국이다. 현재 우리의 대중문화는 걸그룹이란 말로 대표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수만 16개 이상이다.

넘쳐나는 공급은 자연스럽게 해외시장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카라’는 지난 4월 말 한국판 앨범 패키지를 선보이며 일본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도쿄에서 열린 첫 쇼케이스에 는 100명이 넘는 취재진·관계자 등이 모였고, 팬들의 수는 4000여 명에 달했다. 카라는 7~8월 정식으로 일본 데뷔 앨범을 낼 예정이다.

‘포미닛’도 이달 초 싱글 앨범 ‘뮤직(Muzik)’을 통해 정식으로 일본에 데뷔했다. 이어 5월 8일에는 도쿄의 제프도쿄에서 2000여 명의 팬들이 모인 가운데 첫 단독 콘서트도 열었다. 올해 상반기에 국내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쳤던 티아라도 이달 중 싱글 앨범 ‘TTL(Time To Love)’로 일본에 데뷔한다.

과거 한두 명의 스타(그룹)가 일본 진출에 성공하며 한류 붐을 일으켰다면, 최근 아이돌 그룹의 일본 진출은 확대된 시장 규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보아와 동방신기를 통해 ‘K팝’이라는 장르 자체와 수요가 생기면서 시장 규모가 커진 것.

실제로 카라와 포미닛의 경우 일본 내 유니버설뮤직이 먼저 러브콜을 보내와 진출이 성사된 케이스다. 일본 음악 시장 관계자들이 다년간의 수련 끝에 데뷔한 한국 아이돌 스타들의 가능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한 국내 아이돌 그룹의 해외 진출은 이제 팝의 본고장인 미국으로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다. 거대 연예 기획사 중 미국 진출에 가장 많은 노력을 쏟고 있는 곳은 박진영의 ‘JYP엔터테인먼트’로 현재 대표 주자는 ‘원더걸스’다.

2009년 10월 셋째 주 빌보드 싱글 차트 ‘핫(Hot) 100’에서 76위를 차지한 원더걸스는 가장 성공적인 미국 진출 사례로 꼽힌다. 아시아 출신 가수로는 30여 년 만에 빌보드 메인 차트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원더걸스, 성공적 미국 진출 사례 꼽혀
[아이돌 스타, 연예 산업 판 바꾸다] 일본·중국 석권…미국 시장도 넘봐
원더걸스 이전에는 역시 같은 소속사의 비가 미국 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비의 경우 가수로서는 아시아 시장에서 활약하고 북미에선 주로 연기자로 인식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원더걸스의 경우 초기 투자비와 마케팅 비용 때문에 현재까지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는 미국에 진출한 국내 아이돌 스타 중 유일하게 흑자를 본 경우다.

원더걸스와 비 외에도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경우는 많다. 일본에서 톱스타로 자리 잡은 보아(SM엔터테인먼트)와 국내에서 비와 경쟁했던 세븐(YG엔터테인먼트), 지소울, 임정희(이상 JYP엔터테인먼트)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아직까지는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싱글 ‘잇 유 업(Eat You Up)’을 들고 미국에 진출한 보아는 지난 3월 정규 1집 ‘BoA’를 발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한 상태다.

아이돌 스타들이 비교적 안전한 국내와 아시아를 넘어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이유는 시장의 규모 때문이다. 미국에서 인정받는 건 곧 세계적인 톱스타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극도로 침체된 국내 음반 시장과 기형적인 음원 시장의 이익 배분 구조는 해외 진출의 촉매제가 됐다.

전통적인 음반 시장을 대체하고 있는 음원 시장의 경우, 유통사에 해당하는 이동통신사가 전체 이익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본래부터 작을뿐더러 침체되기까지 한 시장 상황에서 성공적인 미국 진출은 막대한 부와 명예를 차지하는 지름길인 셈이다.

최근에는 미국 시장 실패를 거울삼아 새로운 시장 진출 전략도 등장하고 있다. 유니버설 등 글로벌 대형 음반사들과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는 것. 포미닛 소속사인 플레이큐브엔터테인먼트와 유니버설뮤직이 함께 펴낸 ‘포 뮤직’ 앨범이 대표적이다.

아시아 9개국에 발매된 이 앨범은 유니버설의 탄탄한 배급망을 통해 출시가 가능했다. 국내 기획사들도 현지에서 직접 현지인을 키워내 데뷔시킬 계획이다.

‘유키스(NH미디어)’의 경우 멤버 중 케빈과 일라이가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미국인이고 포르투갈어·일본어·스페인어·프랑스어 등에 능통한 멤버까지 있어 데뷔 전부터 미국 시장 진출을 노렸다. 태국계 미국인인 2PM의 닉쿤, 중국인인 슈퍼주니어의 한경 등도 비슷한 사례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