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잡앤조이 1618=박인혁 기자] 최근 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직업계고 학과개편이 활발하다. 하지만 졸업 후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거나 특정 인기 전공으로 학과가 편중되는 현상은 꾸준히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원활한 신입생 모집을 위해선 겉만 그럴듯한 화려한 학과개편이 아니라 학생들의 졸업 후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내실 있는 학과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



[1618]  직업계고 학과개편 “신입생 눈길 끌려다 졸업생 갈 길 놓쳐”


2020년 특성화고 신입생 모집 결과 전국적으로 미달 사태가 발생했다. 서울시 70개 특성화고 중 절반이 넘는 42개교가 미달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특성화고가 정부 정책에서 버림받은 것 아니냐”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각 학교가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지만 취업률이 끝없이 추락하고 향후 학령인구마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특성화고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 학과개편은 특성화고가 신입생을 모집할 수 있는 ‘탈출구’ 중 하나다. 이에 특성화고들은 학과개편을 통해 시대 변화의 흐름을 읽고 기업의 요구에 맞춰 전공과 교육과정을 새롭게 바꾸고 있다.


근본적 변화 없이 간판만 바꾸는 학과개‘명’

학과개편은 특성화고 인기 하락이라는 문제점에 대응하는 훌륭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미래 기술과 인력 수요에 대응해 빠르게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학교의 모습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주도하는 교육과정 변화가 얼마나 실속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학과개편을 통해 신설되거나 기존 학과에서 모습을 바꾼 전공들이 과연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을 만큼 직업 교육 및 훈련 커리큘럼을 갖췄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교육과정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학과명의 일부만 세련된 단어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상업 계열 학교에서는 전공명에 ‘마케팅’을 붙이고 농생명 계열 학교는 ‘바이오’를 더하는 ‘이름 바꾸기’도 한때 유행했던 방식의 학과개‘명’이다. 수업 내용이 비슷하고 가르치는 교사도 같지만 학년별로 학과명이 다른 사례도 있다. 전공명을 매력적이고 직관적으로 바꾸는 것도 물론 신입생 모집을 위해 필요한 일이지만 내실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학과개편에 앞서 졸업 후 취업처 철저히 파악해야 학생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분야로 학과개편이 진행되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신입생 이 선호하는 특정 분야 전공이 포화 상태를 이루는 것은 경계해야할 일이다.

최근에는 조리·미용·간호 등의 전공을 신설하는 특성화고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해당 인력에 대한 수요가 적지 않고 많은 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종이지만 졸업생이 많아지는 만큼 취업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특성화고 홍보 팸플릿에는 전공별 취업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군이 표기되지만 막상 실제 졸업생이 취업한 구체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학과개편에 앞서 졸업 후의 취업처에 대한 철저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실제로 직업계고 학과개편 기준에는 ‘미래 고졸 취업 수요’와 ‘취업처 확보 방안’ 등의 기준이 포함되고 신청 전에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사전 컨설팅도 이뤄진다. 하지만 더욱 체계적인 수요 파악이 중요하다는 것이 현직 교사들의 의견이다.


천안여상 신선근 교사는 “어떤 학교가 특정 전공으로 학과개편해서 신입생 모집에 성공하면 다른 학교가 모두 따라서 학과개편하는 현상은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산업 수요를 일선 학교에서 파악하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며 “학과개편에 앞서 교육부 차원에서 전문가 집단을 구성하고 장기간 모니터링하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기 전공 편중 현상, 고교학점제로 해소 가능할까

산업구조의 변화와 기업의 요구 등 학과개편의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특성화고에서 학과개편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가 신입생 모집 때문이라는 점은 누구도 쉽게 부인하지 못한다. 특성화고에서는 선택한 전공을 3년 동안 공부해야 하며 나아가 진로와도 연결된다. 따라서 학생들은 입학 전 전공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한 학교에서 특정 전공은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다른 전공은 미달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이런 경우 학교는 이듬해에 학과별 정원을 조정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특성화고가 전공을 좀 더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도록 학과개편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다. 학과개편 열풍 속에서도 꿋꿋하게 정통 상업 계열이나 공업 계열 학과를 유지해온 특성화고들도 신입생 모집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인기 전공으로 개편을 고려하게 된다.


대경상업고 김동욱 교사는 “2020년도부터 일부 학교에 시범 도입되는 고교학점제가 학과개편의 문제점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융·복합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는 전공에 대한 필수 학점을 이수하면 다른 전공의 수업을 수강 신청해서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김동욱 교사는 “고교학점제로 전공 선택에 대한 부담감을 줄인다면 특정 전공에만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을 줄일 수 있다”며 “나아가 학교간 학점교류로도 이어진다면 서열화된 특성화고의 간극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를 통해 신입생이 인기 전공에만 지원하는 현상이 줄어든다면 단순히 신입생 모집만을 위한 내실 없는 학과개편은 줄어들 수 있다는 의견이다.


미래 유망한 신산업, 졸업 후 취업처 확보가 숙제

미래 산업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학과개편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신입생 모집에 효과적이지만 당장 졸업생들을 수용할 만한 일자리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드론은 주목 받는 미래 산업 분야 중 하나다.



[1618]  직업계고 학과개편 “신입생 눈길 끌려다 졸업생 갈 길 놓쳐”



이를 반영하듯 최근 특성화고에서 드론의 인기는 대단히 높다. 많은 학교에서 드론 관련 전공으로 학과개편하고 드론과 연관된 전공이 없는 학교에서는 드론 동아리를 개설해 학생들의 관심을 충족시키고 있다. 충남 광천제일고는 2019년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30%만 채우는 등 존폐 위기에 놓임에 따라 드론테크과와 드론비즈과를 새로 개설했다. 그 결과 광천제일고는 2020년 신입생 정원을 100% 충원했다. 미래 유망한 기술에 주목해 학생 및 학부모에게 높은 평가를 받은 학과개편 성공 사례다.


하지만 아직 숙제가 남아 있다. 일부 군의 수요가 있지만 그 외에 드론 전문가를 채용하려는 곳은 아직 많지 않다. 미래에 드론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인력 채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신입생들도 막연히 미래 수요가 늘어날 것을 기대하고 지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성화고 학생들에게 취업은 조만간 다가올 현실이다. 3년 후 드론학과 졸업생들이 취업할 곳이 없다면 더 이상 신입생 충원의 선순환이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졸업 후 취업처 확보는 앞으로 드론학과를 비롯한 여러 신산업 분야 전공을 운영하는 학교들이 해결해야할 숙제다.


신산업 전문 교원 확보도 제도적으로 지원해야 학생들에게 새로운 산업 분야의 기술을 교육할 전문가를 확보하는 일도 현실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현장 전문가를 교사로 채용하는 길을 열어뒀지만 교사 정원이나 예산의 문제로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학과개편을 하는 경우 정부에서 예산을 지원 받아 실습실에 3D프린터 등 고가의 최신 장비가 도입된다. 하지만 일부 학교의 경우 장비를 다룰 수 있는 교사가 없어 학생들과 함께 배워나가거나 학생들이 스스로 인터넷으로 사용법을 터득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학과개편 이후 기존 전공이 사라진 교사들이 직무재연수를 통해 새로운 전공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공립고의 경우에는 교사가 새로운 전공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익숙해질 즈음 다른 학교로 발령 나는 경우도 흔하다. 그동안 개발한 교육과정과 노하우에 대해 인수인계가 이뤄지지만 적응하기까지 다시 시간이 걸리고 학생들도 혼란스럽다. C학교에서 게임 과목을 가르치는 한 교사는 “전문 교사를 구하기 어려운 특성화고 과목 교사는 공립학교 순환근무제에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검토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부터 신입생 모집하는 91개 직업계고 125개 개편· 신규 학과

직업계고 학과개편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는 2016년 6월 고졸인력에 대한 수급 불일치를 완화하기 위해 ‘중등직업교육 학생 비중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일반고를 직업계고로 전환하는 한편 직업계고 학과 개편 및 학급 증설을 유도해왔다. 이에 따라 ▲2016년 96개교(1차) ▲2017년 74개교(2차) ▲2018년 61개교(3차) ▲2019년 91개교(4차)가 직업계고 학과 개편 대상 학교로 선정됐다. 이 중 2019년 6월 선정된 91개 학교는 추진 계획에 따라 학과 개편을 현재 진행 중이다. 2020년 상반기에 교육청의 최종 승인 절차를 거쳐 2021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게 된다. 교육부는 학과개편 대상 학교를 선정하기에 앞서 학과개편의 필요성 및 성공가능성을 심사하는 한편 신산업 분야, 지역전략산업 분야, 뿌리산업분야 여부 등에 대해서도 집중 검토했다. 2019년 선정된 125개 학과 중 78개 학과는 변화하는 산업수요 및 직무 내용을 반영해 동일한 교과군 내에서 교육과정을 개편하거나 고도화했다. 47개 학과는 타 교과군으로 학과개편을 추진했다. 특히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분야인 정보·통신 분야와 콘텐츠·디자인 분야로 가장 많이 개편이 이루어졌다. 교육부는 2021년 신입생 모집까지 각 학교가 원활히 학과개편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및 시·도 교육청과 협력해 컨설팅을 제공하고 개편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사진=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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