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잡앤조이=김지민 기자/이상현 대학생 기자] 올해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해 반포한 지 574년째다. 반세기가 넘는 동안 한글은 우리네 일상생활 모든 부분을 함께 해왔다. 외국과의 교류가 많아질수록 외국어·외래어 남용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대신 외국어·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닌지 일상 속 사례를 살펴보자.
△서울의 한 대형 백화점 내 직원 회의실 안내판. 외래어 사용이 과하게 느껴진다.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 우리말보다 더 멋있게 느껴
“한 번씩 그럴 때가 있다. 이 말이 외국어거나 외래어인 것은 분명한데 딱히 대체할 말이 없다고 느낄 때. 아니면 분명히 한글로 적혀 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를 때.”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 중이라고 밝힌 박형인(25) 씨는 방학마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박 씨는 최근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 때문에 봉사활동에 대한 회의감마저 든다고 말했다.
박 씨는 “한류 열풍 때문인지,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공부하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며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어나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을 더 멋있게 느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중매체와 인터넷의 발달로 다른 나라의 문화나 언어를 접하는 일이 과거보다 흔해졌고, 또 쉬워진 것은 분명하다. ‘K팝’과 ‘BTS’ 등 세계적인 한류 열풍에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Parasite)’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면서 그 인기를 더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우리말로 된 설명이나 안내 대신 외국어·외래어 사용이 지나치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종종 생겨나고 있다. 초기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해를 돕거나 시민의 이목을 끌려는 의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서울의 한 대형 백화점 내 층별 안내판. 가게 상호와 물품 종류 등을 외국어·외래어로 표기한 내용이 많다.
서울의 한 대형 백화점을 찾은 정미경(67) 씨는 백화점 내 안내판을 보고 한참 헤맨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정 씨는 “안내판을 봐도 전부 영어나 외래어로 적어놨으니 이해가 안 된다”며 “영어 이름을 우리말로 적어놨으니 나 같은 노인들은 헷갈리기 마련”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젊은 사람들이야 영어 잘하니 불편한 줄 모르겠지”라고 말했다.
박 씨와 정 씨의 말처럼 우리네 일상 속에서 외국어나 외래어가 남용된 사례를 찾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 대학, 일반 기업, 가게 상호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이 흔하다.
공공기관이 외국어를 남용한 대표적 사례로는 ‘YG 밀리터리 페스타’ 등을 들 수 있다. YG 밀리터리 페스타는 강원도 양구군이 지난 2018년부터 해마다 군 장병을 대상으로 개최하는 축제다. 해당 축제를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지기 쉬운 명칭이다. 또 다른 사례로는 ‘주니어 스타트업 액셀러레이션’이다. 강원창조경제혁신센터가 지역 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창업 관련한 교육을 시행하는 사업이다.
문재인 대통령 “한글만이 우리 생각 온전히 담아내”
공공기관 뿐 아니라 일상에서 사용하는 표현 중에도 외국어와 외래어 남용이 많다. ‘코디네이터, 아카데미, 세미나, 워크숍, 프로젝트, 오리엔테이션, 리셉션, 서포터즈, 머그샷, 엔터테인먼트, 콘서트, OO센터, 체크리스트, 버스킹’ 등도 마찬가지다. 모두 우리말로 표현해도 충분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말들이다. 구태여 외국어나 외래어로 표기할 이유가 없다.
△지난해 한글날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에 올린 축하 인사. (사진=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한글날 인터넷에 축하 인사 게시물을 올려 “일제강점기에는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었다”고 전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한글만이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다”며 “국경을 넘는 한류의 밑바탕에 한글이 있었다”고 말했다.
외국어나 외래어 사용을 무조건 지양하자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 다만 전 세계가 한국의 문화와 전통, 음악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는 만큼 평소 우리말로 고쳐 쓸 수 있는 표현은 바꿔쓰는 것이 어떨까.
min503@hankyung.com
[사진=이상현 대학생 기자]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