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세계] 폴 에드워즈, 김한규 브루마스터
[캠퍼스 잡앤조이=이진호 기자] “브루마스터는 고객의 구미에 맞는 맥주 타입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 주재료인 효모와 맥아, 홉을 감별하는 일도 합니다. 맥주가 나오기까지의 모든 제조공정과 품질을 관리하는 이들을 브루마스터라고 합니다.”
폴 에드워즈(45·영국) 고릴라브루잉컴퍼니 대표는 브루마스터를 이렇게 소개했다. 브루마스터는 소규모 맥주 양조장에서 제조의 전 공정을 관리하는 양조기술자다. 수제 맥주 시장이 활성화된 독일, 영국, 벨기에 등 유럽에서는 잘 알려진 직업이지만 국내에는 흔치 않다.
2015년 폴 대표는 수제 맥주가 한식과 잘 맞는다고 판단해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부산에 본사를 둔 고릴라브루잉은 세계 3대 맥주 평가 기관 중 한 곳인 ‘Untappd’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실력 있는 양조장이다. 브루마스터이자 기업 대표인 폴 에드워즈와 김한규(32) 양조사를 만났다.
△브루마스터이자 고릴라브루잉컴퍼니 대표인 폴 에드워즈(오른쪽)와 김한규 양조사.
브루마스터를 하게 된 계기는
폴 에드워즈 : 전공은 지질학이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모두가 전공을 듣고 난 뒤 양조사라고 하면 의아해한다. 20여 년 전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준비할 때 살던 곳이 부산이다. 당시 부산에는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유럽에서는 맥주를 직접 제조해 마시는 경우가 흔하다. 나 역시 제조가 취미 중의 하나였다. 홈브루잉(자가양조)도 자주 했다. 취미에서 출발해 사업을 시작했다. 전공인 지질학에는 맥주 제조에 필요한 화학 지식이 포함돼 있다. 그런 점도 사업을 하는데 영향을 줬다.
김한규 : 군대 전역 후 우연히 들른 맥주 전문점에서 수제 맥주를 마셨다. 처음 접한 수제 맥주는 하나의 균형을 이룬 요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수제 맥주에 빠졌다. 수제 맥주 전문점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녔다. 그러다 직접 수제 맥주를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브루마스터의 길을 걸었다.
브루마스터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김한규 : 국내에는 브루마스터가 되는 교육 과정이 거의 없다. 일부 대학에서 전문가 과정이 개설되기 때문에 여기서 지식을 쌓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브루마스터는 10년 이상의 양조 경험을 쌓아야 인정 받을 수 있다. 대학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한 후에는 전국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지금 일하고 있는 고릴라브루잉은 흑맥주를 통해 알게 됐다. 고릴라브루잉에서 만든 흑맥주의 맛에 매료돼 바로 폴 에드워즈 대표에게 일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진심이 통했는지 일할 기회가 생겼고 입사 후 이곳에서 양조 경험을 쌓고 있다.
△지질학 박사 학위를 가진 폴 에드워즈 대표는 “수제 맥주가 한식과 잘 맞는다고 판단해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맥주를 만들기 위해 특별한 지식이 필요한가
김한규 : 물론이다. 맥주는 발효를 통해 만들어진다. 발효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당과 효모(이스트)다. 당은 효모의 먹이이고 효모는 당을 먹고 알코올을 만들어 준다. 당을 만들어주고 효모를 적절히 넣어야 맥주가 완성된다. 맥주를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지식이 필수다.
수제 맥주를 만드는 과정이 궁금하다
폴 에드워즈 : 맥주는 당화, 자비, 발효 3가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당화는 당을 만들기 위해 맥아(보리에서 발아된 낱알)을 분쇄해 끓여주는 과정이다. 맥주는 단맛과 쓴맛으로 균형을 잡는다. 맥주의 스타일에 따라 쓴맛의 정도는 달라지는데 맥주에 쌉사르한 맛을 더하기 위해 홉을 넣고 다시 끓여준다. 우리가 맥주를 마실 때 쌉사르한 맛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이 과정을 통해 나타난다. 이 과정을 자비라고 한다. 발효를 위해선 자비까지의 과정을 통해 완성된 맥즙을 효모가 활동할 수 있는 온도에 맞춰 식혀주고 효모를 넣어준다. 그러면 효모가 맥즙인 당을 먹고 알코올인 맥주를 만들어준다. 이 과정이 발효다.
맥주를 만들 때 본인만의 원칙이나 기준이 있나
폴 에드워즈 : 품질이다. 2017년 국내 수제 맥주가 대중에게 알려지고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고릴라브루잉도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졌다. 당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품질과 타협할 수도 있었지만 더 엄격히 기준을 잡았다. 빠른 생산을 통해 많은 곳에 우리의 맥주를 알리는 것보다 늦더라도 까다로운 품질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수제 맥주는 한결같아야 상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김한규 : 수제 맥주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 그래서 브루마스터가 어떤 맛과 향을 얻고 싶다는 의도가 중요하다. 한 가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험 정신이다. 새로운 맛을 위한 연구도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디어 노트를 항상 가지고 다닌다.
△고릴라브루잉에서 만든 수제 맥주들. 고릴라브루잉은 세계 3대 맥주 평가 기관 중 한 곳인 ‘Untappd’에서 최고 평점을 받은 실력 있는 양조장이다.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폴 에드워즈 : 고릴라브루잉은 맥주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비어스쿨’을 매년 상반기, 하반기로 나눠 운영한다. 비어스쿨을 거친 수강생들이 홈브루잉 대회에 참여해 우승하기도 한다. 수강생들이 만든 맥주가 시중에서 판매도 된다. 많은 이들이 맥주 양조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또 다른 기쁨이다.
일하면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폴 에드워즈 : “고릴라브루잉 팬이에요”라는 말을 들을 때다. (웃음) 한국의 수제 맥주는 전체 시장에서 약 1% 수준이다. 하지만 그 1%를 차지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은 뜨겁다. 수제 맥주는 그만큼 매니아 층이 두텁다. 그렇기에 고릴라브루잉이 만든 맥주를 좋아하는 팬이 있으면 더 보람을 느낀다.
김한규 : “진짜 맛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다. 맥주는 식품이다. 소비자가 맛있게 마셔 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을 때 이 일을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요리를 내고 손님들에게 매번 평가를 받는 요리사처럼 양조사들 또한 긴장의 연속이다. 짧은 한 단어지만 “맛있어요” 이 한마디가 양조사로서 자격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준다.
브루마스터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
폴 에드워즈 : 책임감이다. 맥주는 발효 식품이다. 발효가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부패 돼 먹지 못한다. 건강에도 위협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브루마스터라는 타이틀에는 항상 안전이라는 책임이 따른다. 양조 과정의 근거를 갖추기 위해 전문 지식을 늘 학습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맥주 양조는 생물부터 화학까지 기초 과학 지식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김한규 브루마스터가 수제 맥주를 양조하는 모습. 김 양조사는 “브루마스터는 머리보다 몸을 더 많이 쓰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일하면서 힘든점은 무엇인가
김한규 : 브루마스터는 머리보다 몸을 더 많이 쓰는 직업이다. 대기업 맥주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이 이뤄져 공정 과정이 기계화됐다. 하지만 수제 맥주 양조장은 소규모 다품종 생산이 이뤄진다. 체력을 사용할 일이 많다. 무거운 맥아 자루를 직접 나르고, 케그(맥주가 들어있는 통)를 직접 옮겨야 한다. 농담을 섞어 수제 맥주 업계에서는 양조사 직업을 ‘3D 업종 중 하나’로 표현한다. 그만큼 생각보다 고된 작업이 많다. 몸이 지치면 안전에 부주의해지기 때문에 항상 체력도 길러야 한다.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폴 에드워즈 : 고릴라브루잉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 맥주를 수출한다. 고릴라브루잉을 K-POP처럼 K-BEER하면 연상되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한국 수제 맥주 또한 하나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맥주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jinho2323@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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