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어디자이너, 월급에서 교육비·가발비 빼면 남는 게 없어


- 사진 스튜디오, 기술 배우느라 밥 굶는 것도 옛말


- 디자이너로 들어왔는데 온갖 잡일에 배우는 것 없어 퇴사 결심

[캠퍼스 잡앤조이=조수빈 인턴기자] “일을 배우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월급이 적어도 일을 제대로 배우면 버텼을 것 같은데, 다른 업무도 시키니까 여기 계속 있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어요. 예술 전문 인력에 대한 처우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도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 김 모 씨)


디자이너부터 포토그래퍼, 연극 배우 등 예술 업계에서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월급과 대우를 받는 청년들이 일터를 떠나기 시작했다. 특히 사진 스튜디오나 헤어샵 등은 대부분 누군가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도제식’ 근무가 많은 데서 일어나는 문제가 많았다. 배움을 핑계로 적은 월급을 정당화하거나 자신의 업무를 넘기는 식의 불공정한 대우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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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실수령액은 100만원대, 지방은 더 심해요

한 모(28)씨는 올해로 헤어 디자이너 1년 차가 됐다. 초급 디자이너들은 하루 약 10시간을 일하고 160~190만원을 가져간다. 그는 올해 새로 바뀐 자신의 월급 실수령액이 100만원 전후라고 전했다. 최저시급도 올랐고, 미용업계에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표면적으로는 처우가 개선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초급 디자이너를 달고도 사정은 똑같다. 월급이 오르면서 교육비, 가발비 등 추가적으로 매장이 가져가는 돈도 같이 올랐다. 매장을 옮겨도 사정은 비슷해 경력이나 쌓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한 씨는 사실 수도권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대답했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상황은 더 심하며 아직도 한두 달 정도 무급 인턴으로 일을 배워야 하는 상황도 더러 있다. 디자이너 인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매장 기존 디자이너들의 텃세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연·월차가 있기는 하지만 원장과 메인 디자이너의 눈치를 봐가면서 써야 했다. 매장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현금 결제 유도, 불필요한 청소 떠넘기기 등 부당한 대우 등을 이겨내면서까지 헤어디자이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며 내달 퇴사를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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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유지가 안돼 투잡 뛰는데 실장님은 포르쉐 타고”

사진과를 졸업한 김 모(30)씨는 작년까지 모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일했다. 그는 스튜디오 실장 밑에서 사진 기술을 배우고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도제식 교육이 일반화 된 업계 특성상 개인의 권리를 챙기기 힘든 구조라고 말했다. 김 씨는 “매일 출근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100만원 초반대의 월급을 받고 일한다. 최근에 일하러 갔던 한 스튜디오에서는 하루에 4만원을 받고 수습 기간이 끝나면 건 당 수입을 받는 것으로 하자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하루에 4만원이면 시급 5천원 꼴이다. 그렇게 일을 배운 신입 포토그래퍼는 개인 스튜디오를 오픈해 자기가 배운 것을 반복한다. 결국 뿌리 깊은 사진업계의 악습은 끊임없이 재생산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디오를 떠날 수 없었던 이유는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닌 개인이 추구하는 사진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스튜디오가 있는 전문가의 경우 그 자체가 브랜드이기 때문에 실력 향상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내에서 부당대우를 받더라도 쉽게 내부고발을 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업계가 좁아 섣불리 고발했다간 불이익을 얻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사진과를 막 졸업한 친구들이 스튜디오 소속이 아니라 회사에 취직하려는 이유도 분명해요. 스튜디오로 취업해 순수 사진을 배우게 되더라도 적은 월급을 받고 지속적으로 일하기는 힘들거든요. 배움을 이유로 무급으로, 혹은 훨씬 적은 수당을 받고 일하는 열정페이는 아직도 개선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에요. 인턴이나 후배들은 생계 걱정하며 일을 다니는데 외제차 끌고 다니며 페이 협의는 피하는 실장님들을 보면 한숨만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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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로 들어왔는데 택배 포장, 상담 업무가 웬말인가요”

김 모(25)씨는 한 속옷 쇼핑몰에 디자이너로 2016년 입사했다. 인턴 기간은 6개월, 보험을 제외한 월급의 실수령액은 88만원이었다. 식사는 개인 부담, 근무 시간은 10시부터 7시까지였다. 야근수당, 주휴수당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김 씨는 늦게 출근한 대표의 업무를 돕느라 늘 밤 10시가 넘어서 퇴근했다. 그는 늘 대표가 “더 배우고 싶으면 남아서 일해라”고 말했지만 실상 디자인 업무는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택배 포장부터 전화 상담 응대, 제품 생산까지 김 씨의 몫이다. 패턴이나 디자인 공부를 하기에는 쇼핑몰 업무가 많았고 대표는 디자이너로 채용한 4~5명의 인원으로 MD 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퇴사하고 간 다른 곳도 사정은 비슷했다그 이후로 패션 업계에 정이 떨어져서 직무를 옮겨 일하고 있다.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많아져야 처우 개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2020년 기준 최저임금은 8590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다. 정부에서는 여전히 열정페이를 단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지난달 26일, 표준계약서 작성, 최저임금 보장, 부당업무 지시 불가 등을 담은 ‘공정경쟁 협약’ 체결에 나섰다. 문화행사를 대행하는 협력회사, 각 도 등의 협업을 통해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열정페이를 단속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기획과 관계자는 “부당대우를 받은 사람이 개인적으로 구제요청을 하면 감독관과 함께 신고당한 사업장에 가서 근로감독관이 위반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연간 2만여개 사업장의 근로감독을 정기적으로 진행하지만, 신고가 자주 들어온 특정 업종에 대해서는 불시검문을 하고 있다”며 “업계에 종사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는 익명으로 근로감독청원을 받고 있어 내부 고발에 대한 위험성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300인 이상의 기업의 경우 주 52시간 및 최저임금 보장이 정착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소규모로 운영되거나 탄력근무제를 이용하는 등의 변수도 여전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한 헤어샵을 운영하고 있는 한 실장은 “상호 협의된 사항이며, 학원을 다니면 더 많은 돈이 드는데 그것을 매장에서 충당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연차가 쌓이면 더 많은 돈을 쥘 수 있는 전문직인데 참을만 하지 않냐”며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배웠다”고 말했다. 한편 모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포토그래퍼는 “스튜디오에 있었던 때보다 상황이 많이 나아진 것은 맞다. 5년 전에 일했던 스튜디오에서는 한달에 50만원을 받았다”며 “반복되는 악습을 끊고 변화를 일으켜 줄 수 있는 선배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장 생계를 잇기가 어려운 후배들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다른 직무를 선택하기도 한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subinn@hankyung.com

[사진=Getty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