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잡앤조이=이진이 기자/정예은 대학생 기자] 지난 6월 팀 내 폭언과 폭행으로 한 선수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사건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체육계의 인권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끊이지 않는 체육계 인권문제…‘최숙현법’ 발의한 이용호 의원 "책임회피 방지, 명확한 처벌 기준 마련돼야"



특히나 피해 선수가 경주시청과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관 사이의 책임회피만 있었을 뿐 책임 있는 해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논란이 거세졌다. 또한 사건 이후 한국체육대학교 핸드볼팀과 육상부, 광주 시내 중·고교에서도 학생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폭행 문제가 제보되면서 체육계 인권문제가 학생선수들의 안전까지도 위협하고 있는 사실이 드러났다.

잇따르는 제보에 교육부는 지난 21일 전국의 초·중·고교의 학생선수 5만 여명을 대상으로 폭력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이번 실태조사를 통해 4주 동안 전국 17개 시도교육청과 함께 학생선수들을 대상으로 폭력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해 엄정한 후속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교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가 함께 학생선수들에 대한 폭력피해 전수조사를 실시했지만, 당시 후속조치보다는 단순 실태파악에만 머물렀기 때문에 개별적인 피해 내용을 확인해 후속조치를 취하기 어려웠다.

이에 대한 아쉬움을 개선하고자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폭력실태가 파악되면 학교폭력 사안 처리 절차에 따라 피해 학생선수를 보호하고 체육지도자는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수사 및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다. 지역 체육회에서도 관내 초중고교와 대학 운동부와 실업팀에 대한 전수조사와 폭력 및 성범죄에 대한 신고접수, 사건에 대한 조사지원 및 법률 검토 등 실태파악과 사후조치를 위한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대응에 대해 ‘사후약방문’ 식의 사태 수습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심석희 선수의 폭로로 체육계 폭력 및 인권문제에 대한 자성과 처벌강화를 촉구됐던 것이 불과 1년 전 일이다. 그 때도 선수 인권 보호를 위해 폭행 및 인권 유린을 저지르는 지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 결과 선수 인권 보호를 위한 스포츠윤리센터를 개설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운동선수보호법’이 제정됐다. 체육계에서는 강압적인 문화를 바꾸고 개혁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반성과 노력의 결과로 올해 1월 운동선수보호법이 통과됐고, 그에 따라 선수 인권 문제에 대해 자체적인 고발권을 가지는 클린 스포츠센터를 설립했다.

스스로 반성의 목소리를 내며 재발방지를 위해 힘쓰겠다고 다짐한 것이 고작 1년 전이다. 하지만 故최숙현 선수의 죽음은 체육계의 반성의 결과인 스포츠윤리센터도, 운동선수보호법도 고통 받는 선수들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과 재발방지 방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체육진흥법(체육지도자가 폭행이나 상해 등으로 처벌받을 경우 그 자격을 영구적으로 박탈하는 one-strike out제도 도입)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체육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위력이나 위계에 의한 폭행 등으로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는 그 가해자를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 내용으로 하는 ‘최숙현법’을 대표 발의한 이용호 의원은 “기본적으로 체육계에 만연한 메달 중심, 결과 중심 사상에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메달만 목에 걸면 그 과정에서의 개인의 인권이나 고통, 괴롭힘, 성추행 등이 당연시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체육계에서 인권 문제가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법을 바꾸고 결과 중심의 문화를 바꿔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지도자들의 인권감수성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의원은 “인권감수성 결여에 관한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하루아침에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정의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며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 폭력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이런 일에 감성적으로 한 번 들끓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런 일상적 폭력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 변화가 일어나야 이런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팀 내에서 발생한 폭력과 폭언 등 인권유린으로 인한 고통을 여러 기관에 호소했지만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 악순환을 끊어내기 위해 오는 8월 스포츠윤리센터가 정식 출범한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체육계의 폭력, 성폭행 등의 인권문제와 선수들의 도박 등 일탈행위를 제재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독립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체육계의 인권문제 근절에 스포츠윤리센터가 어느 정도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숙현법’ 대표 발의한 이용호 의원과의 일문일답

끊이지 않는 체육계 인권문제…‘최숙현법’ 발의한 이용호 의원 "책임회피 방지, 명확한 처벌 기준 마련돼야"

지난 14일에 발의한 ‘최숙현법’은 어떤 법안인가

“최숙현법에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 특점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내용으로 하는 두 가지 법안이 있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의 경우에는 체육지도자가 폭행이나 상해 등으로 처벌을 받을 경우에 지도자 자격을 영원히 박탈하는 1 strike-out제를 실시하도록 개정하는 것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업무나 고용관계상 상급자가 하급자를 위력이나 위계에 의한 피해를 입혔을 경우에 가중처벌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 법안을 통해 체육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위계·위력에 의한 폭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발의했다.”

체육계에서 폭력 및 인권 문제가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인권문제에 대한 인식이 둔감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압축성장을 해오면서 경제적으로는 선진화가 됐는데 모든 문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아직은 경제발전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체육계는 특히 메달이나 결과 중심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인권문제에 더욱 둔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승만 하면 된다는 결과 중심의 문화가 지배적이다 보니 개인을 향한 폭력, 위협 등이 당연시 되던 부분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문화를 바꾸고, 그에 앞서 법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에서도 기관들의 책임회피가 문제되고 있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최숙현 선수가 여러 경로로 문제를 제기하고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어떤 기관에서도 책임 있게 해결하지 않았던 정황 때문에 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 같다. 기관의 입장에서는 이런 문제가 제기되면 그 피해가 자신들에게 온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책임회피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나 싶다. 기관 간의 책임회피 방지를 위해서는 신고를 받는 기관에 대해서도 명확한 처벌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고를 받게 되면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처리를 해서 결과를 통보하고, 나중에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날 경우에는 처리한 기관의 책임자 역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

위계에 의한 폭력이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데,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이번에 발의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조기에 정착을 시켜서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범적으로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볼 수는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문제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확실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제도를 도입해서 사람들이 ‘인권이나 일상적 폭력 문제에 관해 더 이상 둔감해지면 안 된다’는 자각을 할 수 있도록, 나아가 그 자각을 통해 우리 사회 구성원 전반이 인식의 전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문제에 대해 사후약방문 식의 대응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이런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아쉽고 안타깝다. 조재범 전 코치의 성폭력 사건으로 운동선수보호법이 통과된 것이 불과 올해 1월이었다. 그 법이 통과되면서 클린 스포츠센터가 고발권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신고도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보니 기존에 마련해뒀던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를 않았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비극적인 문제에 대한 망각의 문화가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망각의 문화를 끊어내고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 사건중심으로 인식하고 나중에는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적인 연대를 통해 계속 기억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급하신 ‘망각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 지배적인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망각의 문화는 근본적으로 둔감한 인권감수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또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꼰대문화’에 잠겨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존에 대응방안과 제도를 마련해 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건에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 부조화가 생긴다. 이런 둔감화를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일상적 폭력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해져야 한다. 큰 사건들에만 감성적으로 반응하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빈번한 일상적 폭력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하게 인식해야 한다. 이런 인식 변화를 통해 일상적 정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 정의의 회복과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부분은 법으로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또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어쩌면 세대와 세대를 거듭하고 나서야 해결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느리더라도 조금씩은 우리가 정의를 회복하고 조금 더 도덕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번 사건과 관련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일상적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대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 무감각하기 보다는 그 고통에 대해 조금 더 연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서로 연대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우리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무한 경쟁만을 강조하다보니 타인의 고통에, 감정에 공감할 여유가 많이 사라졌는데,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총체적인 변화는 필요하다고 본다.”

ziny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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