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자막 요청에...학교 “경증장애인은 지원 대상 아니다”
△표 씨가 수업자료를 보며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한경잡앤조이=장예림 인턴기자] “학생복지팀에서 제공하는 장애학생 맞춤 지원은 원한다고 다 받을 수 없어요. 선발돼야 받을 수 있죠.”
코로나19가 1년 가까이 장기화되면서 대학 수업이 전면 비대면 온라인 강의로 전환됐지만 경증장애 대학생들을 위한 대학 차원의 보조 지원은 제자리 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가 정해놓은 장애 지원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동영상 강의 보조 지원을 않고, 교수 재량에 떠넘기는 식이다.
청각장애 4급을 갖고 있는 대학생 표승화(24) 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비대면 강의 학습 대필 지원을 거절당했다. “잘 들리지 않는 청력으로 수업을 들어야 하니 교수님께서 카메라를 켜주시지 않거나 칠판을 보고 말씀하실 때 저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죠. 순식간에 바보가 되는 느낌이에요.”
표 씨는 한 쪽 귀가 들리지 않고, 들리는 한 쪽 마저도 노인들과 비슷한 청력 상태이지만 학교가 제시하는 학습 보조 조건인 ‘1~3급 중증장애인’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원을 거절 당했다. 1년 전 코로나19로 인해 전면 비대면 강의로 전환한다는 학교 측의 공지를 받고 장애학생을 위한 해결책을 물어봤으나 “도와줄 학생을 직접 섭외해 학생복지팀에 다시 연락해라”는 답변만 받았을 뿐이다. △표 씨는 수업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같은 강의 내용을 2~3회씩 필사하고 있다. 사진은 표 씨의 강의 노트.
그는 “학교 학생복지팀에서 실시하는 장애학생 맞춤 지원은 대부분 혼자서 거동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장애가 매우 심각한 중증장애인에 맞춰져 있다. 경증장애인도 생활하는데 분명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 보조 관련 지원은 학교가 요구하는 조건에 모두 부합해야 해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K 대학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를 통해 “중증, 경증장애학생 모두 학생이 개별적으로 센터에 등록을 해야 장애학생 등록이 된다”며 “장애학생 수업 보조도 마찬가지다. 중증장애는 각 학기 시작 전 신청을 받고, 경증장애는 신청서와 6개월 이내 병원 진단서 등의 별도 서류 확인 절차를 한다. 승인이 나야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20 대학알리미 공시 서울주요대학별 장애재학생 수(표=장예림 인턴기자)
대학 정보 공시 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서울 주요대학 15개에 재학 중인 전체 장애학생 수는 672명이다. 이 중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은 가능한 정도인 ‘경증장애’ 학생은 47.91%(322명)에 달한다. 전체 장애대학생 중 절반가량은 경증장애학생인 것이다. 하지만 표 씨의 대학을 비롯한 주요 대학들은 중증장애인 수업 보조 지원에 치중해 있어, 경증장애학생들을 위한 수업권 보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해 3월 ‘장애대학생 원격강의 지원 설명자료’를 통해 ‘장애대학생이 자택에서 온라인(원격)으로 강의를 듣는 경우에도 원활하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속기, 수어통역 등을 교육활동 지원 사업을 통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지원대상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학생을 우선 지원’하며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학생 또는 기준 외 학생도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학별 특별지원위원회의 사전심의를 거쳐 지원’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장애학생이 수업 보조를 받더라도 전문 수어통역가나 속기사를 배정받는 경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익명을 요청한 청각장애 대학생 A 씨는 대면 인터뷰를 통해 “학교에 등록된 전문 속기사 분들이 있는지 몰랐다. 전문 속기사분들께 전담으로 도움 받아 본 적은 없고, 학교 재학생 중 저와 수업 시간표가 맞는 대필 도우미 학생에게 수업 내용 필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학기, 청각장애학생을 위한 수업 스크립트 작성 도우미를 했다는 대학생 조연수(23) 씨는 스크립트 작성 도우미가 더 확충돼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조 씨는 “녹화된 30분 분량의 동영상들을 타이핑하는 임무였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한 번 들어서는 못하고 한 문장을 세 번 네 번씩 들어서 해야 했고, 30분 분량 동영상 하나를 제대로 타이핑하는 데 2시간은 걸린 것 같다”며 “청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수업 조건을 가지기 위해선 더 많은 도우미나 속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별, 강의별로 시험 채점 기준과 평가 방식이 제각각인 것도 문제다. 표 씨는 “학기 시작전 수업을 맡으시는 교수님들께 청력이 좋지 않아 양해를 부탁한다는 내용을 메일로 알려드렸다. 하지만 형평성으로 인해 발표나 참여점수에 추가 점수를 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치셨다. 타 대학을 다니는 친구에게 제 고충을 털어 놓으니 그 친구 학과 교수님은 그러한 상황에 참여점수를 미리 준다고 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고 성토했다.
김철환 장애의벽을허무는사람들 활동가는 “코로나19로 인한 장애학생들의 학습권 문제는 지난해 초 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막이나 수어통역 등에 선택권은 제한적”이라며 “특수학교의 경우 온라인 수업은 효과성이 거의 없고, 부모나 개인교습이 별도로 있지 않으면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차영아 교육부 장애학생진로평생교육팀 팀장은 “작년까지는 장애학생 학습 보조 지원을 중증장애 학생들을 위주로 지원했지만 올해부터는 해당 기준을 없앴다. 경증장애학생들까지 지원폭을 대폭 늘릴 전망”이라며 “장애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간담회 개최 등을 통해 수요자 맞춤 수업 보조 지원을 확대해 가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2021년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 되는 것에 대비해 추가 예산을 편성하고 보조공학기기 지급 등 장애대학생 수업 보조를 위한 지원을 이어갈 방침이다.
jyr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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