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태 마커스랩 공동대표 인터뷰


[캠퍼스 잡앤조이=이진이 기자] 빨간색 소화기는 잊어버리자. 감각적인 패턴과 컬러로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 소화기가 나타났다. 장식장, 테이블 등 어느 곳에 두어도 공간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없다. ‘소화기=빨간색’이라는 편견을 깨고 탐나는 소화기를 만드는 소방관련 스타트업 마커스랩의 박건태 공동대표를 만났다.


박건태 공동대표는 소방을 테마로 패션 아이템을 선보이는 ‘파이어마커스’를 시작으로 소방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서 2016년 마커스랩을 열었다. 어느 집이든 소화기 한 대쯤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방관의 얘기가 계기가 됐다. 집집마다 소화기 보급률을 높이는 게 마커스랩의 첫 번째 목표다.


‘빨간색 소화기는 잊어라’...패션 소화기 스타트업 박건태 대표


-브랜드 콘셉트와 철학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마커스랩은 시민의 안전을 생각해서 만든 회사에요. 원래는 폐소방호스로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드는 파이어마커스로 출발했어요. 업사이클링보다 시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가 디자인 소화기를 개발하게 됐어요. 소방관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가정에 소화기 한 대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조사해보니 현재 우리나라 주택 소화기 보급률은 40%에도 못미치고 아파트를 제외한 주택은 소화기가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이 문제를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조직구성은 어떻게 되나요?

“파이어마커스와 마커스랩은 법인은 분리돼 있지만 활동영역은 같이 하고 있어요. 크게 4개 부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가 유통과 제조부문을 맡고, 이규동 공동대표가 마케팅과 유통을, 나지훈 이사가 기획을, 박용학 CD(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어요.”


-기존에 없던 디자인 소화기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소화기는 빨간색이라고 법으로 규정돼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정부부처에 문의해 이 문제는 쉽게 해결했어요. 문제는 제조부분이었어요. 스타트업이다 보니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설비를 갖출 수 있는 것도 아니었죠. 운 좋게 컬러 소화기를 준비하는 제조업체를 만나 협업할 수 있었어요. 애초에 준비기간을 1년 정도 생각했는데 제조부분이 해결되니 6개월 만에 제품이 출시됐어요. 지난해 10월에 펀딩을 진행했고 올해 4월에 제품이 나왔으니까요.”


‘빨간색 소화기는 잊어라’...패션 소화기 스타트업 박건태 대표

△찰리채플린, 헬렌켈러 등 소중한 명사의 격언을 담은 아포리즘라인 소화기.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제품에 대한 반응은 굉장히 좋아요. 하지만 여전히 ‘빨간색이 아니어서 누가 소화기인줄 알겠느냐’고 많이 물어봐요. 빨간색 소화기는 직접 구매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집안에 있더라도 눈에 띄지 않게 감춰놓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상시 인지된 제품이 위험상황에서 훨씬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요. 소화기를 눈에 띄는 곳에 놓아야 화재 대응에 유리하다는 거죠.”


-마커스랩의 디자인 소화기를 호텔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고요?

“최근 제주도의 플레이스 캠프라는 호텔에 납품을 완료했어요. 처음 방문했을 때 부띠끄 호텔이라 인테리어가 정말 예뻤는데, 빨간색 소화기가 문 앞에 덩그러니 있더라고요. 마침 호텔에서도 소화기를 바꾸고 싶은 니즈가 있어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까지 진행했어요. 요즘 호텔뿐 아니라 카페나 식당 등에서도 인테리어에 많이 투자하잖아요. 그에 반해 디자인적으로 만족할 만한 소화기가 지금까지 없었던 거죠.”


-매출도 궁금해요.

“패션부문까지 합하면 지난해 매출은 7000만 원 정도 되요. 소화기 정식 출시가 지난 4월이었기 때문에 아직 큰 매출은 없어요. 현재까지 2500만 원 정도에요. 6월부터 B2B 납품 문의가 많아져서 8월쯤엔 매출이 크게 상승할 것 같아요.”


‘빨간색 소화기는 잊어라’...패션 소화기 스타트업 박건태 대표


-수익금의 일부를 소방관을 지원하는데 쓰신다고?

“판매수익금 중 5%를 한국소방복지재단이라는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만들어진 재단법인에 기부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수익금 일부를 안전에 관한 디자인을 만드는데 사용하려고 해요. 대학생 디자이너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있는 디자이너 등의 디자인으로 안전 관련 이슈를 풀어나갈 프로젝트, 캠페인 활동도 해보려고요.”


-다른 곳에서도 디자인 소화기가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제조사는 저희와 동일해요. 저희가 먼저 제조사와 디자인 소화기를 만들었는데, 그쪽은 워낙 유통을 오래했기 때문에 저희에게 양해를 구하고 유통만 하고 있어요. 디자인 없이 브랜드 이름만 붙여서요. 같이 유통을 하는 게 수익적인 측면에서는 손해일 수 있지만, 애초에 저희가 디자인 소화기를 만든 게 소화기 보급률을 높이는 거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내부적으로 합의했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골든타임 삼총사’를 만들어갈 계획이에요. 소화기, 단독경보기, 방염마스크 3가지를 삼총사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미 소화기는 나왔으니 어느 정도 판매가 안정되면 방염마스크와 단독경보기도 선보이려고요. 시판되는 방염마스크는 방독면 형태로 휴대성이 떨어져요. 저희는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게 마스크 팩 형태로 만들 예정이에요. 사실 화재가 나면 연기가 제일 무섭거든요. 10~15초 정도 연기를 피하면 사상자가 현저히 줄기 때문에 그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방염마스크를 내놓으려고요. 단독경보기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해 화재가 발생하면 소방서나 국민안전처로 신호를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에요.”


‘빨간색 소화기는 잊어라’...패션 소화기 스타트업 박건태 대표

△영웅 캐릭터를 재해석한 K히어로즈라인 소화기.


-대학생 스타트업을 꿈꾸는 친구들에게 조언한다면?

“창업을 하면서 느낀 게 ‘사람’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나와 얼마나 마음이 맞는지, 내 사업에 도움이 되고 반대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인적 네트워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힘들어도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일을 해야 되는 것 같아요. 수익도 수익이지만 얼마나 가치 있는 사업인지도 생각해봐야죠. 보기에 예쁜 제품은 굉장히 많아요. 제품 안에 우리가 가진 생각이 얼마나 담아낼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 사업을 하면서 ‘설마’라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들었어요. ‘설마 우리 집에 화재가 나겠어?’라는 말이요. 우리 집에서 화재가 나지 않더라고 불은 주변으로 번지기 때문에 굉장히 무섭거든요. 꼭 저희 소화기가 아니더라도 자신과 가족, 이웃의 안전을 위해서 소화기 한 대씩은 꼭 구비해달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소화기는 한번 사면 10년간 쓸 수 있어요. 1년에 커피 한잔씩 안마시면 되죠. 미국에서 지난 1977년부터 소화기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 94%의 소화기 보급률을 달성했어요. 보급률이 높아지니 화재 사망률이 60% 줄었고요. 우리나라도 소화기 보급률을 크게 높여서 소방관들의 수고를 덜어줬으면 좋겠어요.”


zinysoul@hankyung.com

사진=서범세 기자